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로 존엄높은 사회주의조국땅에 인류가 갈망하고 바라던 교육정책이 세기와 년대를 이어 줄기차게 이어지고있다.
《해방후 령으로부터 시작된 우리의 교육사업은 오늘 온 사회를 인테리화하는 매우 높은 단계에 이르렀으며 우리 나라는 말그대로 전체 인민이 공부하는 배움의 나라, 교육의 나라로 되였습니다.》 (
온 세계가 우리 조국을 가리켜 배움의 나라, 교육의 나라라고 찬탄을 아끼지 않고있다.
배움의 나라, 교육의 나라,
망국노의 설음을 안고 피눈물을 삼키던 해방전에도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는 자식들이 까막눈이 되지 않게 공부시켜보고싶은 소망만은 소중히 자리잡고있었다.
사실 강반석어머님의 하루수입이란 삯바느질을 해서 마련하시는 5~10전정도의 보잘것없는 돈이였고 하루 10전씩 받는다고 하여도 월 3원의 돈을 쥐는데 그 3원이라는 금액은 길림육문중학교가 제정한 한달학비와 맞먹는것이였다.
그 나날에
항일무장투쟁시기에 벌써 유격근거지의 아동단학교들에서 무료교육을 실시하도록 하시였고 해방후에는 근로자들의 교육비부담을 점차적으로 낮추면서 무료교육제를 결합시키도록 하신
그이의 뜨거운 사랑과 은정속에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기초건설의 어려운 조건에서도 우리 나라에서는 주체45(1956)년에 전반적초등의무교육이 실시되였으며 주체47(1958)년에는 전반적중등의무교육이, 주체56(1967)년에는 우리 식의 독창적인 전반적9년제기술의무교육이, 주체61(1972)년에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전반적11년제의무교육이 실시되였다.
윁남의 호지명
그렇다.
온 나라에 철저한 무료교육을 실시한다는것은 다른 나라 사람들은 리해할수도 상상할수도 없는 문제였다. 더우기 돈이 모든것을 좌우하고 결정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생각도 할수 없는 일이였다.
이것은 오직 인민들과 후대들을 더없이 아끼고 사랑하시는 인민의 걸출한
조국이 그처럼 간고한 시련을 겪던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에도
인적드문 산골마을의 네댓명의 학생들을 위해 사랑의 통학렬차가 달리고 섬마을의 아이들을 위해 비행기가 날으는 전설같은 이야기들은
세상에 둘도 없는 가장 우월한 배움의 나라, 교육의 나라를 일떠세워주신
아직은 나라사정이 어렵고 경제강국건설을 위해 선차적인 힘을 넣어야 할 분야도 많으며 적대세력들의 반공화국제재와 봉쇄책동도 악랄하게 감행되고있다.
하지만 해빛밝은 교정의 창가마다에서는 우리 아이들의 맑고 명랑한 배움의 글소리, 행복의 웃음소리가 더 높이 울려퍼지고있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전반적12년제의무교육의 새 력사를 펼쳐주신
바로 여기에는
교육사업을 국사중의 국사로 내세우고 새 세기 교육혁명이 힘있게 다그쳐지는 속에 이 땅에는 교육의 나라, 인재강국이 일떠서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