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전자도서관 리평복
2022.9.26.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동지애로 개척되고 전진하여온 우리 혁명을 혁명적동지애의 위력으로 끝까지 완성하여야 합니다.》
동지애로 개척되고 전진하며 승리떨쳐온 조선혁명사의 갈피에는 어버이사랑속에 영생하는 전령병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그가 바로 열아홉살 꽃나이에 항일의 전장에서 전사하였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니신 숭고한 혁명적의리에 의하여 40여년후 영생의 삶을 받아안은 항일혁명투사 조왈남동지이다.
조국의 해방을 위하여 몸바쳐 싸우다 희생된 혁명전사들을 언제나 마음속에 안고사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56(1967)년 10월 만경대혁명학원 창립 20돐경축행사때 친동생도 아들도 아닌 5촌조카 조송백동지의 얼핏 지나치는 얼굴에서 옛 전사의 모습을 찾아내시고 더없이 기뻐하시였다.
주체57(1968)년 5월 하순 어느날 자정이 훨씬 넘어 도시경영부의 한 책임일군으로 사업하던 조송백동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걸어오신 전화를 받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35년 조왈남동지가 희생될 당시 너무 어려서 숙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조송백동지에게 조왈남의 집이 왕청현 골방골에 있었고 지금 그가 살아있으면 쉰둬서넛 되였을것이라고, 아버지, 어머니는 왜놈들과 싸우다 피살되였고 조왈남동무는 총각때 전사하였다고, 그에게 동생도 하나 있었는데 조학규가 아니라 조삼남이였다고 친혈육의 심정으로 알려주시였다.
그러시면서 1차북만원정에서 돌아올 때 촉한을 만난 자신을 업고 한흥권중대장과 같이 천고령을 넘은 조왈남전령병은 그때 자신을 붙잡고 사령관동지가 잘못되면 조선사람들은 왜놈들에게 다 죽는다고 하면서 막 울었는데 자신께서는 그의 말을 듣고 힘을 내여 일어났다고 깊은 추억에 잠겨 교시하시였다.
전사한지 수십년이 지난 나어린 전령병을 그토록 잊지 못해하시며 그에 대해 친척들에게 이야기도 해주시고 혁명에 충실하도록 손잡아 이끌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은 날이 갈수록 더해만졌다.
항일무장투쟁시기 사령관동지께서 타신 백마를 관리하느라고 애를 쓰던 나어린 전령병 조왈남동무가 전사하였을 때 너무도 가슴이 아파 며칠 식사도 못했다고, 그는 어렸지만 혁명에 충실한 동무였다고 여러 차례 추억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왈남동지에게 못다 주신 사랑을 몇백배로 더하여 그의 조카에게 부어주시였으니 전사의 몸은 비록 떠나갔어도 넋은 후대들의 기억속에 영원히 살아있게 되였다.
조선로동당창건 30돐기념일을 맞이한 뒤 대성산에서는 혁명렬사릉제막식이 있었는데 혁명의 한길에 충성다하다가 희생된 렬사들의 반신상중에는 조왈남동지의 반신상도 세워져있었다.
사진 한장 남기지 못하고 떠나간 조왈남동지의 모습이 5촌조카와 비슷하니 참고하도록 하시고 창작가들이 상상화를 다 그린것을 보시고는 친히 수정방향을 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제막식이 있기 며칠전인 10월 7일에는 조왈남동지의 조각상 어깨우에 다정히 손을 얹으시고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이 어루만져주시더니 조왈남동무는 북만에서 내 병치료를 해준 잊을수 없는 사람이라고 뜨겁게 추억해주시였다.
나라잃은 망국노의 슬픔을 안고 간도피바다에서 울며 헤매던 몸을 은혜로운 사랑의 품에 안아 투사로 키워주시고 조국해방을 위한 성전에서 먼저 떠나간 전사들의 위훈을 잊을수 없으시여 사회주의락원의 높은 언덕우에 영생의 모습으로 다시 세워주신 그 은정.
정녕 인류력사의 갈피갈피를 다 뒤져보아도 그토록 위대한 사랑의 이야기가 어데 또 있겠는가.
수령과 전사들사이의 맺어진 숭고한 혁명적도덕의리의 뉴대, 끊을래야 끊을수 없는 혈연적관계는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 영원히 변함없는 우리 혁명의 본태이며 억척불변한 승리와 영광의 원천이다.
진정 위대한 수령의 품속에서 혁명전사의 생은 영원히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