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룡곡사람은 동아시아에서 자랑할만 한 신인화석

 2019.4.6.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력사유적과 유물들은 나라의 귀중한 재보입니다.》 (김일성전집》 제6권 213페지)

우리 나라에는 인류력사려명기에 사람들이 남긴 귀중한 유적과 유물들도 적지 않다.

지금까지 우리 나라에서는 구석기시대유적발굴사업이 힘있게 벌어져 조선사람의 기원문제를 과학적으로 해명하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인류화석들이 많이 발굴되였다.

룡곡사람은 주체69(1980)-주체70(1981)년에 황해북도 상원군 룡곡리의 룡곡제1호동굴유적에서 발굴되였다.

이 동굴유적은 상원군 룡곡리의 호장산(해발고 100m)동쪽비탈면에 자리잡고있다. 동굴은 동남방향으로 길게 놓여있는데 동굴앞으로 흐르는 문포천으로부터 약 20m높이에 있다.

발견당시 동굴안에는 두께가 21.05m에 달하는 퇴적층이 쌓여있었다.동굴퇴적층은 지금까지 우리 나라에서 알려진 동굴퇴적층들가운데서 가장 두텁다. 동굴의 길이는 40m, 너비는 입구에서 6m, 굴안 가장 넓은곳에서 12m정도이다. 높이는 입구에서 10m, 동굴안 가장 높은곳에서 23.5m이다.

동굴퇴적층은 모두 13개층으로 되여있다. 1층부터 7층까지는 강바닥 퇴적물로, 8층부터 13층까지는 석회질퇴적물과 락석퇴적물로 이루어졌다.

이 동굴유적에서 알려진 구석기시대유물들은 8층부터 11층사이에서 나왔다.

이 유적은 지금까지 알려진 우리 나라의 동굴유적들가운데서 유물이 많이 발견된 유적의 하나이다. 유적의 구석기시대문화층(9, 10, 11층)에서 알려진 신인단계의 인류화석을 룡곡사람이라고 한다.

룡곡사람을 동아시아에서 자랑할만 한 인류화석이라고 하는것은 우선 이 인류화석이 개체수가 많고 보존정도가 좋기때문이다.

유적의 9층아래부분에서 7호머리뼈와 6호아래턱뼈, 가운데부분에서 1호아래턱뼈와 2호아래턱뼈가 드러났다.

7호머리뼈는 기본적으로 본래의 상태를 알아볼수 있게 보존되여있다.다만 웃머리뼈와 왼쪽옆머리뼈의 일부, 오른쪽젖도드리부, 큰뒤머리구멍변두리, 왼쪽코마루의 일부, 머리통뼈기저부의 일부가 약간씩 손상되였을뿐이다.

머리뼈의 형태와 겉면의 기복, 머리통뼈의 뼈물림선들이 맞붙은 정도로 미루어보면 이 머리뼈는 35살정도의 남자의 것이다.

6호아래턱뼈는 왼쪽가지 뒤부분과 웃부분이 약간 손상되고 기본적으로 잘 보존되여있다.

7호머리뼈와 6호아래턱뼈의 특징을 종합하여 보면 이 두 화석표본은 한개체의 것이다.

1호아래턱뼈는 턱뼈의 높이와 이발의 마모정도에 의하면 50살정도 되는 녀자의 것이며 2호아래턱뼈는 45살정도 되는 남자의 것이다.

1호아래턱뼈는 량쪽아래턱모의 일부와 오른쪽아래턱가지의 웃부분이 손상되여있다. 2호아래턱뼈는 량쪽 아래턱가지의 웃부분돌기와 오른쪽뒤절반정도의 턱뼈가지부위가 깨져있다.

유적의 10층아래부분에서는 1개체의 3호머리뼈와 4호아래턱뼈가 나왔으며 웃부분에서는 3개체의 웃팔뼈(3점)와 넙적다리뼈(6점)가 드러났다.

