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조선혁명의 독자성을 명백히 한 하바롭스크회의

 2019.11.26.

백두에서 개척된 우리 혁명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높이 추켜드신 자주의 기치따라 백승의 력사를 새겨온 성스러운 위업이다.

모진 고난과 시련의 고비를 헤쳐야 했던 우리 혁명의 년대기마다에 빛발친 자주의 기치는 하늘이 낸 전설적영웅이신 우리 수령님의 천출위인상과 불멸의 업적이 얼마나 위대한것인가를 오늘도 천만군민의 심장마다에 뜨겁게 새겨주고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항일혁명의 첫 시기부터 남의 힘이나 도움에 의거한것이 아니라 우리자체의 힘으로 조선혁명을 수행하여왔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혁명발전의 매 시기, 매 단계마다 독자적인 로선과 전략전술, 방침을 제시하고 그것을 집행해왔으며 혁명력량도 인민에게 의거하여 꾸리면서 모든것을 자주적으로 개척해왔습니다.》 (김일성전집》 증보판 제3권 450~451페지)

1940년대초 일제는 침략전쟁을 확대하면서 파쑈도이췰란드와 함께 쏘련(당시)에 대한 침공기도를 로골적으로 드러내놓았다.

이로 하여 지구상의 첫 사회주의국가였던 쏘련은 동서협공의 위협속에 놓이게 되였다.

하싼호사건과 할힌골사건을 통하여 일제의 령토팽창야욕과 강도적본성을 다시한번 충분히 엿보게 된 쏘련은 일제가 어느때든지 《북공》을 단행하리라는것을 잘 알고있었으며 국제당과 함께 그에 대처하기 위한 방도를 각방으로 모색하였다.

여기에서 국제당이 특별히 중시한것은 쏘련을 익측과 배후에서 무장으로 지원할수 있는 동맹자들을 찾아내고 그 동맹자들과의 군사정치적련합을 실현하는 문제였다. 동방에서 쏘련을 무장으로 도와줄수 있는 존재란 조선인민혁명군과 동북항일련군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국제당과 쏘련사람들은 여러차례 련락원을 파견하여 우리 수령님과 련계를 가지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이것은 조선인민혁명군이 강력한 력량으로 자라난 결과였다.

1930년대 전반기까지만 해도 동북항일운동의 존재에 대해서 별로 주의를 돌리지 않던 쏘련은 하싼호사건과 할힌골사건때 조선인민혁명군과 동북항일련군이 자기네 나라를 옹호해서 강력한 배후공격작전을 벌리는것을 보고 만주빨찌산이 만만치 않은 존재라는것은 알게 되였던것이다.

그리하여 국제당은 1939년에 이어 이듬해 10월 중순에 또다시 위대한 수령님께 련락원을 보내여 하바롭스크회의에 참가해주실것을 요청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국제당의 초청으로 주체29(1940)년 12월부터 이듬해 3월 중순까지의 기간에 하바롭스크회의에 참가하시였다.

비범한 통찰력으로 조성된 정세를 과학적으로 깊이 분석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회의에 참석하시여 조선과 중국, 쏘련 세 나라 무장력의 련합전선을 실현하시기 위하여 노력을 기울이시였다.

하바롭스크회의에서 론의된 중심의제는 조선과 중국 동북지방에서의 유격투쟁과 쏘련군대와의 호상관계를 어떻게 맺으며 그것을 새로운 정세의 요구에 맞게 어떻게 강화발전시켜나가겠는가 하는 문제였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쏘련의 대표들은 련합한 파쑈들과의 싸움에서 공동투쟁을 벌려야 한다고 하면서 조선인민혁명군과 동북항일련군이 독자성을 포기하고 쏘련원동군(당시)과 통합할데 대한 제안을 내놓았다.

