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문학대학 박사 신순희
2018.7.30.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자주는 수령님께서 한평생 간직하고 구현해오신 혁명신조였고 혁명방식이였으며 혁명실천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투쟁에 나서신 첫 시기에 벌써 비범한 예지와 통찰력으로 사대와 교조를 배격하고 사상리론활동도, 혁명투쟁도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해나가야 한다는 혁명의 진리를 밝히시고 실천에 구현해오시였다. 그러한 실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길림시절에 박소심과 각별한 인연을 맺으시고 혁명학설과 관련한 대화를 나누시였던 한가지 사실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길림에 온 박소심은 몸이 약해서 공산주의운동에는 크게 관계하지 않고있었지만 종파분자들에 대해서는 몹시 경멸하였으며 대가 있고 식견이 높은 사람이였기때문에 길림에 드나드는 운동자들은 제가끔 박소심을 쟁취해보려고 하였다.
박소심은 학문앞에 성실하고 꾸준하였으며 지칠줄 모르는 열정과 탐구심을 지니고있었다. 일본어로 번역된 《자본론》을 밤을 새워가며 읽었고 돈이 떨어지면 입은 옷을 저당잡히면서라도 책을 사다보는 지독한 독서가였다. 그는 통속입문서 몇권을 읽고 맑스-레닌주의리론가로 으시대는 행세군이 아니라 맑스나 레닌의 주요저작들을 거의 통달하다싶이 한 사람이였다.
길림의 번화한 거리에는 《신문서사》라는 큰 책방이 하나 있었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주일에도 몇차례씩 그 책방에 들리군 하시였다. 박소심도 그 책방의 단골손님이였는데 그는 매번 사회과학서적을 팔아 주는 매대앞에서 무슨 책이 들어왔는가를 알아보려고 한참씩 서성거리군 하였다. 그러다보니 위대한 수령님과 매대앞에서 마주치는 때가 많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학생들을 데리고 가서 학생도서관에 넣을 책을 한아름씩 사갈 때면 그는 자기 책이나 고르는것처럼 흐믓해하면서 어느 책은 어떻고 어느 책은 꼭 볼 필요가 있으니 사가는것이 좋다는 식으로 조언을 주군 하였다. 이렇게 책이 인연이 되여 수령님께서는 박소심과 친하게 되였고 수령님께서 동대탄에서 학교를 다닐 때에는 한동안 수령님과 한 숙소에서 같이 생활하였다.
한번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프로레타리아독재에 관한 맑스-레닌주의고전가들의 명제에 대하여 그에게 물은적이 있었다.
박소심은 맑스-레닌주의고전가들이 력사발전의 여러 단계에서 프로레타리아독재에 대하여 각이한 측면으로 해석한 명제들을 한참이나 뜬금으로 쭈르르 외우는것이였다.
박소심은 위대한 수령님께 《자본론》을 안내해주고 그것을 해설해주었다. 맑스의 저작이 대체로 그러하듯이 《자본론》에도 난해한 대목들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고전을 파악하는데서는 입문서나 안내자가 필요하였는데 박소심은 그 안내자의 역할을 성실하게 감당하였다.
리론이나 지식으로 보면 그야말로 맑스주의대가라고 불리울만 한 박소심이였지만 수령님앞에서는 그도 모르는것이 있고 막히는데가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맑스-레닌주의고전들에서는 로동계급의 계급적해방이 선차이고 민족적해방이 후차라고 했지만 우리 나라는 우선 일제의 기반에서 벗어나야 로동자, 농민이 계급적으로 해방될수 있지 않는가고 박소심에게 물으시였는데 그는 이 질문에 어정쩡해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맑스-레닌주의고전들에서는 일반적으로 종주국에서의 혁명과 식민지나라들에서의 혁명이 유기적으로 련결되여있다고 하면서 종주국에서의 혁명승리가 가지는 의의만을 강조하고있는데 그렇다면 우리 나라 경우에는 일본로동계급이 혁명에서 승리해야 나라가 독립될수 있단말이 아닌가, 우리는 그들이 승리할 때까지 가만히 앉아있어야 하는가고 다시 알기쉽게 풀어서 물으시였다.
이 질문에 놀란 눈으로 한참동안 위대한 수령님을 바라보던 박소심은 고전에 씌여있는것처럼 로동계급의 계급적해방을 민족적해방에 앞세우고 종주국로동계급의 투쟁을 식민지나라에서의 민족해방투쟁보다 중시하는것은 세계적으로 공인된 국제공산주의운동의 로선상의 문제라고 대답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납득이 잘 안되여 머리를 기웃거리자 박소심은 자기는 맑스-레닌주의를 학술상으로만 연구해왔을뿐이지 조선의 독립과 조선에서의 공산주의건설이라는 구체적인 혁명실천과 결부시켜서는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고백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말을 듣자 어쩐지 서운한 생각이 드시였다. 그의 말과 같이 실천과 유리되여 학문상으로만 공산주의학설을 연구해서는 무슨 소용이 있단말인가?
그때 조선의 청년공산주의자들이 맑스-레닌주의선진사상을 연구하면서 느낀 제일 큰 고충은 조선청년들이 로씨야사람들처럼 혁명을 통해 사회를 변혁하고 나라를 해방해야겠는데 조선의 형편과 10월혁명이 일어나던 로씨야의 형편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였다.
락후한 반봉건국가인 조선과 같이 식민지나라에서 무산혁명을 어떻게 하겠는가, 일제의 가혹한 탄압때문에 자기 조국을 떠나 중국땅에서 싸우지 않으면 안되는 조건에서 중국을 비롯한 이웃나라 혁명과 어떻게 련계를 취하며 조선혁명앞에 지닌 민족적임무와 세계혁명앞에 지닌 국제적의무를 어떻게 수행하겠는가 하는 복잡한 문제들이 제기되였다.
선행한 기성리론을 읽으시면서도 언제나 혁명실천에서 제기되는 이러한 복잡한 문제들과 결부시켜 음미해보시고 명확한 일가견을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앞에서 맑스-레닌주의대가인 박소심도 말문이 막혀버리지 않을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