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은 일찍부터 일본렬도에 적극 진출하여 일본의 정치, 경제, 문화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
우리 선조들이 일찍부터 일본렬도에 적극 진출하여 일본의 정치, 경제, 문화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것은 일본렬도에 분포되여있는 조선식산성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산성은 산에 주로 돌로 쌓아 만든 성으로서 옛날부터 우리 선조들이 창조한 훌륭한 방어요새물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산성을 삼국시기부터 널리 축조하여 리용하여왔다.
특히 고구려는 전국도처에 산성을 많이 쌓아 동방의 강국으로 명성을 떨치였다.
우리 나라에서 삼국시기부터 축조되여 널리 리용된 산성이 일본렬도의 산들에서도 알려져 학자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일본학자들은 이것을 처음에는 《신》이 있는 돌담구역이라고 하여 《신룡석》(고고이시) 등으로 부르다가 조선의 산성을 닮았다고하여 점차 《조선식산성》이라고 부르고있다.
말하자면 조선사람이 쌓은 산성이라는것이다.
이것은 일본학자들 자체가 일본렬도에서 처음으로 알려진 산성을 조선식산성으로 인정하고있다는것을 말해주는것이다.
일본렬도에 처음으로 축조된 조선식산성들은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 우리 선조들이 일본렬도에 진출하여 축조하고 리용한것이였다.
그것은 우선 일본땅에 있는 산성들의 분포정형을 놓고 말할수 있다.
현재까지 일본렬도에서 알려진 조선식산성은 근 40여개나 되며 기록에 나오는것까지 합하면 훨씬 더 많다.
근 40개의 조선식산성중 16개는 조선반도와 제일 가까운 북규슈지방에 집중되여있고 나머지도 다 일본서부지방에 있다. 동부지방으로 가면서 조선계통사람들의 발자취가 적은곳에서는 조선식산성을 찾아볼수 없다. 이러한 분포상태는 조선식산성이 조선사람들의 진출과 직접 관련되여있다는것을 시사해주고있다.
그것은 또한 일본의 옛 기록을 통해서도 알수 있다.
8세기에 편찬된 《하리마풍토기》에 의하면 5세기이전에 백제사람들이 효고현의 하리마지방에 와서 자기의 풍속에 따라 성을 쌓고 살았다고 한다.
일본의 옛날력사책들인 《고사기》나 《일본서기》에는 가야사람(조선사람)이 일본렬도에서 (쯔쯔끼의 궁실)을 짓고 그안에서 살았다고 씌여있는데 《쯔쯔》는 《두두》이며 《두두》는 원래《두둑》, 《둔덕》을 가리키는 조선말이였으며 그후 일본말로 《쯔쯔》가 되였고 《끼》(기)는 조선옛말의 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일본말 (쯔쯔끼)는 둔덕성 즉 산성을 가리키며 결국 《고사기》등의 옛 기록은 조선사람들이 산성안에 궁실을 짓고 살았다는것을 말해준다.
《일본서기》에 반영된 이즈모신화에 의하면 조선계통으로 볼수있는 《스사노오노 미꼬도》가 이즈모지방에서 대가라와 꼬리가 각각 여덟개인 《큰 뱀》(오로찌)을 쳐물리쳤다고 한다.
여기에 나오는 큰 뱀이란 여덟개의 계곡을 가진 조선식산성을 의미한것으로서 이즈모지방에서 조선식산성을 두고 싸우던 이야기를 이그러지게 반영한것이다.
일본렬도내에 있는 조선식산성들은 위치선택과 성벽축조방법, 수문자리 등에서 고구려산성들에서 볼수 있는 특징들을 가지고있다.
《도해고고학사전》, 《고고학개설》, 《고고학강좌》 등 일본의 고고학책들은 일본렬도내의 조선식산성들의 특징에 대하여 평야를 옆에 낀 산에 몇개의 산봉우리들과 한개 또는 두개이상의 골짜기를 포함하고있다는것, 성벽들을 산릉선을 따라 돌아가면서 분수선으로부터 바깥쪽으로 얼마간 떨어져 쌓고 골짜기를 지나가게 되는 경우에는 반드시 수구문을 설치하였고 성문시설이 있다는것, 돌은 반드시 일정한 규격으로 다듬어 쌓고 부근에 돌이 없을 때에는 멀리 가서라도 날라다 쌓았다는것 등에 대하여 강조하고있다.
그런데 이러한 축조기술은 고구려산성들에서 흔히 찾아볼수 있는 특징 그대로이다.
일본렬도내의 조선식산성은 대체로 주변의 고분떼와 함께 존재한다. 이것은 산성을 쌓을만 한 권력을 가진 우두머리나 왕(소국왕)들이 죽으면 자기가 살던 주변무덤(고분)에 묻히게 된것과 관련된다.
우리 나라의 산성들은 산성주변에 고분떼가 있는것이 하나의 특징이다. 고구려의 실례만 들어보아도 평양의 대성산성과 재령군의 장수산성의 주변들에 각각 1 000여개의 고분떼가 있었다.
일본렬도에 존재한 조선식산성인 경우에도 조선사람들이 건너가 쌓았으므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일본렬도내 조선식산성들은후꾸오까현의 라이산산성, 고라산성, 조야마산성, 가게노마산성, 사가현의 기노죠산성, 오오메꾸리산성 등은 그 앞벌과 주변에 조선적영향이 강한 고분들이 떼를 이루고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고분의 주인공들이 조선계통문벌들이였고 그들가운데는 산성을 쌓을만 한 힘을 가진 권력자, 소국왕이 있었다는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조선식산성들이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 우리 선조들의 영향밑에 생겨난것으므로 그 축조시기는 대체로 고분시기였다는것을 알수 있다.
참으로 일본렬도내의 조선식산성은 조선계통소국의 거점이고 상징이였으며 조선계통문벌들의 정치, 군사적요새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