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법학부 박사 부교수 장철준
2021.2.18.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나는 혁명의 길에 나선 첫날부터 오늘까지 언제나 동지들과 인민들의 사랑과 보살핌속에서 살아왔습니다. 혁명동지들과 인민들은 간고한 혁명투쟁의 나날에 나를 극진히 사랑하고 보호해주고 성심성의로 도와주었으며 시련의 시기마다 나에게 용기와 신심을 주고 나를 고무해주었습니다.》 (《김일성전집》 제92권 215페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멸의 혁명력사에서 돈 3원에 깃든 이야기라면 우리 인민모두는 누구나 다 수령님의 창덕학교시절 친우였던 강윤범동지에 대하여 먼저 생각하게 된다.
주체47(1958)년 8월 어느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강윤범동지에 대하여 회상하시면서 그는 창덕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자신의 송아지동무라고 추억깊게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지라는 말은 한자로 한가지 동자에 뜻 지자를 써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다시말하여 사상이 같은 사람, 같은 사상을 가지고 같은 목적을 위하여 투쟁하는 사람을 말한다고 하시며 어려운 시기에 자신을 도와준 그에게서 처음으로 동무의 사랑, 동지의 사랑을 느끼시였고 여러가지 사랑가운데서 동지의 사랑이 가장 값있고 귀중한 사랑이라는것을 체험하였다고, 자신께서는 혁명을 하면서 수많은 동지들의 사랑과 보호를 받아왔지만 어린시절에 자신을 성심성의로 도와준 강윤범동지를 잊을수 없다고, 그는 나의 첫 동지라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그후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윤범동지에 대하여 자주 회상하시였는데 1960년대초 어느해에는 창덕학교시절에 그와 함께 지내시던 일들을 회고하시면서 그는 자신과 배짱이 맞는 동무였다고, 일요일이면 자주 시내로 들어가 모란봉의 력사유적들을 함께 돌아보면서 왜놈들에게 빼앗긴 조국을 하루빨리 찾아야 되겠다는 생각도 하였고 토성랑을 돌아보며 누구나 다 잘사는 사회를 세워야 하겠다고 말해주었다고 하시였다.
주체57(1968)년 4월 21일 만경대를 찾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강윤범동지에 대하여 또다시 회고하시면서 그의 아버지는 김형직선생님의 혁명사업을 잘 도와주었다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생애의 전기간 강윤범동지를 마음속에 첫 동지로 간직하시였기에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1권에서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강윤범동지가 자신께 준 돈 3원은 부자들의 백만금에도 비길수 없는 돈이였다고 하시면서 강윤범은 나를 광복의 길로 전송해준 잊지 못할 동지였고 친우였다, 나는 지금도 그날 평양역에서 눈물을 머금고 바래주던 강윤범의 모습을 잊지 않고있다고 감회깊이 쓰시였다.
첫 동지!
눈보라세찬 그날 광복의 천리길을 떠나시는 어버이수령님을 바래우러 돈 3원과 편지를 가지고 뛰여나와 바래주던 그의 모습은 이렇듯 수령님의 마음속에 뜨겁게 새겨져있었으니 그는 오늘도 우리 당의 품속에서 영생의 언덕에 서있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