11층에서는 1개체의 10호앞머리뼈와 1개체에 속하는 9호옆머리뼈, 5호아래턱뼈, 골반뼈(2점), 넙적다리뼈(2점), 목등뼈(2점), 엉뎅이뼈(1점), 허리등뼈 (2점), 가슴통뼈(2점)가 드러났다.

3호머리뼈는 기본적으로 자기의 형태를 갖추고있다. 웃머리뼈 오른쪽의 일부, 오른쪽옆머리뼈의 앞부분과 웃변두리의 일부, 왼쪽옆머리뼈의 비늘부 대부분, 코뼈의 일부, 오른쪽눈확의 아래변두리, 광대뼈활, 입천장뼈의 일부가 떨어져나간 상태이다.

머리뼈의 형태와 그 겉면의 기복, 뼈물림선들의 맞붙은 상태에 의하면 3호머리뼈는 30~35살정도의 녀자의 것이다.

3호머리뼈와 한개체분에 해당하는 4호아래턱뼈는 오른쪽가지가 대부분 떨어져있고 왼쪽가지도 밑부분의 일부만이 남아있다. 그리고 턱아래부분과 왼쪽뼈몸의 밑부분이 깨져있다.

10호앞머리뼈는 눈두덩주름부위와 옆, 뒤의 봉합선들이 손상되여있다. 뼈의 크기와 뼈주름의 발달정도는 소년의것으로 보아진다.

9호옆머리뼈는 오른쪽것으로서 뼈겉면의 기복과 그 크기값은 어른의것에 해당된다.

5호아래턱뼈는 왼쪽아래턱뼈몸과 오른쪽아래턱뼈몸의 일부에 해당된다. 아래턱뼈는 그 크기와 이발의 마모정도, 겉면의 기복으로 보아 어른의 것으로 볼수 있다.

이와 같이 룡곡사람은 모두 10개체분으로서 남, 녀, 로, 소의 머리뼈와 몸뼈가 비교적 거의 보존되여있다.

이웃지역인 중국에서는 신인화석으로서 산정동인이, 일본에서는 미나또가와인을 비롯한 신인화석이 알려졌는데 우리 나라의 룡곡제1호동굴유적처럼 10개체분의 남, 녀, 로, 소의 뼈가 다 알려진 실례를 찾아볼수 없다.

룡곡사람을 동아시아에서 자랑할만 한 인류화석이라고 하는것은 다음으로 이 화석의 년대가 이웃지역보다 오래기때문이다.

룡곡사람이 드러난 9층아래부분에서 발굴된 짐승뼈화석을 시료로 하여 우라니움계렬법으로 절대년대를 측정한데 의하면 그 화석의 년대가 약 5만년전이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신인화석은 중국의 산정동인으로 널리 알려져있는데 그의 절대년대는 18 300~15 000년전이다.

그런것만큼 룡곡사람은 이웃지역의 신인에 비하여 더 이른 시기에 출현하였다고 할수 있다.

룡곡사람을 동아시아에서 자랑할만 한 인류화석이라고 하는것은 또한 이 인류화석이 풍부한 구석기시대 후기의 유물들과 함께 발굴되였기때문이다.

룡곡제1호동굴유적에서 인류화석과 함께 발견된 유물들을 수자적으로 보면 구석기시대의 타제석기 59점, 석재 20점, 동물화석 8 200여점이며 그밖에 불자리 12개도 드러났다.

그러나 산정동유적을 비롯하여 주변나라와 지역의 구석기시대 후기유적들에서는 룡곡제1호동굴유적처럼 그렇게 풍부한 유물들이 알려지지 않았다.

이것은 당시 사람들이 동굴을 림시거처지로 삼고 석기제작과 짐승사냥을 비롯한 원시적인 경제활동을 활발히 벌렸다는것을 말해준다.

이상과 같이 룡곡사람은 동아시아지역에서 개체수와 보존정도 그리고 년대범위와 유물종류에서 손꼽힐만 한 인류화석이다.

룡곡사람과 같은 신인화석이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류역가까이에서 알려진것은 우리 민족의 커다란 자랑이 아닐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