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분야에서는 앞으로도 발굴을 많이 하고 연구사업을 심화시켜 땅속깊이에 묻혀있는 유적과 유물을 더 많이 찾아내여 우리 나라 력사의 유구성과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밝히는데 적극 이바지하여야 할것입니다.》 (
구석기시대의 유적과 유물을 더 많이 찾아내여 우리 나라 력사의 유구성과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밝히는데 적극 이바지할데 대하여 주신
신풍리유적(북위 39°28′07″, 동경 125°28′59″, 해발고 50m정도)은 숙천군 신풍리소재지에서 서북쪽으로 2km정도 떨어진 신풍협동농장 제9작업반의 논에서 발굴되였는데 여기에서는 460여점의 짐승뼈화석과 10여점의 골기, 20여점의 석기와 1 200여점의 석기반제품, 9 200여개의 포분화석들이 나왔다.
유적에서 나온 짐승뼈화석에서 종으로 감정된 표본수는 182점, 골격구성요소로 감정된 표본수는 99점이며 나머지 179점은 부스러진 뼈이다. 일부 석기에 의하여 타격을 받은 흔적이 있는 짐승뼈화석들도 있다. 포유동물화석들은 니탄층과 감탕층에서 발견되였는데 심히 풍화되였다.
발견된 동물화석들은 2목 3과 3속 3종으로서 하늘소와 누렁이, 옛소로 감정되였다. 누렁이는 중갱신세 중부에 출현하여 현재까지, 하늘소는 상갱신세에 출현하여 현재까지 살아있는 현생종들이다. 옛소는 상갱신세에 출현하여 현신세에 사멸한 종이다.
짐승뼈화석에 의하여 유적의 퇴적층형성시기의 지질시대와 당시의 자연환경을 밝힐수 있다.
하늘소와 옛소가 상갱신세에 출현한 종들이므로 유적퇴적층의 지질시대는 상갱신세로 볼수 있다.
하늘소와 옛소는 산림변두리와 초원의 서늘한 기후에 적응되여있으며 누렁이는 온대의 산림변두리에서 서식하고있는 종이다. 따라서 유적의 퇴적층형성시기 옛 자연환경은 넓게 펼쳐진 들판과 산림으로 이루어진 서늘한 온대환경이였다는것을 알수 있다.
유적에서 발견된 짐승의 이발화석을 시료로 하여 진행한 전자상자성공명년대측정을 통하여 유물들의 형성년대가 1만 5 700여년전이라는것을 해명하였다.
신풍리유적에서 발견된 짐승뼈화석들의 종수와 그 구성상태는 이 유적이 어떤 유적인가를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구석기시대유적들은 거처지나 로동도구제작지, 사냥터로 되여있다. 지금까지 우리 나라에서 발견된 구석기시대유적들은 대체로 동굴유적이며 로동리몰이사냥터유적을 제외하고는 모두 거처지유적들이다. 구석기시대동굴유적을 남긴 사람들은 동굴을 거처지로 하여 사냥한 짐승을 동굴로 날라와 식생활에 리용하였다. 사냥에서 획득한 결과물을 동굴로 날라오는 과정에 동굴거처지에는 많은 종에 해당하는 수십, 수백마리의 짐승뼈화석이 쌓이게 되였으며 큰 짐승인 경우 완전한 개체가 나오는것은 극히 드물고 운반하기 쉬운 긴뼈(상박뼈, 대퇴뼈, 노뼈 등)들이 많이 발견된다.
그러나 사냥터유적인 경우에는 동굴유적과 같이 짐승의 종수나 마리수가 많지 않다. 당시 사람들은 짐승을 사냥한 즉시 그것을 자기들이 생활하는 거처지로 날라가 집단의 공동의 소유로 넘기고 공동으로 소비하군 하였기때문에 사냥터에는 많은 동물화석이 남아있을수가 없다.
신풍리유적에서는 모두 460여점에 21마리에 해당되는 짐승뼈화석들이 발견되였을뿐이며 여기에서도 아래턱뼈와 웃턱뼈, 이발과 발가락뼈가 대부분이고 식용으로 리용할 고기가 많이 붙어있는 넙적다리뼈는 불과 2~3점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것은 이 유적이 거처지가 아니라 사냥터이며 당시 사람들은 사냥하기에 적합한 대상들만을 선별하여 유리한 지형을 효과적으로 리용하면서 집단적인 몰이사냥을 진행하였다는것을 알수 있게 하는 증거로 된다.
짐승뼈화석에 대한 감정과 분석을 통하여 신풍리유적이 우리 나라 벌방지대에서 처음으로 발굴된 구석기시대 후기의 사냥터유적이라는것을 확증하였다.
1. 하늘소웃턱뼈(ㅅㅍ-9), 2. 하늘소아래턱뼈(ㅅㄴ-12), 3. 하늘소자뼈(ㅅㅍ-25), 4. 누렁이대퇴뼈(ㅅㅍ-28), 5. 누렁이발뒤축뼈(ㅅㅍ-43), 6, 7. 옛소웃턱뼈(ㅅㅍ-5, ㅅㅍ-6), 8. 옛소앞발바닥뼈(ㅅㅍ-50), 척도는 3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