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박사 부교수 두광익
2020.9.22.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세상에 우리 수령님처럼 혁명을 위하여, 인민을 위하여 헌신하며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초인간적인 정력으로 모든 사업을 깨끗이 마무리하고 집무실에서 순직한 위대한 혁명가는 없었다.》
옛적부터 《신로군일》이라는 말이 전해져내려왔다. 신하들은 일하고 임금은 편안히 지낸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그와 반대되는 《군로신일》이라는 성구가 있다. 령도자가 누구보다 정력적으로 근로하시며 그것이 온 나라 인민들에게 만복으로 이어지고있다는 뜻이다.
오로지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불철주야로 로고를 바치신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헌신에 대해 집약적으로 표현한 이 성구가 생겨나게 된 사유에도 그 진리의 일단이 비껴있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중국인민지원군에 서안사변때부터 활동한 한 일군이 있었는데 그는 일을 마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갈 때 위대한 수령님께 다른 나라에 가보면 《신로군일》인데 조선에 와보니 《군로신일》이라고 말씀드렸다.
인민을 위해 바쳐오신 우리 수령님의 헌신과 로고가 얼마나 크고 가슴뜨거웠는가에 대하여서는 한가지 사실을 통하여서도 알수 있다.
주체68(1979)년 9월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해벌방지대 농업부문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실 때에 있은 일이다.
며칠째 멀리 분계연선의 연백벌을 비롯하여 황해남도안의 협동농장들을 돌아보신 수령님께서는 련이어 도당전원회의 확대회의를 지도하기 위한 준비를 하시였다.
그날도 자정이 기운지 오랬건만 우리 수령님께서 계시는 방에는 불빛이 꺼질줄 몰랐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다문 몇시간만이라도 쉬게 하셔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한 일군이 방으로 들어갔으나 수령님께서는 그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것도 느끼지 못하시고 계속 문건을 보고계시였다.
일군이 한참이나 서있다가 하는수없이 가까이 다가가 일부러 인기척을 내서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들어온 사연을 짐작하시고 먼저 그에게 왜 아직 자지 않는가고, 밤도 깊었는데 어서 돌아가 쉬라고 이르시였다.
일군은 그만 말문이 막히고말았다. 이런 때는 아무리 말씀드려도 소용이 없다는것을 잘 알고있었기때문이였다.
방을 나선 일군의 머리속에는 문득 그무렵 우리 나라를 방문한 어느 한 나라 대표단의 반영자료가 떠올랐다.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정력적인 현지지도에 대한 외국손님의 느낌을 그대로 보고해온것이였다.
《김일성주석께서 지금도 매일과 같이 공장과 농촌을 찾으시며 현지지도를 하고계시는데 대하여 깊은 감명을 받았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 나라 국가수반은 1년에 한두번 국가행사에나 나타나고는 늘 휴양지에 가있기때문에 우리 정부성원들도 좀처럼 그를 만나보기가 어렵다.
우리는 쌓아올리신 공적으로 보나 년세로 보아 김일성주석께서도 응당 쉬시면서 사업하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군은 이 자료를 보여드리면 위대한 수령님께서 혹시 생각을 달리하시지 않을가 하는 희망을 가지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일군이 드린 자료를 다 읽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뜻밖에도 그 나라 국가수반은 어떻게 일하는지 알수 없지만 자신께서는 그렇게 일할수 없다고 하시면서 동무는 오래동안 자신과 함께 일해왔는데 왜 아직도 이런것을 들고다니며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게 만드는가고 언성을 높여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 방금 언성을 높이신것을 미안해하시며 걱정말고 돌아가 어서 쉬라면서 자신께서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다정히 이르시는것이였다.
