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슬기와 력사는 문화유산을 통하여 후세에 전하여집니다.》 (
산수수려한 평양의 룡악산일대에서 고인돌무덤이 새로 조사발굴되여 학계의 이목을 끌고있다.
룡악산은 지금으로부터 약 1억 4천만년전인 중생대백악기에 있은 지각운동때 륭기된 다음 신기구조운동을 받아 기본적인 생김새가 이루어졌다. 기묘한 바위봉우리가 하늘높이 솟아있고 만발한 온갖 꽃들과 록음짙은 숲, 가을의 붉은 단풍 모든것이 신비하게 조화를 이루어 《평양의 금강산》으로,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왔다. 룡악산이란 이름도 바로 산봉우리가 마치 《룡》이 금시 하늘로 날아오르려는것과도 같은 기묘한 생김새를 갖추고있다 하여 생긴것이다.
룡악산주봉(292m)으로부터 동, 서, 남, 북으로 급경사를 이루며 뻗어내린 산릉선들은 주변의 평지와 련결되는데 그 둘레는 약 50리에 달한다.
룡악산의 남쪽으로는 대동강이 흐르고 서쪽으로는 순화강이 흐르며 동쪽으로는 순화강으로 흘러드는 작은 강줄기가 있어 사실상 룡악산은 세면이 강으로 둘러싸여있고 그 주변에는 비옥한 충적벌들이 펼쳐져있다.
룡악산일대에서는 120여기의 고인돌무덤이 조사발굴되였다.
조사발굴된 고인돌무덤의 분포상태를 보면 룡악산을 중심으로 남쪽의 만경대동, 삼흥동, 동쪽의 칠골동, 북쪽의 룡산리, 원로리, 서쪽의 룡봉리일대에서 알려졌다.
그가운데서 절반이상인 70여기는 룡악산남쪽지역인 만경대동과 삼흥동일대에서 조사발굴되였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이 지역에 살림집들과 공공건물들이 많이 들어선것으로 하여 이미 있던 고인돌무덤들이 일부 류실되였다는것을 고려한다면 원래 이 지역에는 수백기의 고인돌무덤이 있었을것으로 추정된다.
룡악산일대의 고인돌무덤들은 넓은 지역에 분포되여있으며 그 분포상태도 역시 다양하다.
우선 고인돌무덤들은 평지대나 평지와 련결되는 산릉선 또는 산경사면들에 위치하고있다.
평지대에 위치한 고인돌무덤들로서는 삼흥동 9~13호, 룡봉리 5호, 룡산리 9~11호무덤들을 들수 있다.
이 무덤들은 산릉선이 평지와 련결되는 부분이나 완전한 평지대에 위치하고있다.
룡악산일대의 대부분의 고인돌무덤들은 룡악산주봉으로부터 뻗어내린 산릉선들이 평지와 련결되는 낮은 산릉선들에 자리잡고있다.
산경사면에 위치한 고인돌무덤들도 일부 있는데 만경대동 27~30호무덤, 룡봉리 1~4호무덤 등이다.
또한 룡악산일대 고인돌무덤들은 수기 또는 십여기씩 떼를 이루고있다.
몇기씩 있는 무덤떼들로서는 만경대동 7~9호, 삼흥동 3~6호, 원로리 24~28호무덤 등이며 십여기씩 떼를 이루고있는 무덤들로서는 만경대동 10~20호무덤을 들수 있다.
다음으로 룡악산일대 고인돌무덤들은 채석조건이 좋은 곳에 위치하고있다.
룡악산은 화산분출과정에 나온 응회암으로 이루어진 산이므로 바위가 많고 바위돌들은 격지가 잘 일어나는 특성을 가지고있다. 고인돌무덤들은 모두 채석에 유리한곳에 위치하고있는데 실례로는 만경대동 23~25호무덤은 가까운 곳에 큰 바위산이 있고 고인돌무덤에 쓰일 돌들을 떼내기 위하여 홈을 팠던 자리로 보이는 구멍들이 아직도 여러개 남아있다.
룡악산일대에서는 여러가지 구조형식의 고인돌무덤들이 조사발굴되였다.
우선 오덕형고인돌무덤들이 여러기 알려졌다.
현재 오덕형고인돌무덤들은 고임돌만 남아있는것과 고임돌들이 넘어져있는것 등 본래의 모습으로 남아있는것은 거의 없다.
오덕형고인돌무덤의 형태를 비교적 잘 알수 있는 삼흥동 26호무덤은 남향으로 놓여있는데 두 고임돌은 서쪽으로 약 60°정도 기울어졌고 그우에 뚜껑들이 있다. 막음돌은 없고 무덤칸바닥에는 3~5cm정도크기의 강자갈이 한벌 깔려있다.
