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은 사회적현상이나 력사적사실을 단순히 해석하는데 그치는 학문이 아니라 그 본질과 합법칙성을 밝혀 사회적운동과 력사발전을 추동하는 학문으로 되여야 합니다.》
사고의 정확성을 사고의 원리와 방법으로 밝힐 사명을 지니고 수천년의 력사를 거쳐 발전하여온 론리학은 20세기말에 비형식론리학을 발생시켰다.
론리학에 대한 연구는 1970년대 이전까지는 형식론리학연구에 치우쳐있었다.
물론 1970년대 이전까지 론리학에 형식론리학만 있은것이 아니지만 론리학은 형식론리학연구를 위주로 기울어지면서 발전하였다고 볼수 있다.
형식론리학은 사고의 형식과 방법, 규칙을 밝히는 학문이다.
형식론리학은 사람들이 사고하는데는 형식이 반드시 있기때문에 어떤 주장이 정확하자면 해당한 형식을 갖추고 일정한 규칙을 준수하여야 결론이 진리로 된다고 본다.
론리학은 발생초기부터 형식론리학으로 발생한것은 아니였다.
우리 나라를 비롯한 고대 아시아에서 먼저 발생하여 발전하기 시작한 론리학은 고대그리스의 론리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B.C. 384-B.C. 322)에 의하여 초보적으로 완성된 학문으로 정립되였다.
그가 론리학리론을 전개할 때의 론리학은 모든 과학의 수단으로 보고 전개된 론리학이였다. 이렇게 정립된 론리학은 오랜 기간 많은 학자들에 의하여 풍부히 되면서 발전하는 과정에 론리적형식들이 과학적으로 제시되였고 17세기 전반기부터 론리적형식연구에 수학적기호가 도입되기 시작하다가 자연과학의 발전이 사회발전에 큰 영향을 주던 19세기부터 론리형식에 대한 연구가 보다 심화되였다. 결과 19세기 전반기에 전형적인 형식론리인 수리론리가 생겨났고 이때부터 론리학은 수학적방법을 받아들인 론리로 기울어지면서 발전하였다. 특히 제2차세계대전 이후부터 론리학은 수학에 기초한 론리로 더욱 발전되였다.
결과 수학, 인공지능공학, 콤퓨터공학을 비롯한 자연과학분야의 발전에서 론리학은 중요한 작용을 하였다.
이러한 론리학(특정한 분야에서 역할)은 한마디로 사고형식에 의거하여 진리값을 론하는 론리학이였다. 형식론리학이 기호에 의한 인공언어에 기초한 론리로 리론체계를 구축하고 전개하였기때문에 지난 시기의 모든 론리학교과서들에는 기호론리가 론리학의 절대량을 차지하게 되였으며 일상언어에 의한 론리내용도 론리형식의 틀안에서 전개되였다. 이 시기의 론리는 사고형식이 없으면 활용되는 론리는 없다고 할수 있을 정도였다.
형식론리학에 대한 리해에서 론리학자들의 견해는 크게 두가지로 갈라진다고 볼수 있다.
하나는 비형식론리학이전의 모든 론리적내용을 의미하는것이다.
그것은 비형식론리학이전의 모든 론리적내용들이 형식론리학의 틀안에서 많이 리용되였다는데 근거를 두고있는 해석이다.
다른 하나는 연역론리만을 의미하는것이다.
그것은 연역론리가 전형적인 형식에 의한 론리이며 이 부분이 지난 시기는 물론 현재도 론리학의 내용에서 많은 자리를 차지하였을뿐아니라 연구가 가장 심화되고 더욱 완성되였다는데 근거한 해석이다. 현재 형식론리학이라고 할 때 대부분의 론리학자들의 견해는 연역론리를 념두에 둔다.
형식론리학의 모든 내용은 과학적이고 엄밀하지만 부족점도 있다.
부족점은 첫째로, 론리학의 령역이 연역론리로만 제한된것이다.
연역론리에서는 진리인 전제를 사용하여 규칙만 준수하면 결론이 필연적으로 나온다. 연역론리의 이러한 성질로는 개연성을 가지는 추리들과 그 추리들로부터 나오는 론리적방법들에로 그 내용을 확장시킬수 없다.
부족점은 둘째로, 론리기호의 전면도입이 기본이라는것이다.
현대형식론리학에서는 론리기호의 도입이 큰 성과로 된다. 그것은 사고내용들을 명백하면서도 간결하게 하는 등 우점을 가진다. 반면에 기호의 전면도입이 오히려 제한성으로 되고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사고의 내용과 방법을 모두 기호로 전환시켜 따지지 않는것 등과 관련된다.
부족점은 셋째로, 모든 론리적내용들을 정지의 계기속에서 본것이다.
사물현상은 정지되여있는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인식의 주체인 사람들의 사고활동도 정지속에서가 아니라 변화과정속에서 진행된다. 그런데 형식론리학에서는 사고의 내용들을 론리적으로 전개할 때에 정지의 계기속에서 보고 론의한다. 그러나 비형식론리학에서는 정지의 계기속에서의 사물현상들의 론리적특성을 인정하면서도 변화과정속에서 이루어지는 사물현상들의 특성을 그대로 론의한다.
