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고려문화의 발전면모

 2018.11.23.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고려시기에 와서 우리 나라의 민족문화는 더욱 발전하였습니다.》 (김일성전집》 제6권 212페지)

918년에 성립되여 936년에 국토의 통일을 이룩한 고려에서는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기 위한 인민들의 적극적인 투쟁에 의하여 과학과 기술, 사상과 종교, 문학과 예술 등 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큰 발전이 이룩되였고 고려의 명성이 세계적으로 크게 떨쳐지게 되였다.

고려시기 문화발전에서 주목되는것은 첫째로, 출판인쇄기술과 군사과학기술, 천문기상관측 등 과학기술분야가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에서 발전한것이다.

무엇보다먼저 고려시기 출판인쇄기술에서 세계에서 처음으로 금속활자가 발명되였다.

고려인민들에 의한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발명은 이 시기 목판인쇄기술의 높은 발전에 토대하여 이루어졌다.

고려시기 나무목판에 글자를 하나하나 새기는 힘든 목판제작사업과 오래 사용할수 없는 나무활자의 결함을 극복하기 위한 탐구와 노력으로 나무활자를 만들어내고 전통적인 금속가공기술에 토대하여 12세기 전반기 금속활자를 발명하게 되였다.

금속활자인쇄와 관련한 오랜 기록들은 《상정례문》과 《남명증도가》이다.

리규보가 쓴 《상정례문》(50권)의 서문에 의하면 이 책은 강화도에서 1234-1241년사이에 금속활자로 주조하여 28부나 인쇄하였다고 기록되여있다.

《남명증도가》는 1076년에 집필하여 그후 금속활자로 인쇄하였고 1239년에 강화도에서 다시 같은 방법으로 출판하였다고 기록되여있다.

이 기록들은 고려에서 13세기초 중엽에 금속활자에 의한 인쇄기술이 상당히 높은 수준에 있었다는것을 보여주며 그 발명시기는 나무활자에 의한 인쇄와 금속가공기술발전 등을 고려할 때 12세기 전반기로 볼수 있다.

세계적으로 네데를란드의 코스타가 금속활자로 책을 찍은것은 1433년이였고 도이췰란드의 요한 구텐베르그가 금속활자를 발명하여 도서를 출판한것은 1450년이였다고 볼 때 고려에서의 금속활자발명도 그보다 200년이상 앞선것으로 된다.

고려가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발명국이라는것은 세계적으로도 공인되여있다. 1972년 프랑스 빠리에서 유네스코의 주최밑에 《국제도서의 해》행사에서 《책의 력사》라는 주제로 종합전람회가 열렸는데 이 전람회에서는 1377년 고려에서 인쇄된 《직지》(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가 금속활자로 찍은 세계적으로 가장 오랜 인쇄물이라는것이 인정되였다.

《직지》가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들가운데서 현재까지 남아있는 가장 오랜 책이라는것은 2001년 유네스코의 《세계를 추억하는 계획》에 의해 다시 한번 확인되였다.

다음으로 고려시기 무기제작 및 군사과학기술이 높은 수준에서 발전하였다.

최무선은 새로운 화약을 발명하여 대장군포, 2장군포, 3장군포, 륙화석포, 화포, 신포, 질려포 등의 여러가지 포와 화전, 철령전, 피령전, 철탄자, 류화, 주화 등의 불화살과 포탄들을 제작하였다.

그는 우수한 화약무기들을 만들어내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함선에 설치하여 1380년 8월 진포(금강하구)해전에서 왜적선 500척을 멀리서 쏘아 불사르는데 활용하였다.

세계적으로 유럽에서 16세기 레반또해전에서 처음으로 화약무기를 사용한것에 비해 볼 때 고려가 14세기 화약무기를 함선에 설치하여 바다싸움에 사용한것은 200년이나 앞선것으로서 세계최초의것으로 된다.

그리고 이에 기초하여 바다싸움에서 접현전으로부터 리현전에로의 해전전법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창조되였다.

다음으로 고려시기 천문기상관측도 한단계 높이 발전하였다.

고려시기에는 천문기상관측을 담당한 기관뿐아니라 그를 위한 여러가지 기구설비들도 갖추어져있었다. 실례로 고려왕궁이 있던 개성 만월대의 서쪽 200m위치에 첨성대가 있었다.

고려에서는 이러한 천문기상관측대와 기구들에 의거하여 해와 달, 별의 움직임과 기상현상들을 구체적으로, 체계적으로 관측하였는데 그것은 당시로서 매우 높은 수준에 있었다.

고려천문학발전에서 큰 성과는 태양의 흑점을 체계적으로 관측한것이였다.

《고려사》에는 천문학자들이 1105년부터 고려말까지 관측한 태양흑점에 관한 기록이 50여건이나 기록되여있는데 이것은 대체로 9년, 11년, 12년 또는 14년을 사이에 두고 반복되였다. 이 자료는 대략 11년을 주기로 하여 태양흑점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는 현대 세계천문학사의 자료들과 거의 일치한다.

그리고 흑점의 크기도 서로 다르게 적혀있는데 많은 경우 닭알, 복숭아, 배 등의 모양과 형상적으로 대비분석하여 관측기록하였다.

