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명당자리에는 인민들이 공부하는 도서관을

 2018.10.12.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은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한평생을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한 투쟁에 바치시였습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19권 454페지)

지난 20세기와 더불어 흘러온 우리 공화국의 주체적인 도서관건설력사는 세계도서관력사에서 처음으로 도서관이 그 명칭에 있어서 인민이라는 고귀한 부름으로 불리우고 그 역할에 있어서도 전체 인민을 공부시키는 주체적인 사회교육기관으로 강화발전되여 온 자랑찬 로정이였다.

력사에 류례없는 준엄한 난관과 시련속에서 우리 나라 도서관이 주체적인 사회교육발전에 뚜렷한 자욱을 아로새겨올수 있은것은 이민위천의 사상을 한생의 좌우명으로, 정치철학으로 간주해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헌신과 로고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

언제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른 나라 대표단과의 담화에서 나에게도 신처럼 숭상하는 대상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인민이다, 나는 인민을 하늘처럼 여겨왔고 인민을 하늘처럼 섬겨오고있다, 나의 하느님은 다름아닌 인민이다, 그래서 나는 이민위천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있다라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이렇듯 이민위천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계신분이시여서 그이의 숨결과 체취가 어려있는 이 나라의 그 어디에나 이민위천의 사상이 구현되지 않은 곳이란 없다.

우리 나라 도서관건설력사에도 위대한 수령님의 이민위천의 사상을 가슴뜨겁게 느끼게 하는 사연깊은 이야기들이 많다.

1960년대초에 량강도에서는 혜산시민들의 문화휴식터로 되여있던 공원에 도당위원회청사와 도안전국(당시)청사를 지었으며 황해북도에서도 도시의 중심으로 되는 경치좋은 곳에 도당위원회청사를 짓고 도인민위원회청사를 지을 터까지 잡아놓고있었다.

이러한 실태를 료해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주체52(1963)년 9월 5일 군당위원장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도당위원회청사를 다른곳에 다시 짓고 이미 지어놓은 도당위원회청사를 도서관으로 쓰도록 하는것이 좋겠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인민들의 즐거운 문화휴식터인 공원에다 기관청사를 지어서는 안된다고, 경치좋은 공원에는 근로자들이 휴식하거나 공부할수 있는 시설을 꾸려야 한다고 하시였다.

그리고 도급기관이 반드시 도시복판에 자리잡아야 되는것은 아니라고, 도시복판에는 로동궁전이라든지, 인민회관이라든지, 도서관과 같은 대중문화시설들을 지어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인민들이 즐겨찾는 경치좋은 문화휴식터와 도시의 중심에는 도급기관이 아니라 대중문화시설을 지어야 한다! 이것은 이민위천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계시는 어버이수령님께서만이 내놓으실수 있는 정치철학이였고 도시형성안이였다.

주체62(1973)년 10월 어느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모란봉에 오르시여 수도의 전경을 부감하시다가 어느 한곳을 가리키시며 동행한 일군들에게 저기에 무슨 건물을 앉혔으면 좋겠는가고 물으시였다.

순간 일군들의 눈길은 일시에 어버이수령님께서 가리키시는 곳으로 쏠렸다.

어버이수령님께서 가리키신 곳은 남산재였다.

하지만 일군들은 선뜻 대답을 드리지 못했다. 남산재가 어떤곳인지 잘 알고있었기때문이였다.

평양시복구건설총계획도를 작성할 때 남산재를 수도의 중심부로 정하고 그곳을 축으로 도시를 형성하도록 방향을 제시해주시면서도 그 남산재만은 굳이 빈터로 남겨두게 하신 어버이수령님이시였다.

앞을 바라보면 대동강의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고 한옆으로 돌아서면 모란봉의 전경과 문수벌일대가 한눈에 안겨오는 남산재는 참으로 멋있는 자리였다. 세월이 흘러 그 주변에 크고작은 건물이 수많이 일떠섰으나 남산재는 여전히 공지로 남아있었다.

어느해인가 한 설계일군이 그 좋은 자리를 그냥 비워두는것이 아쉬워 거기에 다른 나라들처럼 정부청사를 무게있게 들여앉힐 설계를 만들어 올린적이 있었는데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때에도 대번에 그것을 밀어놓으시였다.

무엇때문에 그 좋은곳에 정부청사를 앉히겠는가, 도시중심에는 정부청사가 아니라 인민들이 많이 쓰는 공공건물을 지어야 한다는것이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뜻이였다.

일군들이 어버이수령님의 물으심을 받고도 망설이기만 할뿐 누구도 대답을 올리지 못했던것은 바로 그때문이였다.

그러한 일군들의 심정을 헤아리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원래 중심광장에는 박물관이나 회관, 도서관, 문화궁전과 같이 인민을 위한 건물을 놓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다시금 남산재쪽을 오래도록 바라보시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두달후인 그해 12월 중순 어느날 몸소 남산재를 찾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제는 이곳을 정리할 때가 되였다고, 평양에는 이미 인민문화궁전도 있고 학생소년궁전도 있으니 여기에다는 도서관을 하나 크게 짓자고, 그렇게 되면 학생소년궁전에서는 아이들이 공부하고 여기서는 어른들이 공부하게 될것이며 또 지나가던 사람들도 인민들을 공부시키기 위하여 지은 도서관이라고 하면 모두 좋아할것이라고 하시였다.

수십년세월 아끼고 아껴오시던 명당자리를 인민들이 공부하는 도서관으로 정해주신분도 우리 수령님이시였고 도서관이라고 하면 책을 보관하여두고 빌려주었다받았다 하는곳과 같은 감을 주기때문에 전체 인민이 다 와서 공부하는 곳이라는 뜻에서 《인민대학습당》이라고 명명해주신분도 우리 수령님이시다.

세상에는 나라마다 도서관들이 있고 국민을 위한다고 자처하는 도서관들도 적지 않지만 우리 나라처럼 경치좋은 도시중심부에 국사를 론하는 정부기관이 아니라 근로인민대중이 공부하는 도서관을 세우고 그 명칭도 인민이라는 고귀한 칭호로 불리우는 그런 도서관은 없다.

진정 어버이수령님의 이민위천의 숭고한 사상에 떠받들려 오늘 우리 나라 도서관들은 전체 인민들에게 풍부한 사상정신적량식을 제공하는 전민학습의 전당으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있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