이것은 우리 혁명의 독자성을 포기하고 자기들의 지시를 받으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쏘련측의 대표들에게 국제당이나 쏘련군부측의 의도는 충분히 리해할만 하다, 그러나 조선혁명이나 동북혁명을 위하여 피흘려 싸워왔으며 앞으로도 싸워야 할 우리들에게 독자성을 포기하고 쏘련군대에 통합되라는 제의에는 심중한 문제가 있다, 독자성에 대하여 론한다면 매개 나라 혁명은 그 나라 혁명가들과 인민이 자기 나라 실정에 맞게 자기의 힘으로 수행하는것이다, 쏘련인민이 사회주의10월혁명을 단행할 때 자기 나라의 실정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에 기초하여 자기 머리로 생각해낸 옳바른 전략전술을 세우고 전체 인민을 불러일으켜 혁명에서 승리하였다, 이것은 혁명수행에서 자주성과 독자성이 얼마나 중요한것인가를 말해주는 하나의 실례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정숙해진 회의장을 둘러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항일무장투쟁의 기치를 들고 무장투쟁을 국내에로 확대발전시키고있을 때 일부 사람들은 우리에게 《민족주의》감투를 씌우면서 방해하였고 《종주국로동계급이 혁명에서 승리하면 식민지 인민들의 혁명도 승리한다.》, 《큰 나라 혁명이 승리하면 작은 나라의 혁명은 그에 따라 승리한다.》고 하면서 우리의 발목을 얽어매려고 하였다, 그처럼 안타깝고 간고하던 때인 1935년 여름에 국제당 집행위원회에서는 조선혁명가들이 조선혁명의 발전을 위하여 투쟁하는것은 응당한 권리라는것, 항일련군안의 모든 조선혁명가들로 조선인부대를 편성하여 조국으로 진출할데 대한 의견을 우리에게 보내주었다, 이것은 우리의 자주로선에 대한 전적인 지지였으며 우리에 대한 큰 고무로 되였다, 우리는 이 일을 계기로 혁명투쟁에서 자주성은 생명이라는것을 페부에 더 깊이 새기고 만난을 극복하면서 투쟁하여 오늘의 성과를 이룩하였다고 강조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통합이란 하나의 지휘체계에서 움직여야 한다는것인데 조선혁명이나 동북혁명에서 자기의 의도대로 지휘할 무장력이 없이 무엇을 어떻게 하겠는가, 식민지나라에서의 혁명은 혁명적무장력의 담보없이는 성공할수 없다는것이 우리의 피의 교훈이며 진리이다, 만일 세 나라 군대를 하나의 군사체계에 통합한다면 쏘련군대의 어느 한 군부대의 전투력은 강화될지는 몰라도 쏘련이 일제침략군과 맞서는 날에는 적배후의 제2전선을 잃게 될것이고 그렇게 되면 군사전략적으로는 더 불리한 형편이 초래될것이라고 언명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시여 조선혁명의 실정과 중국혁명의 테두리안에서 진행되고있는 동북혁명의 특성에 대하여 론리정연하게 해설하신 다음 조선혁명을 위해 투쟁하는 조선인민혁명군과 동북혁명을 위해 투쟁하는 중국인민의 무장력이 항일련군 즉 항일련합군을 무어가지고 하나의 군사체계에서 움직이면서도 아무 불편이나 반목이 없이 반일투쟁에서 성과적으로 협력할수 있은것은 서로의 자주성, 독자성을 인정하고 호상 리해하고 존중하는 관점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조화롭게 풀어나갔기때문이다,… 나는 조선인민혁명군을 항일련군에 용해시키는것도 반대하지만 쏘련군대에 배속시키자는것도 반대한다, 그것은 형식과 내용에서 우리의 독자성을 무시하는것으로 될것이기때문이다, 우리는 공동투쟁의 형식과 방법이 쏘련에도 도움이 되여야 하겠지만 조선혁명이나 중국혁명의 리익에도 다같이 맞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명백히 주장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사리정연하신 연설에 그 누구도 감히 론박할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지금껏 통합문제, 지휘권문제를 두고 론리성없이 완강하게 반대만 해오던 항일련군안의 지휘간부들도 이제는 문제가 풀릴것 같다고 환성을 올렸다.

국제당대표도 김일성동지의 의견과 체험담은 걸린 문제를 푸는데서 매우 귀중한 실머리로 된다고 하면서 공감을 표시하고 앞으로 구체적인 방도를 찾아달라고 정중히 제의하였다.

회의가 결속된 후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온 국제당대표는 김일성동지께서 이번 회의 전과정을 총괄했기때문에 회의가 성과적으로 진행될수 있었다고 하면서 김일성동지는 두 나라 사람들의 눈치같은것은 전혀 관심밖에 두시고 하고싶으신 말씀을 다하시였다, 나는 김일성동지께서 주견이 확고하고 원칙이 강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정말 탄복하였다고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였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의 제의에 따라 조선인민혁명군과 동북항일련군의 독자성을 그대로 보존한다는 전제하에 조선, 중국, 쏘련 세 나라 무장력의 련합인 국제련합군이 창설되였다.

이처럼 위대한 김일성동지는 사대와 굴종으로 수난많던 우리 민족사에 종지부를 찍으시고 자주의 기치높이 간고한 항일대전을 승리에로 이끄신 백두의 천출명장이시다.

항일대전의 불길속에서 자주로선을 생명선으로 확고히 견지해온 위대한 전통이 있기에 우리 조국은 오늘도 자주성이 강한 나라로 온 세상에 빛을 뿌리고있는것이다.

우리 인민은 위대한 수령님위대한 장군님의 자주의 혁명방식을 그대로 계승해나가시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령도를 높이 받들어 우리 조국의 존엄을 세계만방에 높이 떨쳐나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