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박성혁
2021.5.3.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우리 인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갈피에는 인민들에게 맛좋은 감을 더 많이 먹이시려고 그토록 마음써오신 가슴뜨거운 이야기도 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의 한생은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고 사상과 령도에 구현하여 현실로 꽃피우신 인민적수령의 숭고한 한생이였다.》
주체48(1959)년 6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원도 안변군 천삼협동농장을 현지지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관리위원회앞마당에 서있는 애어린 3년생 감나무앞에서 걸음을 멈추시고 농장에 저런 감나무가 얼마나 있으며 감의 수익성이 어떤가고 물으시였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하여도 감나무는 농장원들이 집뜰안에 몇그루씩 가꾸고있기는 하였지만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보니 감나무가 있는 집이 모두 몇집이나 되는지 또 한나무에 열매가 얼마나 달리는지 그것을 딱히 아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위대한 수령님께 누구 하나 제대로 대답을 올리지 못하였다.
감나무를 유심히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감은 홍시로도 먹고 울궈서도 먹을수 있는 참 좋은 과일이라고 하시면서 앞으로 이 농장에서 감을 많이 심어 천삼땅을 감나무로 뒤덮이게 하라고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농장을 다녀가신후 천삼리농장원들은 야산마다에 감나무동산을 꾸려나갔다.
그러던 주체50(1961)년 10월초 또다시 농장을 찾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금강산으로 가는 길가에도 감나무를 심고 야산에도 감나무를 많이 심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감은 수확이 높고 로력도 들지 않으며 벌레도 먹지 않는 좋은 과일이라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는 나라를 건설하여 남에게 넘겨주는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후대들에게 넘겨주는것만큼 훌륭한것을 넘겨주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피로써 찾은 이 강산을 과일동산으로 더 잘 꾸려 인민들에게 사철 맛있는 과일을 더 많이 먹여야 하겠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관리위원회 앞마당에 이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가지가 휘도록 열매가 주렁진 한그루의 감나무앞에서 걸음을 멈추시고 옆에 섰던 농장의 일군들에게 이 감나무에 몇알이나 달렸을것 같은가고 물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뜻밖의 물으심에 일군들은 감나무에 달린 감알들을 나름대로 가늠하여 500알정도 달렸을것 같다고 말씀드리였다.
일군들의 대답을 다 들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가볍게 머리를 흔드시고 다시한번 감나무를 올려다보시면서 800알은 더 달렸을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은 기쁨에 넘쳐계시는 어버이수령님을 우러르며 앞으로 감나무를 더 많이 심고 가꾸어 마을을 살기 좋은 고장으로 꾸릴 결의를 굳게 다지였다.
어느덧 시간은 퍼그나 흘러 위대한 수령님께서 떠나실 시간이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앞으로 일을 잘하여 감동산을 만들어놓은 다음 다시 오겠다는 사랑의 약속을 하시고 농장을 떠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다녀가신후 농장에서는 곧 감수확을 하였는데 어버이수령님께서 추산해주신 그 감나무에서도 정성들여 감을 따들이였다.
그런데 신통히도 따들인 감을 세여보니 모두 803알이였다.
이 803알이라는 수자는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이 농장인민들의 다함없는 흠모의 정을 더욱 두터이하였다.
그때부터 이농장 사람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아주신 그 감나무를 《800알감나무》라고 정을 담아 불렀다.
이 수자속에는 한평생 인민을 위하여 이른 새벽의 논두렁길, 밭머리길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쉼없이 걸으시며 손수 벼알도 세여보시고 한이삭의 강냉이무게도 몸소 가늠해보시는 세심하시고도 뜨거운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이 깃들어있는것이였다.
진정 그 감나무는 온 나라에 과일나무가 우거지고 그 나무들마다에서 풍기는 과일향기속에 우리 인민이 행복하게 살 그날을 앞당겨오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을 전하여주고있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가 있었기에 오늘 강원도는 우리 나라에서 이름있는 감고장으로 소문이 났으며 인민들의 식생활에 커다란 보탬을 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