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나라의 독립은 《신》의 힘이 아니라 단결의 힘으로

 2022.8.8.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로동자, 농민은 물론 종교인, 량심적인 민족자본가에 이르기까지 일제를 반대하는 모든 력량을 하나로 굳게 결속하여야 합니다.》 (김일성전집》 증보판 제1권 214페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 시기부터 종교문제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혁명발전의 요구와 우리 나라의 종교실태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에 기초하시여 로동자, 농민은 물론 량심적인 종교인들도 반일민족통일전선의 기치밑에 묶어세워 그들을 반일투쟁에 불러일으킬데 대한 사상을 제시하시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령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17(1928)년 2월 4일 천불교인들이 살고있는 안도현 내도산마을을 찾아주시였다.

천불교는 20세기초 일제식민지통치에 항거하여 내도산마을에 들어온 사람들속에서 만들어진 민족종교였다. 천불교신자들은 하늘에서 99명의 선녀가 백두산천지에서 미역을 감고 올라갔다는 전설에 기초하여 그곳에 《덩덕궁》이라는 99칸짜리 절간을 지어놓고 일년에 두번씩 찾아가 일본에 천벌을 내리고 조선민족에게 복을 내려달라고 기도를 드리였다. 천불교신자들은 마을에도 《천불사》라는 절간을 지어놓고 열흘이나 한주일에 한번정도씩 거기에 가 기도를 드리였다.

신자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 고구려사람들처럼 머리를 우로 틀어올리고 울긋불긋한 옷차림으로 한데 모여들어 꽹과리와 제금을 치고 북과 목탁을 두드렸는데 덩덕궁덩덕궁하는 소리가 아주 장엄하였다. 그래서 절간이름마저 《덩덕궁》이라고 불리웠다.

그러나 천불교는 지나친 종교적편견으로 하여 이 지역에서 혁명조직을 내오고 혁명투쟁을 조직전개해나가기 위한 사업에 부정적영향을 주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천불교인들을 혁명의 길로 이끌어주기 위하여 몸소 내도산마을을 찾으시고 천불교인들의 신앙생활과 생활형편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료해하시였으며 천불교 교주도 만나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땅 가까운 이곳에서 식견도 있고 우리 인민들속에서 인망도 높으신 교주님을 만나게 되여 반갑다고 뜨겁게 인사를 나누시고 내도산마을 인민들이 당하는 가난과 굶주림은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우리 인민이 당하는 설음과 고통이라고,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문화를 가진 슬기롭고 근면한 우리 민족이 식민지노예의 비참한 운명을 강요당하고있으니 참으로 통탄할 일이라고 준절히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교주님이 독립운동에 나섰다가 실패와 좌절의 쓴맛을 본 후 내도산에 들어와 침략자들에게는 천벌을 내리고 우리 민족에게는 복을 베풀어달라고 백두산천기에 빌면서 그것을 신앙으로 하는 천불교를 창제하였다고 하는데 의로운 일을 하였다고, 천불교야말로 내 나라, 내 민족을 위한 애국적인 종교라고 평가해주시였다.

계속하시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천불교가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종교이기는 하지만 천불교를 믿는것만으로는 나라의 독립을 이룩할수 없다고, 간악한 침략자들를 그 어떤 《신》적인 힘에 의거해서는 타도할수 없으며 절간에 가서 기도를 드린다고 하여 이룩되는것이 아니라 오직 조선인민이 하나로 굳게 뭉쳐 침략자들과 맞서 싸워야만 성취할수 있다고 깨우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개미 천마리면 망돌을 굴린다고 한사람의 힘은 비록 보잘것없지만 대중의 뭉친 힘은 그 무엇에도 비할바없이 강하며 그 힘을 당할자는 이 세상에 없다고, 우리는 남녀로소, 신앙과 정견의 차이를 불문하고 전민족이 일치단결하여 침략자들과 싸워야 하며 이 투쟁에 내도산마을 인민들도 한사람같이 떨쳐나서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그리하여 내도산마을에는 신자들과 마을사람들이 망라된 여러 반일조직들이 꾸려지게 되였으며 청년들과 소년들이 침략자들를 때려부시고 나라의 독립을 달성하기 위한 투쟁에서 한몫할 기둥감으로 자라나게 되였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침략자들을 증오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이건 나라찾는 혁명의 길에 떨쳐나서도록 이끌어주시여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신 불세출의 위대한 수령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