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법학부 박사 부교수 김철희
2021.1.6.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뜨거운 인정미와 한없이 검박하고 소탈한 품성을 지니시고 인민들을 따뜻이 대해주고 보살펴주시였다.》
풍치수려한 묘향산의 국제친선전람관에 전시되여있는 수많은 선물들가운데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오래동안 리용하여오신 낡은 승용차도 있다.
이 차는 위대한 수령님을 동방의 영웅이시라고 높이 경모하면서 이전 쏘련의 당 및 국가지도자가 삼가 올린 유명한 《짐》승용차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바로 이 승용차를 타시고 새 조국건설시기에 이어 전후에도 조국의 방방곡곡을 찾으시며 우리 조국과 인민을 승리의 한길로 이끌어주시였다.
그 과정에 승용차의 차바퀴만 하여도 몇십개나 갈아대였는데 이 사실 하나만을 보아도 승용차가 얼마나 낡았는가를 잘 알수 있다.
《짐》승용차가 너무 오래되고 낡을대로 낡아 새차로 바꿀데 대한 의견이 일군들속에서 분분히 제기되였지만 그때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으시였다.
주체51(1962)년 8월 위대한 수령님께서 평안북도 창성군에 가계시던 때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어느 한 회의를 지도하시는 시간을 리용하여 운전수는 차를 정비하고있었다. 승용차가 낡았기때문에 운전수는 품이 많이 드는 차정비를 회의시간과 같은 짬시간을 리용하여 하군 하였던것이다.
얼마후 회의를 결속하시고 밖으로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차정비에 여념이 없는 운전수에게로 다가오시여 승용차를 유심히 살펴보시다가 《이제는 이 차도 낡았지.》라고 말씀하시며 운전수를 바라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제는 차를 바꾸기로 결심하신 모양이라는 생각에 운전수는 너무 기뻐 차가 이제는 수명이 퍽 지났다고 말씀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에 긍정하시면서 다시 승용차를 자세히 살펴보시였다.
돌이켜보면 눈오는 겨울이나 비내리는 여름이나 조국의 높낮은 산발들과 들판, 자갈밭과 진펄길도 가림없이 수천수만리길을 달리고 달려온 승용차였고 소나기 쏟아지는 여름날 진창에 빠진 뜨락또르까지도 끌어준 사연깊은 승용차였다.
하많은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승용차를 한동안 살펴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운전수에게 우리 나라에서 생산되는 《승리58》형자동차기관의 마력에 대하여 물으시였다.
《승리58》형자동차기관이 70hp이라는 운전수의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차의 기관도 70hp이 아닌가고 다시 물으시였다. 승용차의 기관도 70hp이라는 운전수의 별생각없는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승용차에 《승리58》형자동차기관을 달면 이 차를 계속 쓸수 있겠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승리58》형자동차기관에 대하여 물으신 사연을 뒤늦게야 알게 된 운전수가 《수령님. 그렇게는 못합니다.》라고 절절히 말씀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운전수의 어깨에 다정히 손을 얹으시고 지금 나라에서는 인민들이 애써 마련한 돈 한푼한푼을 매우 귀하게 쓰고있다고, 우리에게는 아직 돈이 많지 못하여 인민들에게 신발도 넉넉히 공급해주지 못하고있다고, 새 승용차를 사올 돈이 있으면 인민들이 신을 신발 한컬레라도 더 사오라고 하겠다고, 잘 수리하면 이 승용차를 얼마든지 타고 다닐수 있다고, 새차를 사오느라고 하지 말고 이 차를 잘 수리해서 쓰도록 하자고 말씀하시였다.
진정 돌이켜보면 언제인가는 새 양복을 마다하시고 이미 입으시던 색날은 회색양복을 뒤집어 손질해 입으시였고 뒤축이 닳은 구두를 수리해 신으시면서도 새 구두나 다름없다고 만족해하시던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한평생 자신보다 먼저 인민을 생각하시고 인민들의 기쁨과 행복에서 크나큰 만족을 찾으시며 언제나 평민과 다름없이 생활하신 어버이수령님.
한 나라의 수령이심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자그마한 특권도 절대로 허용하지 않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미전에 교체되였어야 할 자신의 승용차마저도 기관을 바꾸어 계속 쓰자고 하시니 너무도 소박하고 평범하신 그이의 자애로운 영상을 우러르는 운전수의 가슴속에서는 뜨거운것이 세차게 북받쳐올랐다.
참으로 인민을 끝없이 귀중히 여기고 사랑하시며 우리 인민을 세상에 부럼없이 잘살도록 하기 위하여 생의 마지막까지 온갖 심혈을 다 바쳐오신 위대한 수령님은 자신을 위해서는 자그마한 《특전》이나 《특혜》도 절대로 허용하지 않으신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