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박상철
2021.5.4.
한평생 인민들속에 계시면서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오신 어버이수령님의 인민사랑의 위대한 혁명실록은 인민생활향상에서 중요한 몫을 담당하고있는 평양곡산공장에도 뜨겁게 어려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평양곡산공장은 인민생활을 향상시키는데서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김일성전집》 증보판 제6권 185페지)
위대한 수령님께서 해방직후 당시 우리 나라에 있던 공장들가운데서 맨 처음으로 평양곡산공장을 찾으신것은 조국에 개선하시여 평양에 입성하신지 이틀만인 주체34(1945)년 9월 24일이였다.
마중나온 공장로동조합일군들의 인사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수고한다고, 오늘 시간을 내여 공장형편을 알아보러 나왔다고 하시면서 공장의 여러 생산공정들을 돌아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곡산공장의 파괴상만 보아도 일제가 우리 나라의 산업시설들을 얼마나 혹심하게 파괴하였는가 하는것을 잘 알수 있다고, 그러나 공장의 로동계급이 나라의 주인, 공장의 주인이라는 높은 자각을 가지고 달라붙으면 공장을 얼마든지 자체로 복구하여 운영할수 있다고 하시면서 전체 로동자, 기술자들이 힘과 기술과 지혜를 합쳐 일제가 파괴한 공장을 빨리 복구하여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해방전 평양곡산공장에서는 강냉이를 가공하여 농마와 기름을 비롯한 몇가지 식료품밖에 생산하지 못하였고 그 생산량도 보잘것없었다. 그나마 생산량의 대부분을 일본으로 실어감으로써 제품을 생산한 우리 로동자들은 맛도 볼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제는 공장에서 생산되는 모든 식료품들이 나라의 주인으로 된 로동자들과 인민들에게 돌려질것이라고 하시면서 공장의 로동계급이 힘과 기술과 지혜를 합쳐 자체의 힘으로 파괴된 공장을 하루속히 복구하고 식료품을 많이 생산하여 인민들에게 보내줌으로써 건국사업에 적극 이바지하기를 바란다는 크나큰 믿음과 기대를 표명하시였다.
해방후 우리 나라의 경제형편은 매우 어려웠다. 일제의 책동으로 나라의 거의 모든 산업시설들이 무참히 파괴되였으며 파괴된 공장을 복구하고 운영하는데 필요한 자금과 자재도 없었고 기술자도 얼마 없었다. 나라의 경제를 추켜세우기 위해서 해결하여야 할 문제도 많았고 선차적으로 추켜세워야 할 경제부문, 공장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평양에 입성하시는 그 길로 인민들의 생활을 안정향상시키는데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평양곡산공장을 찾으시는것으로부터 새 민주조선의 경제건설을 시작하시였다. 이 한가지 사실만 놓고보아도 혁명투쟁의 첫시기부터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시면서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오신 우리 수령님께서 지니신 인민관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잘 알수 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들의 식생활을 위하여 평양곡산공장을 찾아주시였던 그날로부터 혁명생애의 전기간 무려 15차례나 평양곡산공장을 찾으시고 더 많은 식료품들을 생산하여 인민들에게 공급할데 대한 강령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으며 이 공장을 우리 나라 식료공업의 모체공장,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보배공장으로 전변시켜주시였다.
오늘 평양곡산공장은 위대한 수령님들의 숭고한 인민관을 그대로 체현하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현명한 령도와 세심한 보살핌에 의하여 국산화가 실현된 우리 나라 식료공업의 본보기공장, 현대화된 대규모식료가공기지로 전변되여 인민생활향상에 적극 이바지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