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슬기와 력사는 문화유산을 통하여 후세에 전하여집니다. 력사유적과 유물은 선조들이 어떤 문화를 창조하고 어떻게 생활하였으며 어떠한 길을 걸어 발전하여왔는가 하는것을 보여주는 실물자료입니다.》 (
민족의 슬기와 력사는 문화유산을 통하여 후세에 전하여진다.
력사유적과 유물은 조선민족의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는 재부이며 조선의 유구한 력사와 발전된 문화를 전해주는 귀중한 유산이다.
경치좋고 아름다운 자강도 강계시의 장자강기슭에는 예로부터 관서8경의 하나로 불리워온 력사유적인 인풍루가 있다.
인풍루는 장자강과 그 지류인 북천이 합류하는 곳의 높은 벼랑우에 자리잡고있다.
인풍루는 원래 강계성(읍성) 부속루정으로 15세기경에 처음 세워졌다.
1530년에 편찬된 조선의 전국지리지인 민족고전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인풍루와 관련한 다음과 같은 자료가 수록되여있다.
《仁風樓在府城內西○鄭文炯記… 尹公末孫自中樞來鎭此府構樓於城西北隅…予巡邊到府請予名樓予扁以仁風》 (《신증동국여지승람》 권55 평안도 강계도호부 루정)
우의 원전자료를 통하여 인풍루는 강계성의 서쪽에 있으며 1472년 봄에 윤말손이 중추부에서 이 고을에 부임되여와서 성의 서북쪽 모퉁이에 루정을 세웠고 당시 병조판서 정문형이 루정의 이름을 《인풍》이라고 달아주었다는것을 알수 있다.
인풍루는 강계성과 함께 북방방위의 중요한 요새로서 전시에는 군사지휘터로 되였고 그 앞의 넓은 마당은 군사들의 훈련장으로 리용되였다.
지금 있는 인풍루건물은 17세기 외적의 침입으로 불탔던것을 그때 다시 세운것이다.
인풍루는 합각지붕루정으로서 동쪽면의 기둥을 하나 덜어 동쪽면과 서쪽면의 기둥배치를 비대칭으로 하면서 그 두면의 기둥사이간격을 서로 다르게 처리하여 평면조직이 특징적인 건물이다.
마루밑에는 약 1.18m의 높이로 24개의 기둥을 정연하게 세우고 그우에 두툼한 널마루를 깔았으며 기둥은 모두 배부른기둥이다.
인풍루에는 모루단청을 입히고 기둥을 붉게 칠하였기때문에 록음짙은 여름철은 물론 가을철에도 단풍색과 잘 어울려 건물이 웅건하면서도 아담하게 보인다.
이처럼 인풍루에는 건물을 자연풍경과 잘 조화되게 짓고 부재를 하나 쓰거나 단청을 하나 입혀도 건물의 특성에 맞게 한 우리 선조들의 뛰여난 지혜와 예술적기교가 담겨져있다.
력사유적 인풍루에도 나라와 민족의 귀중한 재보인 력사유적들을 원상그대로 복구하고 잘 보존관리하도록 손잡아 이끌어주신
온 나라가 새 민주조선건설로 들끓고있던 주체38(1949)년 10월 어느날 강계시를 현지지도하고계시던
주체61(1972)년 10월 중순
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