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음력설뿐아니라 정월대보름, 한가위와 같은 민속명절들도 더 뜻깊게 쇰으로써 우리 민족의 고유한 문화전통과 생활전통을 잘 살려나가야 합니다.》 (
예로부터 우리 인민들은 해마다 민속명절날이 오면 전통적으로 온 마을이 떨쳐나 여러가지 의례행사와 민속놀이들을 진행하면서 즐기는것을 하나의 풍습으로 여겨왔다.
이러한 민속명절들가운데는 정월대보름도 있다.
정월대보름이란 새해 첫달에 맞는 음력보름이라는 뜻에서 유래된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미 삼국시기에 정월대보름날을 명절로 맞이하였고 그러한 전통은 고려와 조선봉건왕조시기를 거쳐 오랜 력사적기간 인민들속에서 계승되여왔다.
정월대보름명절은 보통 14일부터 시작되였는데 14일은 작은보름이라고 하고 15일은 대(큰)보름이라고 하였다.
우리 인민들은 대보름명절에 새해에 풍년이 들기를 바라는 소박한 념원을 반영한 여러가지 의례행사를 진행하였는데 그러한 행사로서 작은보름날의 화적놀이와 대보름날의 달맞이, 홰불놀이 등을 들수 있다.
이러한 전통적인 우리 인민의 달맞이풍습과 화적놀이를 생동하게 반영한것이 조선봉건왕조 후반기에 활동한 우진호의 10폭병풍과 12폭병풍그림 《농민생활도》의 달맞이그림과 화가미상의 《농민생활도》의 달맞이그림이다.
19세기에 활동한 우진호(1832-?)는 자를 양수, 호를 송파 또는 우수관이라고도 불렀는데 개성출신으로서 어려서부터 습작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는 농민생활도를 잘 그린것으로 하여 널리 알려졌는데 지금까지 전해지고있는 대표적인 농민생활도로는 조선미술박물관에 보존되여있는 10폭병풍과 개성고려박물관에 있는 12폭병풍을 들수 있다.
이 시기의 그림들에는 우선 정월대보름날 우리 인민들속에서 진행되던 전통적인 달맞이풍습이 잘 반영되여있다.
우진호의 《농민생활도》들에 있는 달맞이그림과 화가미상의 《농민생활도》에 있는 달맞이그림에는 어느한 마을의 사람들이 마당가에 나와 보름달을 구경하는 장면이 묘사되여있다. 그림에는 당시 우리 나라의 달맞이풍습과 함께 새해농사에서 대풍이 들기를 바라는 소박하고 근면한 농민들의 절절한 념원이 잘 반영되여있다. 그림에 등장한 인물들은 모두가 둥근달을 바라보고 서있는데 성별과 년령에 따라 그 개성이 뚜렷이 나타나있다. 여기에는 아이의 손목을 잡고 마당에서 달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늙은이들은 대풍을 확신해서인지 기쁜 표정으로 달을 바라보고있고 녀인들은 저들의 소원이 이루어지겠는지 심중한 표정을 지으며 또 어린이들은 철없이 좋아만 하고있다. 그림에 반영된 인물들의 소박하고 검소한 옷차림과 살림집모양은 당시 농민들의 어려운 생활형편을 잘 보여주고있다. 그림에는 모자를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과 저고리소매에 두손을 집어넣는 아이의 형상, 그리고 앙상한 가지만이 남아있는 나무들에 대한 세부묘사를 통하여 강추위가 계속되는 정월보름날의 자연환경을 실감있게 보여주고있으며 연청색으로 통일된 색채형상은 겨울철달밤의 분위기를 생동하게 나타내고있다.
그림에는 젊은이들과 부녀자들, 늙은이들과 어린 아이들의 모습을 통하여 달맞이풍습이 당시 마을의 남녀로소모두가 떨쳐나 진행하는 중요한 의례였다는것과 함께 그해의 모든 일이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소박한 념원이 잘 반영되여있다.
이 시기의 그림들에는 또한 정월대보름날 우리 인민들속에서 진행되던 화적놀이도 생동하게 보여주고있다.
화적놀이는 정월대보름 전날인 작은보름날에 마을의 집집마다 여러가지 곡식을 매단 장대를 세워놓고 그해 농사의 풍작을 바라면서 진행한 의례행사였다.
작은보름날에 우리 인민들은 낟가리대를 세우는것과 함께 아침일찍 퇴비를 논밭에 내는 일도 진행하였는데 이러한 풍습은 오랜 전통을 가지고있었다.
이러한 화적놀이를 반영한 그림이 화가미상의 《농촌생활도》(18세기말~19세기초)의 달맞이그림이다.
그림에는 새끼줄에 곡식이삭과 솜뭉치같은것을 매단 긴 장대들이 세워져있는데 이것은 당시 인민들속에서 진행되던 화적놀이를 생동하게 보여주고있다.
옛 기록인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정월대보름 전날에 짚으로 기발모양을 만들어 벼, 기장, 수수, 조이삭들과 목화를 심는 고장에서는 목화를 거기에 꽂고 장대끝에 달아매서 세우는것을 화적이라고 하였으며 산골지방에서는 가지가 많은 나무를 외양간뒤에 세우고 거기에 곡식이삭과 목화를 달아주면 아이들이 새벽에 일어나 해뜰무렵까지 나무주위를 돌면서 노래를 부르며 풍년들기를 축원하였다고 한다.
기록을 통해서 보는것처럼 우리 인민들은 새해에도 부지런히 일하여 풍년을 마련하려는 념원을 안고 정월대보름 전날에 이 놀이를 즐겨 진행하였다.
그림은 당시 우리 인민들속에서 그해 농사의 풍작을 바라면서 진행한 의례행사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가를 직관적으로 잘 보여주고있다.
이처럼 우리 인민들은 새해의 행운과 풍작에 대한 간절한 소망과 기대를 안고 정월대보름명절을 유쾌하면서도 다양한 민속놀이와 의례들로 인상깊게 보내였다.
정월대보름명절풍습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