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김득신과 그림 《량반과 상민》

 2017.8.12.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생활의 본질과 사회발전의 합법칙성을 반영하여온 사실주의미술은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인민대중의 투쟁이 앙양되던 력사적시기마다 뚜렷한 흔적을 남기며 한단계한단계 발전하였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15권 347-348페지)

김득신(1754-1822)은 18세기말-19세기초에 활동한 도화서 화원으로서 조선봉건왕조후반기를 대표하는 사실주의화가의 한 사람이였다.

김득신은 대대로 화원생활을 한 가정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아버지 김응리, 큰아버지 김응환, 외할아버지 한중흥은 모두가 도화서의 화원이였으며 동생들인 김석신, 김량신, 아들 김건종, 김하종 등도 도화서 출신들이였다. 그의 집안이 얼마나 많은 화원들을 배출하였는가 하는것은 형제들은 물론이고 자식들과 지어는 사돈집까지 거의가 화원들이였다는데서 잘 알수 있다.

김득신은 1754년에 출생하였는데 자는 현보, 호를 긍재 혹은 홍월원이라고 하였으며 첨사벼슬을 지냈다.

그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외켠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화원으로 있던 유리한 가정환경속에서 그림그리기에 온갖 정력을 다 바쳤다.

조상들의 재능을 넘겨받은 그는 그림을 잘 그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도화서 화원으로 되였으며 특히 인물화를 잘 그리는 화가로 명성을 떨치였다.

김득신의 인물화는 내용과 형식에서 김홍도를 계승한것으로 하여 그림에 이름을 쓰지 않으면 누구의 그림인지 잘 알수 없었다고 한다.

하기에 김득신의 그림을 본 식견있는 사람들은 《김홍도와 견줄만 하다》고 그의 솜씨를 높이 평가하였다.

1783년 29살에 김득신은 조정에서 실시한 화원선발시험에 참가하여 인물화, 산수화, 화조령모화 등 여러 방면의 그림을 그렸는데 얼마나 잘 그렸던지 시험에 함께 참가하였던 리인문이나 다른 사람들보다도 높은 점수를 받아 일약 화원으로 뽑히였다고 한다.

김득신의 대표적인 작품들로는 《8폭병풍》과 《인물화첩》, 《농가인물도》를 비롯하여 여러점의 인물화첩 그림들이 있다.

특히 《량반과 농민》, 《소모는 아이》, 《장에서 돌아오다》, 《신부의 행차》, 《범》, 《매》 등 여러점이 가장 우수한것이다.

그림 《량반과 상민》(27×33cm, 종이, 담채)  김득신

《량반과 상민》 (27×33cm, 종이, 담채) 김득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선미술박물관에 소장되여있는 김득신의 그림 《량반과 상민》을 보시고 당시 량반과 상민간의 계급관계를 잘 보여준 좋은 작품이라고 교시하시였다.

작품은 하늘소를 타고 거드름을 부리며 길을 따라가는 량반과 그 앞에서 땅에 닿도록 허리를 굽히고있는 상민(농민)을 통하여 당시 봉건적신분관계의 일면을 생동하게 보여주고있다.

그림에는 하늘소를 탄 거만한 량반과 고삐를 잡은 하인, 그리고 보따리를 지고 따라나선 심부름군들을 한켠에 묘사하고 량반행차를 만나 가던 걸음을 멈추고 허리굽혀 절하는 농민부부를 반대켠에 묘사하였다.

화가는 비록 크지 않은 화면이지만 각이한 인물들의 성격을 매우 섬세하게 밝혀내였다. 량반은 하늘소우에서 거드름을 피우며 점잔을 빼지만 눈길은 젊은 녀인을 내려다보고있다.

량반의 모습과 함께 하인들 역시 량반을 등대고 인민들을 하찮게 대하는 인물들로 그려져있다. 길잡이군의 형상과 보따리를 짊어진 다른 하인 역시 그러한 성격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있다.

먼길을 가는 상민(농민)부부의 모습은 량반행차와는 달리 어질고 착하게 형상되였다.

작품의 설득력있는 구성과 능숙한 선묘에 의한 간결한 묘사, 정확한 필치로 그려낸 환경 등은 형상의 예술적수준을 높여주고있다.

이것은 김득신이 근로하는 인민들의 다양한 생활을 사실에 기초하여 진실하게 그리였다는것을 보여준다.

김득신의 화풍은 이와 함께 화면의 구도와 생활적계기들을 재치있게 설정하고 섬세하고 개성적이며 해학적인 수법으로 등장인물의 성격과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고있는데서도 나타나고있다.

그림에서 특징적인것은 하늘소를 탄 량반의 형상이다. 량반이 쓴 갓과 푸른빛의 도포자락, 감색안장과 손에 쥔 큰 부채, 코밑에 간사하게 기른 팔자수염과 작고 째진 눈은 지배계급으로서의 성격이 잘 나타나있다.

이와 함께 자기는 하늘소에 편안히 앉아가면서도 하인들에게는 무거운 짐을 지워 따라오게 하는 모습은 억압자, 지배자로서의 량반의 본성을 잘 형상하였다. 특히 상민의 안해 얼굴에 가있는 가늘게 뜬 실눈은 량반지배계급의 정신세계를 잘 부각시키고있다.

화가는 량반의 이러한 모습을 통하여 이른바 도덕적청렴성을 뇌이면서 온갖 추한짓을 다하는 량반들의 위선적인 면모를 드러내보이고있다.

이와 함께 상민의 형상을 천대받고 억압받는 모습이 안겨오도록 두드러지게 부각시킨것도 이 그림이 거둔 성과의 하나라고 볼수 있다.

그림에서는 조선화의 기본원리인 함축과 집중의 원리에 기초하여 인물들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화면 앞중심에 두드러지고 선명하게 강조와 생략의 수법들을 적용하였다.

그러나《량반과 상민》에는 일련의 시대적 및 계급적제한성을 띠고있다.

그것은 불합리한 봉건사회를 더 깊이 해부하지 못한것이다.

이 시기에는 종래와는 달리 농민과 수공업자, 도시빈민, 나무군, 어부 등 천대받고 억압받던 인민들의 모습이 새롭게 참신하게 형상되여 그것이 하나의 주제령역으로 되여있은것은 사실이지만 봉건통치배들을 직접 반대해 싸우는 인민들의 모습을 형상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천대받는 인민들의 모습을 계급성과 결부하여 더 참신하게 그려내지 못한것이다.

이러한 제한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 창작된 《량반과 상민》은 이전시기에 찾아볼수 없었던 내용과 조선화의 여러가지 기법과 수법들이 적용된것으로 하여 우리 나라 민족회화발전에서 자기 몫을 뚜렷이 차지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