《우리
지난 20세기와 더불어 흘러온 우리 공화국의 주체적인 도서관건설력사는 세계도서관력사에서 처음으로 도서관이 그 명칭에 있어서 인민이라는 고귀한 부름으로 불리우고 그 역할에 있어서도 전체 인민을 공부시키는 주체적인 사회교육기관으로 강화발전되여 온 자랑찬 로정이였다.
력사에 류례없는 준엄한 난관과 시련속에서 우리 나라 도서관이 주체적인 사회교육발전에 뚜렷한 자욱을 아로새겨올수 있은것은 이민위천의 사상을 한생의 좌우명으로, 정치철학으로 간주해오신
언제인가
이렇듯 이민위천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계신분이시여서 그이의 숨결과 체취가 어려있는 이 나라의 그 어디에나 이민위천의 사상이 구현되지 않은 곳이란 없다.
우리 나라 도서관건설력사에도
1960년대초에 량강도에서는 혜산시민들의 문화휴식터로 되여있던 공원에 도당위원회청사와 도안전국(당시)청사를 지었으며 황해북도에서도 도시의 중심으로 되는 경치좋은 곳에 도당위원회청사를 짓고 도인민위원회청사를 지을 터까지 잡아놓고있었다.
이러한 실태를 료해하신
그리고 도급기관이 반드시 도시복판에 자리잡아야 되는것은 아니라고, 도시복판에는 로동궁전이라든지, 인민회관이라든지, 도서관과 같은 대중문화시설들을 지어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인민들이 즐겨찾는 경치좋은 문화휴식터와 도시의 중심에는 도급기관이 아니라 대중문화시설을 지어야 한다! 이것은 이민위천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계시는
주체62(1973)년 10월 어느날
순간 일군들의 눈길은 일시에
하지만 일군들은 선뜻 대답을 드리지 못했다. 남산재가 어떤곳인지 잘 알고있었기때문이였다.
평양시복구건설총계획도를 작성할 때 남산재를 수도의 중심부로 정하고 그곳을 축으로 도시를 형성하도록 방향을 제시해주시면서도 그 남산재만은 굳이 빈터로 남겨두게 하신
앞을 바라보면 대동강의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고 한옆으로 돌아서면 모란봉의 전경과 문수벌일대가 한눈에 안겨오는 남산재는 참으로 멋있는 자리였다. 세월이 흘러 그 주변에 크고작은 건물이 수많이 일떠섰으나 남산재는 여전히 공지로 남아있었다.
어느해인가 한 설계일군이 그 좋은 자리를 그냥 비워두는것이 아쉬워 거기에 다른 나라들처럼 정부청사를 무게있게 들여앉힐 설계를 만들어 올린적이 있었는데
무엇때문에 그 좋은곳에 정부청사를 앉히겠는가, 도시중심에는 정부청사가 아니라 인민들이 많이 쓰는 공공건물을 지어야 한다는것이
일군들이
그러한 일군들의 심정을 헤아리신
그리고 그로부터 두달후인 그해 12월 중순 어느날 몸소 남산재를 찾으신
수십년세월 아끼고 아껴오시던 명당자리를 인민들이 공부하는 도서관으로 정해주신분도 우리
세상에는 나라마다 도서관들이 있고 국민을 위한다고 자처하는 도서관들도 적지 않지만 우리 나라처럼 경치좋은 도시중심부에 국사를 론하는 정부기관이 아니라 근로인민대중이 공부하는 도서관을 세우고 그 명칭도 인민이라는 고귀한 칭호로 불리우는 그런 도서관은 없다.
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