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에 우리
장백현 반절구습격전투는 바로
반절구는 조선국경연안에 자리잡고있는 적의 《토벌》중심지의 하나로서 장백과 가까왔으며 국경연안인 혜산과 신파의 중간에 위치하고있는것으로 하여 적들의 경비가 그 어느 지역보다도 삼엄한 곳이였다.
당시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국경일대의 14도구와 15도구를 련이어 들이치자 적들은 마구 헤덤비면서 《토벌대》를 출동시키는 한편 부락경비를 더욱 강화하고있었다.
그러나 전투가 벌어진 그날밤은 류달리 달이 밝았으므로 인민혁명군이 쳐들어오지 않으리라고 지레짐작한 놈들은 어느 정도 마음을 놓고있었다.
적들의 이러한 약점을 꿰뚫어보신
전투임무를 받은 부대가 반절구거리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휘영청 밝은 달이 큰 길을 비치자 어떤 대원은 달이 저렇게 밝으니 토성을 어떻게 넘는가고 걱정하였지만 부대가 반절구앞으로 흐르는 강가에 이르렀을 때에는 그렇게도 밝던 달이 갑자기 먹물속에라도 잠긴듯 빛을 잃고 사위가 캄캄해졌다.
때마침 월식이 시작되였던것이다.
그러자 대원들은
이무렵에 적들은 여느때없이 성시와 마을들의 방비를 강화하느라고 했지만 조선인민혁명군이 이렇게 월식을 리용하여 습격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다. 성문보초놈은 월식을 구경하는데 정신이 팔려있었고 포대에 있는 놈들 역시 하늘을 쳐다보며 무엇이라 떠들어대느라고 부대가 접근하는줄을 모르고있었다.
습격조원들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성문쪽으로 접근하여 일제히 힘을 합쳐 성문을 밀어제끼자 만단의 태세를 갖추고있던 유격대원들은 순식간에 적병영과 포대를 에워싸고 원쑤들을 향하여 멸적의 총탄을 퍼부었다. 아군의 타격이 어찌나 강하였던지 적의 소굴에서는 비명만이 들릴뿐 저항하는 총소리도 오래가지 못했으며 얼마 안가서 그 비명소리마저 사라졌다.
습격조는 불과 몇십분사이에 반절구거리를 완전히 장악하고 인민들속에서 여유있게 정치사업까지 진행한 다음 많은 군수물자를 로획해가지고 귀로에 올랐다.
반절구전투의 승리는
이 전투가 있은 후 인민들속에서는 《
이 시기 적들의 가련한 당황망조상을 보여주는 이런 이야기까지 전해졌다.
반절구전투가 있은 후 혜산에 있는 매일신보사의 한 기자가 취재를 하려고 장백현 경찰과장을 찾아간 일이 있었다. 기자는 왜놈과장에게 자기의 명함장을 꺼내보였다. 그런데 기자의 명함장을 받아쥔 경찰과장은 갑자기 두눈을 흡뜨고 벌렁 나자빠지더니 사지를 푸들푸들 떨었다. 당황한 기자가 경찰과장을 잡아흔들어보니 어느새 기절해버렸었다. 과장이라는자는 기자의 명함장에 《김일신》이라고 씌여있는것을
이것은 적들이
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