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있는 력사유적유물들을 더 많이 발굴하여 민족문화유산의 보물고를 풍부히 해나가야 합니다.》
주체108(2019)년 11월 24일부 《로동신문》에 《덕수리씨세보》를 나라에 기증한 리연희녀성의 애국적소행이 소개되면서 또 하나의 문화재가 세상에 알려져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근 30년전 세상을 떠난
사람에게는 누구나 다 자기의 조상이 있다.
우리 선조들은 예로부터 자기의 성씨와 시조, 자기 조상들가운데서 력사에 널리 알려진 인물들을 기록하여 후세에 전하면서 민족적전통과 고유한 민족풍습을 지켜왔다.
조국과 민족을 누구보다 사랑하신
주체81(1992)년 5월에는 개성에 있는 왕건왕릉에까지 찾아오시여 우리 나라의 첫 통일국가 고려의 창건자인 왕건의 무덤을 잘 꾸려주자고 은정넘친 교시를 주시였다.
이 격동적인 소식에 접한 왕씨자손들이 그 하늘같은 사랑과 은덕이 너무도 크고 고마와 수백년이나 고이 간직해내려오던 《개성왕씨족보》와 왕의 옥새를 삼가 올리였을 때에는 왕건가문의 족보가 나타났단말이요, 시대가 좋으니 참으로 희한한 일이 다 있소라고 말씀하시며 족보를 몸소 보아주시고 잘 보관하도록 대책을 취해주시였을뿐아니라 왕건의 후손들에게 사랑의 선물까지 보내주시는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신 우리
이때 해주시 산성동에 살고있던 률곡 리이의 후손인 리연희녀성의 가정에서도 형제들과 자식들이 모여앉아 조상대대로 내려오던 가문의 계보를 바칠 의논을 하였지만 왕건과 같이 큰 인물도 없는 자기 가문의 족보가 무슨 가치있는 유물로 되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며칠간을 바재이다가 끝내 바치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러던 2018년말 어느날 텔레비죤에서 신사임당과 그의 아들 리이에 대한 력사이야기 《신사임당》이 방영되였다.
신사임당은 멀리 고려태조의 충신이였던 신숭겸의 후손으로서 그림과 글씨, 시문에 뛰여났는데 특히 유명한 녀류화가로 이름을 떨쳤으며 아들인 리이는 16세기 중엽의 정치가, 학자로서 력사에 뚜렷한 자욱을 남기였다.
지금으로부터 60년전 9월
리률곡은 대사간, 리조판서를 비롯한 여러 관직을 력임하면서 정치가로서의 두각을 나타내였다. 당시 당파싸움의 소용돌이속에서도 그는 온갖 사회적페단을 없애고 나라의 발전과 국방력강화를 위한 여러가지 대책들을 제기하였다. 특히 1582년 리이가 내놓은 10만양병설은 후날 조정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으며 국방을 강화하기 위한 그의 여러 제기들이 옳았다는것은 임진조국전쟁시기에 그대로 증명되여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벼슬을 그만 둔 후 리이는 황해도 벽성에 내려가 소현서원을 차려놓고 후대양성과 학문연구에 힘썼다. 그는 리기이원론을 주장한 대표적인 철학가이기도 하다.
리률곡을 선진적인 사상을 가진 명인으로 평가해주시며 후대들에게도 알려주어야 한다고 하신
가문의 후손들도 얼굴을 모르는 자기의 조상들을 잊지 않고 내세워준 사실에 감격하여 석담구곡을 찾은 리연희녀성은 조상들에게 로동당시대에 새롭게 태여난 가문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를 전하였으며 그후 해당 부문 일군들을 찾아가 온 가족의 절절한 심정을 담아
이 《덕수리씨세보》는 덕수 리씨의 1대조상으로부터 시작하여 리이를 비롯한 후손들의 이름과 행적을 기록한 족보책이다.
《덕수리씨세보》에서 덕수는 본(가문의 시조가 태여난 고향)으로서 오늘의 개성시 개풍지역을 가리킨다. 리씨는 우리 나라의 성가운데서 김씨 다음으로 즉 두번째로 큰 성이다. 따라서 《덕수리씨세보》는 덕수가 본인 리씨가문의 족보라는 뜻이다.
현재 전해지는 덕수 리씨가문의 족보는 여러 종류이나 그 명칭이 조금씩 차이나며 책수와 판본도 각이하고 일부 결질도 있다. 이 책들에 기록된 덕수 리씨의 1대조상으로부터 10대손까지는 대체로 같지만 그다음부터는 갈래를 쳐서 내용이 서로 다르다.
덕수 리씨의 가문은 조선봉건왕조 중종-영조때에 이르는 근 300년간 전성기를 보였는데 이름난 인물들이 문관과 무관의 두 계통으로 갈라진것이 특징적이다. 그가운데서 우리 나라 력사에 커다란 흔적을 남긴 대표적인물이 문관으로는 리이(1536-1584년)이고 무관으로는 리순신(1545-1598년)이다.
새로 알려진 《덕수리씨세보》는 19세기 중엽에 나온것인데 1책으로 되여있고 덕수 리씨의 시조로부터 25세손까지 올라있다. 세보를 보면 덕수 리씨가문의 시조는 고려때 중랑장을 지낸 리돈수이다. 책의 앞부분은 덕수리씨가문의 다른 계보들과 같지만 뒤부분은 덕수 리씨의 13세손인 률곡 리이의 직계자손들을 위주로 구성되여있고 리이의 후손들에 의해 편찬간행된것이므로 리이의 족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11차 비상설물질유산심의평가위원회에서는 리연희녀성이 기증한 《덕수리씨세보》가 진품이며 보관가치가 있는 력사유물이라고 일치하게 평가하였으며 감정결과 리이의 족보로서는 유일본이라는것을 확증하였다.
비록 두텁지 않은 한권의 책이지만 《덕수리씨세보》는 지난날 우리 나라 력사에 뚜렷한 이름을 남긴 명인인 률곡 리이와 그의 후손들에 대하여 전하는 덕수리씨가문의 족보책인것으로 하여 가치있는 민족고전으로, 력사유물로 되며 우리 당의 민족유산보호정책의 정당성을 실증해주는 생동한 실물자료로 된다.
참으로 절세위인들의 숭고한 민족애와 크나큰 은정속에 우리 민족문화유산의 보물고는 더욱 풍부해지고 민족의 력사는 찬란히 빛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