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 리금성
2024.8.25.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한생에는 용단을 내려 극복하지 않으면 안될 어려운 고비들이 여러 차례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길림육문중학교를 중퇴하실 때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육문중학교를 중퇴하고 인민들속으로 들어간것은 나의 인생에서 하나의 전환점이라고 할수 있다. 이때로부터 나의 지하활동이 시작되였고 직업적인 혁명가로서의 나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길림감옥에서 옥중투쟁을 벌리시면서 일제를 타도하고 조선독립을 이룩하기 위한 유일한 길은 무장투쟁을 하는것이며 무장한 적과는 무장으로 맞서 싸워야 함을 절감하시였다.
그러자면 자연히 길림육문중학교를 중퇴하셔야 하였다.
주체19(1930)년 5월초 길림감옥을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참으로 생각이 깊으시였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의 마음속에 제일 걸리는것은 림종을 앞둔 마지막시각에도 어떻게 하나 중학공부까지 마치라고 한 아버님의 유언을 지키지 못하시는 괴로움이였다.
조선사람은 조선을 잘 알아야 한다시며 엄동설한에 위대한 수령님을 배움의 천리길로 떠나보내시던 일이며 학교에서 돌아오시면 책상앞에 앉혀놓으시고 조선력사와 지리를 가르쳐주시던 아버님의 모습…
또한 아버님의 유언을 지켜드리기 위해 3년동안 손끝이 모지라지도록 삯빨래와 삯바느질을 하여 다달이 학비를 보내주시던 어머님의 눈물겨운 정성과 수많은 사람들이 섭섭해할 모습이 그이의 발목을 붙잡았던것이다.
게다가 길림의 많은 동지들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중학공부를 마저 마치실것을 건의하였고 그이의 복교를 실현해보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빼앗긴 나라와 도탄에 빠진 인민들의 신음소리가 자신을 한시바삐 항일무장투쟁이라는 거대한 성전에로 부른다는것을 누구보다 깊이 자각하고계시였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길림육문중학교를 중퇴할 결심을 더욱 굳힐수 있으신것은 언제나 자신에게 힘과 의지가 되여주시던 강반석어머님의 당부가 가슴에 파고들어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머님께서 무엇때문에 이역땅에서 홀로 어린 동생들을 거느리시고 갖은 신고를 다해가시며 꿋꿋이 자신의 뒤바라지를 해주시는지 너무도 잘 알고계시였다.
자신께서 화성의숙을 중퇴하셨을적에도 오히려 힘을 보태주시며 길림으로 힘껏 떠밀어주신 어머님이시니 설사 중학이 아니라 대학을 다니다가 중도반단하였다 해도 그것이 혁명을 위하고 나라를 위한 처사라면 변함없이 지지해주실것이라 믿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사명감과 믿음을 안으시고 길림육문중학교를 중퇴하시고 그후 불과 두달 남짓한 기간에 카륜회의를 소집하시고 조선혁명이 나아갈 앞길을 환히 밝혀주시였으며 첫 당조직과 조선혁명군을 결성하시고 본격적인 투쟁의 길에 나서시였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중학교를 중퇴하시고 인민들속으로 들어가시여 직업적인 혁명활동을 시작하신것은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그이의 한생에서 중요한 인생의 전환점으로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