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기기금헌납운동은 인민군대의 무장장비를 강화하고 조국을 튼튼히 보위하기 위한 사업을 후원하는 전인민적인 애국운동입니다.》
조국해방전쟁의
원래 군기기금헌납운동은 미제와 그 주구들의 전쟁도발책동이 로골화되던 1949년 10월에 인민군대의 무장장비를 강화할 목적으로 비행기, 땅크, 함선 등 군기기금을 헌납할데 대한 조국보위후원회결정에 의하여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1950년 6월 25일 조국해방전쟁이 발발한 이후 이 운동은 전선원호사업을 강화할데 대한
각계층 인민들은 《민청》호, 《대학생》호, 《녀성》호, 《소년》호 등의 이름을 가진 비행기, 땅크, 함선들을 헌납할것을 결의하고 그 결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시간외로동, 각종 자재절약, 로동생산능률의 제고 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애국적증산투쟁을 힘있게 벌리였다.
각지 인민들의 애국지성에 고무된 애국적인 기업가, 상인, 종교인들도 비행기, 땅크, 함선을 헌납하기 위한 군기기금헌납운동을 활발히 벌리였다. 함경북도안의 기업가, 상인들이 비행기, 땅크기금으로 2 231만 8 000여원(당시 화페)을 헌납한것을 비롯하여 각지의 기업가, 상인, 종교인들이 군기기금헌납운동에 적극 참가하였다.
영웅적조선인민군의 승리적진격에 따라 그에 끝없이 고무된 후방인민들의 애국적인 군기기금헌납운동은 날이 갈수록 더욱 고조되였다.
각계각층 인민들의 애국지성에 의하여 전쟁이 시작된지 2개월후인 1950년 8월 31일 4억 1 634만 5 000여원(당시 화페)의 현금과 수많은 곡물, 귀금속들이 헌납되였으며 그후에도 이 운동은 계속 확대되여 1951년 6월 10일까지만 하여도 15억 3 943만 5 758원(당시 화페)에 달하는 많은 현금과 3만 3 640여점의 물품들이 헌납되였다.
각지 청년학생들은 전선에서 싸우는 인민군대를 돕는 심정으로 부모들의 뒤를 따라 군기기금헌납운동에 떨쳐나섰다.
그들은 《우리가 수집하는 파철은 원쑤를 무찌르는 탄약과 무기로 된다.》고 하면서 과외시간을 리용하여 파철, 파고무, 탄피, 자동차부속품 등 각종 페품들과 유휴자재들을 수집하였으며 나어린 소년단원들도 과외시간을 리용하여 파고철수집, 약초캐기, 산나물채취, 벼이삭줏기 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군기기금을 마련하였다.
이렇게 후방인민들속에서 전인민적운동으로 광범히 벌어진 군기기금헌납운동은
전체 인민의 불같은 지성에 의하여 헌납된 군기기금은 그대로 침략자들에게 복수의 불벼락을 안기는 총포탄이 되였으며 인민군대의 전투력을 강화하고 전쟁의 승리를 촉진하는 강력한 무기로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