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재정금융학부 리명진
2024.4.12.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는 20세기의 가장 걸출한 수령이시며 절세의 위인이시다.》
조선인민은 어버이수령님과 혈연의 정을 맺고 하나의 대가정이 되여 끝없는 행복을 누려왔다.
어버이수령님의 각별한 보살피심속에 온갖 행복과 영광을 다 받아안은 가정들중에는 조택주로인의 일가도 있다.
주체24(1935)년 1월 하순 제1차 북만원정을 마치시고 귀로에 오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천교령부근에서 촉한으로 몸져눕게 되시였다.
16명의 유격대원들은 병환에 계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천신만고하여 로야령 산중턱의 태고연한 수림속에 자리잡은 조택주로인의 집으로 찾아갔다.
조택주로인은 김일성대장님께서 병환에 계신다는데 하늘이 무너지면 무너졌지 그분께서 촉한때문에 고생하시다니 될말이냐고 하면서 지성을 다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택주로인가정의 어려운 살림살이를 생각하시여 3~4일이 지난 후 대오를 출발시키려고 하시였지만 조택주로인은 제 나라 군대를 잘 섬기는것은 백성의 응당한 도리이고 직분인데 페는 무슨 페인가고 하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떠나시는것을 극력 만류하였다.
조택주로인의 맏며느리인 최일화어머니도 비록 백미는 없었지만 조, 콩, 보리, 귀밀, 감자와 같은 잡곡으로 하루 세끼씩 위대한 수령님께 정성껏 진지상을 차려드리였다.
조택주일가의 꾸준한 지성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건강은 빨리 회복되였으며 10여일이 지나 유격대원들은 다시금 귀로에 오르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택주로인과 헤여지시면서 살길을 찾아온 이국땅에서까지 해빛을 보지 못하고 숨어살아야 하니 조선의 아들들의 죄가 크다고, 그렇지만 이제 해빛을 보면서 살게 될 날은 꼭 온다고 하시면서 봄이 되면 놈들의 《토벌》이 심해지고 이 골안에서도 총소리가 잦아지겠는데 고생스럽겠지만 라자구쪽으로 이사를 가라는 부탁을 남기고 떠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택주로인일가와 맺은 인연을 귀중히 여기시고 그해 6월 태평구에 이사한 이 일가 사람들을 몸소 찾아주시였다. 그리고 살림에 보태쓸수 있는 용돈도 남겨주시고 다음날에는 로흑산전투에서 로획한 백마 한필도 보내주시였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백두산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시면서 조택주로인일가를 만날 기회가 없으시였지만 그들을 항상 잊지 않고계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수십년동안 조로인일가의 행처를 찾아 안타깝게 수소문하시여 주체48(1959)년에 드디여 중국동북지방에 살고있던 조로인일가의 행방을 찾게 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이듬해에 귀국한 67살의 최일화어머니를 만나주시고 태평구에서 헤여진 다음 어떻게 살았는가, 조택주할아버지가 1953년에 세상을 떠나셨다는게 사실인가, 다왜즈의 귀틀집에는 더러 가보았는가를 일일이 물어주시며 육친적사랑을 돌려주시였다.
주체50(1961)년 4월 15일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49돐을 맞으며 최일화어머니는 어버이수령님께 한개의 만년필을 드리면서 수령님께서 자기 집에 주신 백마가 소로 바뀌고 그 소값으로 만년필을 사게 된 경위에 대하여 말씀드리였다. 그러면서 어버이수령님께서 보시는 일이 잘되고 부디 만년장수하시라고 만년필을 드리오니 성의로 아시고 받아주실것을 절절히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백마가 만년필로 되기까지 조택주일가가 걸어온 로정우에 압축되여있는 우리 인민의 수난많은 민족사에 대하여 감개무량한 심정으로 더듬어보시였다.
그해 8월 15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동강기슭에 자리잡고있는 최일화어머니의 집을 찾아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최일화어머니에게 집이 마음에 드는가, 한평생 두메산골에서만 살아오신 어머니이기에 강기슭에 집을 잡아주었는데 혹시 산이 그립지 않은가, 산을 그리워할것 같아서 모란봉가까이에 집을 정했으니 산보랑 많이 하시라고, 앞으로 더 좋은 집을 지으면 어머니를 새 집에 또 모시겠다고 하시며 다심한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최일화어머니가 생존해있을 때 온갖 은정을 다 베풀어주시고도 그가 사망하자 애국렬사릉에서 영생의 삶을 누리게 하여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최일화어머니뿐 아니라 그의 아들과 딸들에 대해서도 관심하고 사랑을 돌려주시였다.
백마가 만년필로 되기까지 조택주로인일가가 남긴 이야기는 이 나라 수많은 가정들에 깃들어있는 어버이수령님의 사랑을 전하는 이야기들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