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현대포위전의 빛나는 모범

 2015.9.18.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진행된 대전해방전투는 아직 그 어느 전쟁력사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현대포위전의 빛나는 모범으로 된다.

지난 시기 병서들에는 포위전법을 정면에서 공격하는 부대들과 량익측에서 타격하는 부대들이 일정한 종심에서 합치는 방법으로 실현하는것이라고 서술하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전해방전투를 기존병법에 구애되지 않으시고 령활무쌍한 우회전법과 대소부대의 배합전으로 미24보병사단을 완전포위소멸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인민군련합부대들은 최고사령부의 전략적기도에 맞게 대전에서 적들을 철저히 포위소멸하여야 하며 한놈의 적도 도망치지 못하게 하여야 합니다.》(《김일성전집》제12권 141페지)

주체39(1950)년 7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전해방작전을 계획대로 추진시키기 위하여 몸소 위험을 무릅쓰시고 한밤중에 림진강철교를 건너 서울에 있는 전선사령부에 나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선형편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신 다음 현재의 전선형편에서 청주계선에서 치렬한 공방전을 벌리고있는 부대의 진출을 기다릴것이 아니라 이미 대전서남쪽 론산까지 진출한 부대를 돌려 대전으로 공격시키며 그중 일부 력량을 대전 동남방향으로 신속히 우회시켜 대전 남쪽과 동남쪽의 도로를 차단하여 대전에 대한 포위를 실현할데 대한 작전전술적방안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세워주신 작전전술적묘책에 따라 제1군집단관하 련합부대들은 곧 대전포위를 위한 작전행동을 다그쳤다. 대전동남쪽으로 우회할데 대한 명령을 받은 인민군군인들은 험준한 령들을 넘고넘어 하루밤사이에 40여㎞나 되는 로정을 우회하는데 성공하여 마침내 대전-금산, 대전-영동, 대전-옥천사이의 도로를 장악하였다.

이 부대의 기동이 얼마나 상상을 초월하고 은밀하고 신속하였던지 미제침략군 24보병사단장 띤은 대전남쪽 구봉산기슭에서 인민군대를 발견하였다는 보고를 받고도 《공산군이 제아무리 날고뛰는 재간이 있어도 하루밤사이에 그곳까지 나타날수 없다.》고 하면서 저들이 포위속에 든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창조하고 적용하신 이 우회전법의 완벽성과 령활성에 대하여 조선전쟁에 참가하였던 미군장교는 《실록 한국전쟁》에서 이렇게 썼다. 《그들 (인민군대를 말함)은 방어군(미24사)을 정면으로 공격하여 그 자유를 묶고 후퇴를 불가피하게 만드는 한편 우회 또는 침투방법으로 방어군의 후방으로 진출하여 그 퇴로를 차단하는 그런 전술에 의거했다. 어느 특정한 시점에서 띤이건 또는 다른 지휘관이건 후방의 상황을 파악한다는것은 불가능한 일이였다. 그것은 잘 정리된 전선을 유지하는 유럽식경험을 쌓은 미군사지휘관들이 이미 때가 늦을 때까지 파악하지 못한 전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전지역의 적에 대한 포위가 실현되자 지체없이 포위된 적을 재빨리 소멸하여 작전을 결속하도록 현명하게 지휘하시였다.

지금까지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진행된 포위작전의 경험은 적을 포위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강력한 타격과 점차적인 방법으로 소모전을 하거나 적군와해전을 벌려 포위전을 최종적으로 결속한 실례들이 적지 않았다는것을 보여주었다. 그러한 실례는 제2차 세계대전시기 붉은군대가 모스크바부근에서 파쑈도이췰란드의 제6집단군을 포위소멸한 작전에서 찾아볼수 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결정적인 타격으로 포위된 적을 빨리 소멸하도록 하기 위하여 대전 북쪽과 서북쪽, 서쪽에서 공격하기로 된 제3, 4보병사단, 제105땅크사단이 적들에게 강력한 정면타격을 가하는 한편 땅크와 보병들로 구성된 소부대들을 대전시내에 진입시켜 적을 불의에 기습함으로써 적의 내부를 혼란시키며 대전동남쪽으로 진출한 부대가 적의 기동로를 장악하고 퇴각하는 적들과 증원해오는 적들을 소멸해버리도록 빈틈없는 작전을 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펼쳐주신 작전방안에 따라 인민군부대들에서는 대전시가에 대한 공격에 앞서 2대의 땅크와 2개의 보병구분대 및 정찰구분대를 먼저 전투에 진입시켰다. 소부대들은 적소굴에 은밀히 뚫고들어가 적의 군용렬차와 연유창고, 집결된 자동차와 155mm 곡사포진지, 적통치기관과 유생력량들을 맹렬히 타격소멸함으로써 적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대부대의 대전시가공격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9(1950)년 7월 20일 새벽 5시, 대전시가에 대한 총공격명령을 내리시였으며 인민군련합부대들은 포병화력의 엄호밑에 북쪽과 서북쪽 및 서쪽에서 일제히 공격으로 넘어가 순식간에 적의 방어진지들을 점령하고 시가전을 벌리면서 적들을 압축소멸하였다.

또한 때를 기다리던 인민군우회대는 대전에서 빠져나오는 적의 퇴로를 차단하고 몰려든 적들에게 호된 타격을 안기였다. 사단장 띤은 사병복을 갈아입고 금산쪽으로 도망치려다가 한 인민군전사에 의해 포로되였으며 대전전투는 미제침략군의 대참패로 끝났다.

이처럼 대전해방작전은 세계의 그 어느 병서에도 없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독창적인 주체전법의 불패의 위력과 림기응변한 령군술에 의하여 창조된 현대포위전의 빛나는 모범으로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