현대형식론리학이 안고있는 이러한 부족점은 론리학자들과 사람들속에서 현실에서 널리 쓰일수 있는 론리학을 요구하게 되였다.
론리학자들과 론리학을 배우려는 사람들의 이러한 요구는 세계적으로 제기되였다.
1970년대에 일부 나라의 대학들에서는 당시에 배우던 현대형식론리학이 현실에서 제기되는 론리적문제들에 대처할수 없다고 하면서 론리학내용을 갱신할것을 강하게 요구하였다.
이것은 사람들이 현실적인 문제에 대답을 줄수 있는 론리학을 요구하였다는것을 말해준다.
비형식론리학은 다른 과학들과는 달리 론리학교수과정과 밀접히 결합되여 발생하였다고 볼수 있다.
일반적으로 학문의 발생은 학문으로 먼저 나온 다음에 교수에 구현되여나간다. 형식론리학도 학문으로 먼저 발족한 다음에 교수에 전문적으로 도입되였다고 할수 있다.
이와는 달리 비형식론리학의 발생은 론리학교수에서부터 시작되였다고 볼수 있다.
20세기 60년대~70년대에 일부 대학의 대학생들속에서는 형식론리학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았다. 당시 학생들의 불만은 현대형식론리가 일상생활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에 해답을 못주는 현실과는 거리가 먼 학문이라는것 즉 《기호에 의한 형식론리만으로써는 신문이나 광고, 변론이나 대화 등의 문제해결에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것이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론리학의 내용을 개혁하여야 한다고 요구하였다. 학생들의 이러한 요구를 반영하여 일상언어에 의거한 론증을 어떻게 정확히 분석하고 평가하겠는가 등과 관련한 내용들로 서술된 비형식론리학교수내용들이 일부 나라들에서는 제나름으로 출현하여 새 론리학교수과정안을 대신하였다.
이 과정안들은 그 내용에서 형식론리와는 달랐으며 현실적이며 실천적이였다. 현실의 요구를 반영한 새로운 론리학의 출현은 론리를 배우려는 학생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환영도 받았다.
일부 나라들에서는 론리학내용의 개혁과 관련하여 학생운동으로까지 번져갔으며 여기에 형식론리학교과서를 쓴 필자들과 일부 형식론리학자들까지 합세하게 되면서 개혁운동은 더욱 열기를 띠였다.
이처럼 비형식론리학은 일상생활에 이바지하는 론리학을 배우려는 사람들의 요구로부터 대학론리학교수안의 교체와 함께 발생하였다.
비형식론리학은 발생의 리론적원천을 가지고있다.
고대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론리적내용에서 비형식내용들, 중세기에 성행하였던 론변술에서의 일부 내용들, 근대에 더욱 풍부화된 비형식적인 론증분석과 평가, 오유에 관한 리론, 20세기 비형식론리학의 연구성과 등이 비형식론리학발생의 리론적원천이라고 볼수 있다.
우에서 언급한것들을 학적으로 갈라보면 3가지 즉 오유리론, 수사학(언어기교를 위한 수단과 수법을 연구하는 언어학의 한 분과), 론변술이다.
비형식론리학은 무엇보다먼저 오유리론을 발생의 리론적원천으로 삼았다.
비형식론리학이 1978년에 정식 출현하였지만 당시에 오유리론분야의 성과들이 비교적 풍부하게 연구되였다.
1970년에 함블린(Hamblin)에 의해 출판된 오유론을 비롯한 여러 학자들이 내놓은 론리적오유에 관한 리론들은 많은 경우 형식오유가 아닌 비형식오유와 관련된 내용들이였다. 이렇게 비형식오유와 관련한 내용들이 적지 않았고 론리학의 전반부분을 포괄한것으로 하여 학자들은 오유내용 하나만으로도 론리학의 원리들을 사람들에게 인식시킬수 있다고 보았으며 그렇게 시도하기도 하였다.
비형식론리학은 다음으로 수사학(언어기교를 위한 수단과 수법을 연구하는 언어학의 한 분과)을 발생의 리론적원천으로 삼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리론에 대해서도 제시하였다. 그는 그때 《수사술은 일종의 설복수단이다.》라고 하였으며 이에 기초하여 렬거한 28가지의 증명식수사추론에 원천을 두었다. 왜냐하면 수사술에 비형식론리학연구에 필요한 추리의 구체적형태들이 적지 않았기때문이다.
비형식론리학은 다음으로 론변술을 자기 발생의 리론적원천으로 삼았다.
론변술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론변술에 기원을 두었다. 그후 론변술에 대한 연구의 열의가 20세기 후반기부터 열기를 띠면서 더욱 발전하였으며 이 시기에는 론변술에 론증과 오유리론을 포함시켜 연구를 심화시켰다.
이것은 비형식론리학의 발생에서 오유리론, 수사학, 론변술은 중요한 리론적원천이였다는것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비형식론리학은 자기의 고유한 력사적과정속에서 발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