오덕형고인돌무덤의 무덤바닥에 강자갈을 깐것은 만경대동 23호무덤, 삼흥동 14호무덤들에서도 찾아볼수 있다.
룡악산일대의 오덕형고인돌무덤은 대체로 산릉선들에 있는 무덤떼들속에서 1기씩 끼여있으며 그것도 산릉선에서 앞이 탁 트인 전망이 좋은곳에 위치하고있는것이 주목된다.
다음으로 묵방형고인돌무덤이 알려졌다.
대표적으로 만경대동 14호무덤을 들수 있다.
이 무덤은 막돌을 올려쌓아 무덤칸을 만들고 그 우에 뚜껑돌을 올려놓았는데 무덤은 남향으로 놓여있고 무덤칸은 길이 140cm, 너비60cm, 높이 40cm이며 뚜껑돌은 타원형인데 길이 250cm, 너비170cm, 두께 60cm이다.
다음으로 석천산형고인돌무덤이 알려졌다.
대표적으로 삼흥동 9~13호무덤을 들수 있는데 이 무덤들은 모두 평지에 있으며 뚜껑돌밑에는 아무런 시설도 없고 다만 구뎅이로 된 묘광만 보인다.
다음으로 룡악산일대에서는 침촌형고인돌무덤이 알려졌다.
삼흥동 2호무덤은 얄팍한 청회색점판암으로 상자처럼 무어 무덤칸을 만들고 그 둘레에 막돌을 쌓아 보강한 다음 그 우에 뚜껑돌을 덮은 무덤이다. 바닥에는 납작한 잔돌을 깔았다.
뚜껑돌은 타원형인데 길이 250cm, 너비 170cm, 두께 60cm이고 무덤칸은 길이 140cm, 너비 60cm, 높이 40cm이다.
무덤에서는 사람뼈쪼각 4점과 뿌리나래활촉 7점이 나왔다.
삼흥동 1호무덤은 두께 2~3cm정도인 청회색점판암으로 무덤칸을 만들고 무덤칸우에 두께 3~4cm정도인 판돌로 뚜껑을 덮고 무덤칸 둘레에 막돌로 쌓아 보강한 다음 그 우에 육중한 뚜껑돌을 덮었다. 그리고 무덤칸의 벽체를 이루는 판돌들에 홈을 파서 사개물림하였고 점판암판돌로 막았다. 뚜껑돌은 거북등모양이며 타원형인데 길이 245cm, 너비 175cm, 두께 40cm이고 무덤칸은 길이 165cm, 너비 60cm, 높이 67cm이다. 무덤칸바닥에는 보드라운 흙이 약간 굳어진 상태로 약 4cm정도 차있었다.
무덤바닥에서는 피홈이 있는 점판암으로 만든 돌단검이 나왔다.
다음으로 뚜껑돌밑에 몇개의 고임돌을 놓은 새로운 형식의 고인돌무덤이 알려졌다.
뚜껑돌밑에 놓인 고임돌의 개수는 각이하지만 2개, 4개, 8개인것이 있다.
그러한 무덤으로서는 만경대동 2호무덤, 26호무덤, 원로리 13호무덤 등을 들수 있다.
원로리 13호무덤은 뚜껑돌밑에 앞쪽에만 2개의 고임돌을 놓았고 뒤쪽에는 원래의 땅을 그대로 리용하였다.
룡악산일대에서 조사발굴된 고인돌무덤은 큰 의의를 가진다.
그것은 우선 평양이 고조선문화의 발원지, 중심지라는것을 더욱 뚜렷이 확증할수 있게 되였다는데 있다.
이미 잘 알려진바와 같이 고인돌무덤은 고대조선사람들이 펴져살던 넓은 지역에서 발견되는 대표적인 유적의 하나이다.
지난 시기 학계에서는 고조선문화의 발원지, 중심지가 평양지역이라는것을 론증하는데서 중요한 근거를 평양을 중심으로 한 주변지역들에서 1만 4천여기의 고인돌무덤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여있고 우리 나라 고인돌무덤의 여러가지 형식들인 침촌형, 묵방형, 오덕형, 석천산형이 모두 평양지역에 분포되여있으며 그것이 남부조선지역으로 파급된것으로 보았다.
또한 룡악산일대에서 지난 시기 볼수 없었던 막돌고임식의 고인돌무덤이 처음으로 알려짐으로써 남부조선지역에서 흔히 보이는《2중개석식》고인돌무덤이나 《바둑판식》고인돌무덤의 원류가 평양지역이라는것을 새롭게 론할수 있게 되였다.
이처럼 평양의 중심지역인 룡악산일대에서 백수십기나 되는 여러가지 형식의 고인돌무덤이 처음으로 발견됨으로써 평양이 고조선문화의 중심지라는것을 물질적자료를 가지고 더욱 뚜렷이 확증할수 있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