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가 창작되기까지

 2017.5.26.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는 우리 인민뿐아니라 전세계 진보적인류속에서 널리 불리우고있는 진정한 인민의 송가이다.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는 위대한 주체사상을 창시하고 영광스러운 항일혁명투쟁을 승리에로 이끄시여 조국해방을 안아오신 혁명의 영재이시며 민족의 태양이시며 전설적영웅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에 대한 다함없는 흠모와 칭송의 감정을 힘있는 선률에 담아 노래한 행진곡적인 송가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송가들가운데서 <김일성장군의 노래>가 제일 잘된 명곡이다. <김일성장군의 노래>는 부르기 쉽고 부를수록 좋기때문에 어린이나 늙은이나 할것없이 모르는 사람이 없으며 다른 나라 사람들도 많이 부르고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15권 197페지)

송가는 일제식민지통치의 가장 암담하던 시기에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시고 20성상에 걸쳐 험난한 투쟁의 가시덤불길을 몸소 헤치시면서 항일혁명투쟁을 승리의 한길로 이끄시여 불멸의 혁명업적을 쌓으신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우리 인민의 다함없는 칭송의 감정을 격조높이 노래하고있다.

또한 가사는 항일혁명전쟁의 불길속에서 이룩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업적이 얼마나 험난한 투쟁의 길에서 이루어진것인가를 심오한 시적형상속에서 노래하고있다.

노래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혁명투쟁을 승리에로 이끄시고 인민을 새 조국건설에로 불러일으키시던 나날에 전체 조선인민의 한결같은 념원에 의하여 창작되였다.

혁명송가의 가사를 창작한 리찬선생은 해방후 위대한 수령님의 위대성과 우리 인민의 열화같은 충정심 그리고 사회주의건설을 위한 우리 인민들의 투쟁을 노래한 우수한 작품들을 수많이 창작발표하여 우리 혁명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혁명시인이다.

그는 1910년 함경남도 북청군 북청읍에서 출생하였으며 1930년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의 와세다대학에 입학하였지만 학비곤난과 일제의 박해로 1년도 못채우고 중퇴당하였다.

그는 시창작에 나선 첫날부터 모순에 찬 당대사회의 불합리성을 폭로하는 애국적인 시들을 창작하여 여러차례 일제경찰에 체포구금되였다.

해방후 그는 조국해방의 새 아침을 안고 개선하신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다함없는 흠모의 정을 간직하고 위대한 수령님을 충정으로 받들어모시려는 오직 한마음으로 자기의 심장을 뜨겁게 불태웠다.

바로 이러한 때인 주체35(1946)년 4월 그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진행하는 연회에 참가하는 더없는 영광을 받아안게 되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온 자리에서 그는 분출하는 심장의 웨침을 더는 누를길 없어 김일성장군찬가》라는 즉흥시를 읊었다.

그의 랑송이 끝나자 장내에서 김일성장군 만세!》의 환호성과 우렁찬 박수갈채가 폭풍처럼 터져올랐다.

연회가 끝난뒤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그를 축하해주며 위대한 수령님을 칭송하여 우리 인민모두가 늘 부를수 있는 노래를 지어 줄것을 간절히 부탁하였다.

나라가 해방되고 온 민족이 위대한 수령님을 따라 새 조국건설의 장엄한 진군을 시작한 이때 우리 수령님에 대한 송가를 지어 인민의 가슴속에 열화같은 충정심을 심어주는것은 더는 미룰수 없는 시대적과제였으며 우리 혁명의 절박한 요구였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을 칭송하는 노래를 짓는것은 한시도 미룰수 없는 시대적요구라는 깊은 자각을 가지게 되였고 그밤부터 혁명송가창작에 달라붙었다.

혁명송가창작에 깊은 관심을 돌리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우리 인민의 한결같은 마음을 담은 노래를 짓자니 항일무장투쟁과 관련한 자료를 잘 몰라서 애로를 느끼고있다는 시인의 솔직한 심정을 헤아리시여 자신께서 항일의 나날 언제나 소중히 품에 안고 애용하시던 혁명가요집을 보내주시였으며 몸소 시인의 집에까지 찾아오시여 수령님을 모시고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의 나날에 겪으시였던 가지가지의 가슴뜨거운 이야기들을 감명깊게 들려주시였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이렇듯 세심한 가르치심속에서 리찬선생은 마침내 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의 가사를 세상에 내놓을수 있었다.

혁명송가의 선률을 창작한 김원균선생은 당의 품속에서 김일성훈장》수훈자, 김일성상》계관인, 로력영웅, 인민예술가로 자라난 인민이 사랑하는 작곡가이다.

위대한 수령이 위대한 시대를 창조하며 수령이 인간들의 운명을 결정한다는것은 력사가 증명하는 진리이다.

위대한 수령을 모시지 못했던 해방전 김원균선생의 운명은 비참하였다.

1917년 강원도 원산에서 태여난 그는 어린시절부터 미술과 음악에 남다른 취미가 있었으나 학비를 댈수 없어 학교에서 쫓겨나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막로동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조국해방의 력사적사변을 맞이하던 날 그는 사람들속에 뛰여들어 《조선독립만세!》를 목청껏 웨쳤으며 그 이튿날에는 끓어오르는 심정을 그대로 담아 《조선행진곡》을 창작하였다. 노래는 삽시에 해방열, 건국열을 더해주며 사람들속에 널리 보급되였다.

그무렵 김원균선생은 한 일군으로부터 한편의 가사를 넘겨받았다.

김일성장군의 노래》!

순간 그의 가슴은 흥분으로 끓어올랐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개선연설을 하시던 장면이 영화화면처럼 머리속에 떠올랐다.

그날 평양공설운동장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개선연설을 직접 들으며 체험했던 격정이 되살아나며 곡상이 나래쳤다.

백두산 줄기줄기에 새겨진 거룩한 자욱, 끝없이 흘러가는 전설의 혁명대오, 랑랑한 나팔소리, 멸적의 총성, 화광이 춤추는 보천보, 해방과 함께 울고 웃으며 환희와 기쁨에 넘쳐 끓어번지는 이 나라 천지…

그 모든것이 선률이 되였다.

숭엄한 송가적특성과 힘있고 전진적이면서도 행진곡적성격이 훌륭하게 융합된 명곡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는 마침내 세상에 태여나게 되였다.

오늘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는 주체54(1965)년부터 우리 나라 방송의 개시신호악으로 되여 날마다 첫새벽이면 이 땅에 밝아오는 려명과 더불어 온 누리에 힘차게 울려퍼지고있다.

인류문명사에 노래창작의 력사가 시작된 때로부터 오늘까지 세계적으로 나온 노래는 셀수 없이 많다. 그러나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즐겨부르며 세기와 세기를 이어가는 거대한 생명력을 지닌 노래는 찾아보기 어려울것이다. 평양에서 진행되는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누구나 알게 될것이다. 국적도 피부색도 언어도 달리하는 출연자들이 자기 나라 인민들의 심장의 목소리를 합쳐부르는 김일성장군의 노래》의 영원한 생명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