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라는 우리 나라의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것도 당시에 상품생산과 문화가 발전하였으며 그것이 다른 나라들에 널리 알려졌기때문입니다.》 (
슬기롭고 재능있는 우리 인민은 고려시기에 고려자기, 고려비단, 금속활자를 비롯한 우수한 발명품들과 함께 천하제일의 명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고려종이를 만들어내여 나라의 명성을 떨치였다.
고려인민들은 고구려를 비롯한 삼국시기 종이생산의 오랜 전통을 이어받아 우수한 종이들을 많이 생산하였다.
고려종이는 눈처럼 흰 백추지, 비단처럼 질긴 견지, 광택이 나고 벌레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아청지, 화려하기로 유명했던 금분지, 얇고 매끈한 질감으로 그후시기에도 널리 알려졌던 죽엽지, 매우 질기기로 소문났던 창호지를 비롯하여 황금지, 고정지 등 그 종류가 다양할뿐 아니라 그 질 역시 매우 좋은것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애용되여왔다.
그리하여 당시 고려종이에 대한 수요는 우리 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매우 높았으며 이웃나라들에서는 고려종이를 사가군 하였다. 1080년 고려가 송나라에 대지(큰 종이) 2 000폭을 수출한 사실, 1221년 8월 몽골사신이 고려에 종이 10만장을 요구한 사실 등은 그것을 잘 말해준다.(《고려사》 권9 세가 문종 34년 7월 계해, 권22 세가 고종 8년 8월 기미)
세상사람들은 고려종이의 우수성에 대하여 경탄의 목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중국의 옛 문헌들인 《고반여사》에서는 《고려종이는 누에고치솜으로 만들어져 종이색갈은 릉[(綾)비단의 한가지-인용자]과 같이 희고 질기기는 백[(帛)비단-인용자]과 같으며 글자를 쓰면 먹물을 잘 빨아들이여 사랑스러운데 이것은 중국에 없는것이니 역시 기이한 물품이다.》고 하였으며 《계림지》에서는 《고려닥종이는 빛갈이 희여 사랑스러운데 백추지라고 한다.》고 하였으며 《서목루》에서는 《금나라 장종이 고려청자지에다 늘 글을 썼다.》고 서술하였다.(《해동역사》 권27 문방류 지)
또한 원나라의 원개는 고려종이 한장을 선물로 받아 7년동안 고이 보관해두었다가 당시의 이름난 화가 왕숙명을 만난 다음에야 그 종이에 그림을 그리게 하였으며 1369년 명나라의 송담 등은 《원사》를 만들 때 고려의 취지를 가지고 책표지를 하였다고 한다.
때문에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에서는 우리 나라의 종이가 희고 질긴것으로 하여 가장 중요한 무역품의 하나로 선정하고 서사생활에 많이 리용하였는데 그중에서도 고려의 견지는 세상의 소중한 보물로 여겼고 고려의 안지로서는 서적들의 표지장정용으로 리용하는 풍습이 있었다. (《지봉류설》 권19 복용부 기용)
고려종이는 동방에만 널리 알려진것이 아니라 유럽나라들에까지 알려졌다.
1894년 프랑스 빠리에서 출판된 도서 《조선서지학》에서는 고려종이의 우수성에 대하여 조선의 종이는 어느 시대의것을 물론하고 부드럽고 탄탄한 특성을 가지고있으며 특히 유럽의 장서고들에서 발견되는 고려시기의 책들에는 누른 빛이 조금도 없고 좀도 먹지 않는다고 평가하였다.
고려종이가 이토록 세상사람들의 찬탄을 자아낼수 있은것은 국토통일후 고려인민들이 민족의 단합된 힘과 지혜를 발휘하여 앞선 시기에 이룩된 제지기술과 경험들, 기발한 착상들과 특이한 수법들을 더 잘 살리고 창조발전시켜왔기때문이였다.
참으로 동방나라들뿐 아니라 유럽나라들에까지 널리 알려지고 세상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내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명성떨치고있는 고려종이는 우리 인민의 뛰여난 슬기와 재능을 보여주는 민족의 자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