이러한 고려전반기 성과에 기초하여 고려후반기에도 태양흑점에 대한 관측기록은 더 놓은 수준에 이르렀다.

구체적으로 보면 1370년부터 1373년 5년동안에 매해 고려천문대에서 관측한 태양흑점자료는 현재 세계천문학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자료로 되고있다고 한다.

이처럼 고려시기 천문기상관측의 여러 부문에서는 이전 시기에는 찾아보기 힘들고 세계적으로 앞선 우수한 성과들이 이룩되였다.

고려시기 문화발전에서 주목되는것은 둘째로, 세계적으로 우수한 고려자기가 창안되는 등 공예분야에서 특출한 성과가 이룩된것이다.

고려의 재능있는 도자기공들은 이전 시기에 이룩된 자기제조기술에 기초하여 고심어린 탐구를 거듭한 결과 마침내 10세기에 아름다운 모양과 부드럽고 우아한 색갈, 섬세한 조각과 아담한 문양 등 조형예술적으로나 기술면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공예품인 고려자기를 창조하는데 성공하였다.

고려자기는 색갈이 가장 우수하였는데 그중 특출한것은 비색이였다. 비색은 비취옥 같은 색갈을 말하는데 이것은 맑은 아침의 나라라고 불리워온 우리 나라의 깨끗한 가을하늘처럼 민족적정서가 진하게 풍기는 포근하고 아름다운 푸른색(록청색)이였다.

고려의 도자기공들은 색갈뿐아니라 여러가지 독특한 문양을 다양하게 장식하면서 독특한 무늬박이수법(상감수법)을 창조하여 자기공예의 예술성을 최대로 높이였다. 그들이 독특하게 개척한 무늬박이수법은 그릇표면에 홈을 파서 문양을 새기고 거기에 흰흙과 검은흙, 붉은흙 등을 잘 메꾼다음 그우에 사기물을 발라 구워내는 수법으로서 문양의 립체감과 아름다움을 한층 돋구어주었다.

고려도자공들은 또한 그 모양이 독특하고 아름다운 여러가지 종류의 도자기들을 많이 생산하여 리용하였다. 그들은 자기 조국의 아름다운 자연풍경과 여러가지 동식물의 생김새를 형상하여 독특한 자기 모양을 창조하였다.

실로 고려자기는 실용성과 예술성이 통일되고 색과 문양, 모양의 아름다움이 잘 조화되여있는 높은 수준의 세계적공예품으로서 세상사람들이 보물처럼 여겨왔다.

이 시기 공예에서 조각술도 발전하였다. 고려시기 조각은 그 이전 시기와 마찬가지로 주로 부처조각이였다.

불상들가운데서 대표적인것은 강원도 금강군 내강리에서 나온 순금부처, 개성 관음사의 대리석관음상, 개성 적조사의 철조여래상 등이다.

고려시기에는 매우 큰 야외불상조각들이 많이 창조되였는데 그 가운데서 우수한것은 강원도 금강군 내강리의 묘길상과 충청남도 론산구의 관촉사 석불립상, 경효왕(공민왕)릉의 문인상과 무인상 등이다.

《조선유적유물도감》에 의하면 금강산의 묘길상은 높이가 15m, 너비가 9.4m에 달하는 앉은 자세의 부처조각으로서 이것은 우리 나라 벼랑바위에 새긴 돌부처가운데서 가장 크고 잘된것의 하나로 평가되고있다.

이 조각은 부처의 부드럽고 풍만한 얼굴모습과 손가짐 그리고 두 어깨와 가슴에 새겨진 옷무늬들은 고려불상조각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있다.

고려시기 문화발전에서 주목되는것은 셋째로, 문화의 여러 분야에서 다방면적인 발전이 이룩된것이다.

고려시기 건축과 천, 종이, 먹, 붓생산, 광업 및 금속가공기술, 염색기술, 의학, 력서 및 지도편찬 등 과학기술의 모든 분야에서 큰 성과가 이룩되였다.

이 시기 민족건축에서 주목되는것은 절간 및 탑건축인데 대표적인것은 성불사의 웅진전과 묘향산 보현사의 8각13층탑이다.

여기에는 고려인민들의 예술적재능이 잘 반영되여있다.

대표적으로 고려시기 생산된 비단, 자기, 종이, 먹, 부채, 인삼이 《천하의 명물》로 이름높았다.

비단은 명주실을 여러가지 색과 문양으로 아름답게 짠 천으로서 고려시기 명물의 하나로 되였다.

고대로부터 누에를 치고 비단을 짜온 우리 인민들은 고려시기에 질좋은 릉, 라, 금, 계 등 50여가지의 비단을 생산하였다.

《해동역사》에 의하면 고려시기 비단과 함께 종이도 유명하였다.

《계림지》에는 고려의 닥종이는 빛이 희기때문에 《백추지》라고 하였고 두터운 흰종이는 《고려견지》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참으로 고려시기는 우리 인민의 창조적투쟁과 재능에 의하여 문화전반에서 커다란 성과가 이룩되고 세계적인 발명과 우수한 예술적재능이 꽃핀 번성의 시대였다.

이처럼 고려의 문화발전은 당시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에 있었고 우리 나라의 대외적지위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