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한 국제주의적의리의 귀감이신
《중국인민의 혁명투쟁을 적극 도와주며 조중량국인민의 전투적우의와 단결을 강화발전시켜나가려는것은 조선공산주의자들의 변함없는 립장입니다.》 (
1946년 3월에 들어서면서 쏘련군으로부터 장춘시를 넘겨받은 장개석은 즉시 군대를 비행기로 수송하여 장춘시를 장악하였다. 하루아침에 장춘을 손에 넣은 장개석은 이 기회에 심양-장춘간 철도를 따라 전 동북땅을 타고앉을 야망밑에 철령, 사평계선으로 물밀듯이 공격하였다. 그리하여 사평계선에서 국민당군대의 진공을 막아보려고 저항하던 동북민주련군 중국인부대들이 많은 사상자를 내고 적의 포위에 들게 되였다.
장개석국민당군은 동북민주련군 중국인부대들을 일거에 《소멸》하고 동북지방에서 저들의 작전을 《영예롭게 결속》하겠다고 하면서 미친듯이 발광하였다.
사평계선에서 동북민주련군 중국인부대들의 괴멸이 불가피한것으로 되는 경우 동북지방에서 중국공산당의 작전은 매우 불리한 처지에 놓일수 있었다.
이런 정세하에서 동북민주련군 부총사령원 겸 길료군구 사령원 주보중은 동북민주련군 조선인부대 지휘성원들인 강건동지, 박락권동지 등과 함께
민주련군 지휘관들이 도착하였다는 보고를 받으신
주보중으로부터 적아간의 력량관계와 민주련군 중국인부대들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료해하신
이윽고 주보중과 함께 온 항일혁명투사들인 강건, 박락권동지들을 미더운 눈길로 바라보시던
박락권련대장은 부대를 이끌고 주타격방향인 동남방향에서 공격하면서 적군와해사업을 능숙히 배합하여 적의 주력집단인 《철석부대》를 소멸하였으며 최광부대의 전투적지원속에 도시중심부로 공격의 성과를 확대하여 장춘해방의 결정적인 돌파구를 열어놓았다.
이 전투에서
동북민주련군안의 조선인부대들의 영웅적인 투쟁에 의하여 장춘에 대한 총공격을 개시한지 5일만에 도시를 완전히 해방하고 1만 수천명의 적들을 살상포로하였다. 결과 사평계선에서 적의 포위에 들어있던 동북민주련군 중국인부대들이 구출되게 되였으며 자기의 전투력을 보존하게 되였다.
이처럼
정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