정말 우리 수령님의 한생은 이렇게 인민을 위해 깡그리 바치신 헌신의 순간순간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의 길에 나서신 때로부터 기나긴 세월 인간이 당할수 있는 모진 슬픔과 괴로움을 다 겪으시면서도 오직 혁명만을 생각하시였으며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깡그리 바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니신 《군로신일》의 숭고한 덕망은 위대한 장군님의 혁명령도의 자욱마다에도 그대로 어리여있다.
구름 한점없이 맑게 개인 어느 쉬는날이였다. 고성일대에 대한 현지지도를 마치시고 배편으로 원산쪽을 향해 오시던 도중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느 한 나루터에 배를 정착시키도록 하시였다.
며칠동안 현지지도의 피로가 겹쌓이신 그이께서 이 좋은 쉬는날에 일광욕이라도 좀 하셨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던터이라 일군들은 성수가 나서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백사장에 올랐다.
그런데 뜻밖에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문건들을 보시기 위하여 해가림양산밑에 자리잡고 앉으시는것이였다.
주춤거리는 일군들에게 그이께서는 왜 그러구들 있는가고, 오늘 일광욕을 하는것도 동무들의 일과이니 자신의 걱정은 하지 말고 어서 자유롭게 보내라고 이르시였다. 그러시고는 시간가는줄 모르고 집무에 전념하시였다.
뜻밖의 이 광경을 목격하고난 이 일대의 한 로인은 그이쪽을 경건히 바라보며 옛말에 《신로군일》이라고 하였는데 장군님은 그 반대이라고 감동에 젖어 말하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혁명령도의 갈피에는 이러한 《군로신일》의 일화들이 수없이 많다.
언제인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자신께서는 어려서부터 일을 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일을 하는 사람이 되려고 애써왔다고, 그래서인지 지금도 일감이 가득 쌓여있으면 걱정되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이 흐뭇하다고 교시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수령님께서 갓 쓰고 하늘소 타고 시조나 읊조리던 조상탓만 하지 말고 남들이 한걸음 갈 때 우리는 열걸음, 백걸음을 가야 한다고 하신 당부를 지키려면 우리모두가 더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고, 자신께서는 오직 인민을 위하여 수령님의 당부대로 한평생 일감에 파묻혀 살려고 한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이전 쏘련공산당 위원장 올레그 쉐닌은 위대한 장군님의 위인상에 매혹되여 쓴 책 《인간원로 김정일》에 이렇게 썼다.
《국가령도자, 혁명가로서의 김정일동지의 생활은 인민대중의 사랑받는 아들, 심부름군으로 헌신하는 생활이다. 일생 인민을 위해 사시려는것이 그이의 드팀없는 생활원칙이다.》
이렇듯 위대한 장군님의 조국과 인민에 대한 헌신은 인류력사에 있어보지 못한 가장 고결하고 숭고하며 불같은 헌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서 지니시였던 숭고한 덕망을 그대로 체현하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수령님과 장군님께서 한생토록 걸으신 인민을 위한 복무의 길을 자신의 인생행로로 정하시고 인민에 대한 멸사복무의 새로운 경지를 펼쳐가고계신다.
섬초소에 있는 인민군군인들을 찾아 이른 새벽 사나운 파도를 헤치시며 차디찬 바다에도 서슴없이 몸을 잠그시기도 하시고 인민들이 타고다닐 새로 만든 무궤도전차의 성능을 알아보시기 위해 무궤도전차를 타시고 수도의 밤거리를 달리시기도 하시며 폭양이 내리쪼이는 삼복의 무더위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온몸을 땀으로 적시시며 인민생활향상을 위한 건설장들을 현지지도하시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자애로운 영상을 우러르며 우리 인민은 위대한 어버이의 인민사랑의 헌신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군 한다.
참으로 자신을 인민의 충복, 인민의 심부름군으로 여기시고 끝없는 헌신의 자욱을 새겨가시는 절세위인들의 《군로신일》의 숭고한 덕망에 의해 대를 이어 우리 인민은 하늘로 신성히 떠받들려 긍지높은 삶을 누리고있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