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외국어문학부 김원금
2019.9.20.
날에 날마다 기적과 혁신으로 새롭게 변모되는 조국의 모습을 바라볼 때면 한평생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언제나 인민들속에 계시면서 끊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을 걷고 또 걸으시며 우리 인민들에게 보다 유족한 생활을 안겨주시려 온갖 심혈을 다 바쳐오신 어버이수령님의 자애로운 영상이 못견디게 그리워진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참으로 우리 수령님은 문무를 겸비하시고 다재다능하신 위대한 령도자이십니다. 우리 인민이 정치와 경제, 과학과 교육, 문학예술을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빛나는 성과를 이룩할수 있은것은 수령님께서 탁월한 령도예술과 령도적수완으로 모든 부문 사업을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기때문입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16권 464페지)
오늘 우리가 사회주의강국건설의 모든 분야에서 이룩한 자랑찬 성과는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하고 과학적인 령도와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을 령도해오시면서 일군들에게 모든 사업에서 수자를 중시하며 무슨 일을 하든 과학적인 원리와 방법에 의거할데 대하여 강조해오시였다.
경제관리사업에서 소수점밑의 수자를 귀중히 여기시며 우리 일군들의 사업방법을 하나하나 바로잡아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에 대한 이야기는 수없이 많다.
주체65(1976)년 11월중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라일에 바쁘신 속에서도 동해지구를 찾으시고 수산부문 열성자회의를 몸소 지도하시였다.
여러 일군들의 토론들을 주의깊게 들으시며 물고기잡이에서 나서는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렁우렁하신 음성으로 신창수산사업소 지배인동무의 토론을 들어보자고 말씀하시였다.
회의에서 토론까지 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당황함을 숨기지 못한채 연단에 나선 지배인을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시며 그의 이름과 고향도 물어주시면서 수산부문에서 10년간 사업하여온 지배인의 남다른 경력까지 들으신 그이께서는 수산사업소의 사업정형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시였다.
지배인은 사업소의 규모와 종업원수에 대하여 먼저 말씀올렸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수산사업소가 가지고있는 배가 모두 몇척이나 되며 그가운데서 기관선을 마력수별로 이야기하라고 하시였다.
그가 사업소에 있는 배가 모두 몇척이라는것을 말씀드리면서 배를 부류별로 구체적으로 보고드리기 시작하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수첩에 무엇인가 적으시다가 문득 그의 이야기를 중지시키시고 배가 2척이 비는데 어떻게 된것인가고 물으시였다.
실지 그가 다시 계산해보니 배의 종류와 마력수별수자가 배의 총수자와 일치하지 않았다. 50여척이나 되는 배를 부류별로 이야기하다가 배 2척을 놓쳤다는 생각이 든 지배인의 얼굴은 순간 확 달아올랐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시며 동무네 수산사업소가 부자기업소라고 하시며 토론을 계속하라고 이르시였다.
물고기생산계획과 생산량에 대한 지배인동무의 토론을 들으신 그이께서는 최근 3년간 물고기를 각각 얼마씩 잡았는가를 알아보시고나서 올해에는 얼마나 잡았는가고 물으시였다.
지배인은 9 000t나마 잡았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정확히 몇t인가고 재차 물으시였다.
물고기잡이정형에 대하여 말할 때면 언제나 수자뒤에 《여t》, 《나마》라는 꼬리를 다는데 버릇된 그는 어쩔바를 몰라하다가 9 004t이라고 대답올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머리를 가볍게 끄덕이시며 물고기가 4t이면 적지 않은데 나는 원래 소수점밑의 수자를 귀중히 여깁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회의참가자들은 4t이라는 작은 수자에까지 그처럼 깊은 관심을 가지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에서 커다란 충격을 받지 않을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숭엄한 감정에 휩싸여있는 회의참가자들을 둘러보시며 우리 일군들이 경제를 잘 운영하자면 작은것을 볼줄 알아야 합니다, 원래 경제관리란 물감장사하듯이 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경제관리운영에서 계획도 세부화하고 생활조직도 세밀하게 짜고들것을 늘 요구하고있습니다라고 하시며 일군들의 사고관점과 일본새를 바로잡아주시였다.
주체62(1973)년 11월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 가금업발전을 위하여 광포오리공장을 찾아주시였다.
이날 공장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공장안의 초급일군들과 로동자들의 참가하에 년산 1만t의 오리고기생산을 위한 협의회가 진행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저 40일령오리의 사료단위를 알아보시였다.
그런데 같은 품종의 오리들의 사료단위를 놓고 공장의 한 일군은 얼마라고 보고드리고 다른 일군은 또 얼마라고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수령님께서는 왜 두 사람의 말이 서로 차이나는가고 하시면서 여기서처럼 오리를 많이 생산하는데서는 사료단위의 구체적인 소수점까지도 아주 중요하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 가르치심은 그때까지 일군들의 관심밖에 두고있던 사료단위의 가장 작은 소비기준까지도 깊이 념려하여 하신 귀중한 교시이였다.
후에 실지로 차이나는 그 소수점을 가지고 계산해본데 의하면 그것은 한해 3 000t의 고기를 생산하는 경우 100t의 사료가 더 들고 안들고 하는 수량으로서 이것이면 70t의 고기를 생산할수 있는 막대한 량이였다.
또 어느날에는 북변의 머나먼 현지지도의 길에 산간마을의 농촌상점에도 들리시여 인민생활을 료해하시면서 상점판매원의 판매기록부를 보아주시고 소수점을 바로 찍지 못하여 합계를 잘못 낸것을 바로잡아주신 감동적인 이야기를 비롯하여 나라의 경제를 빨리 발전시키고 인민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바쳐오신 심혈과 로고를 다 헤아리자면 끝이 없다.
우리는 인민들에게 유족한 물질문화생활을 보장해주시기 위하여 불면불휴의 현지지도의 길을 걸으시며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일군들의 사업방법과 일본새도 하나하나 가르쳐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헌신의 로고와 불멸의 업적을 깊이 체득하고 대를 이어 길이 빛내여나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