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법학부 리영희
2024.2.14.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당과 국가, 군대를 이끄시면서도 한평생 혁명전사로서 수령님을 당과 인민의 영원한 수령으로 높이 받들고 수령님의 위업실현에 모든것을 다 바치신 위대한 장군님의 한없이 고매한 풍모와 숭고한 도덕의리는 우리모두가 따라배워야 할 귀감으로 되고있습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는 한평생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우리 당과 인민의 영원한 수령으로 높이 받들어모시고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위업실현에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다 바치신 위대한 혁명가이시다.
수령을 받들어모시는 전사의 자세와 립장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위대한 장군님의 혁명일화에는 한장의 사진에 대한 감동깊은 이야기도 있다.
주체72(1983)년 2월 16일 아침이였다.
자신을 늘 위대한 수령님을 받드는 전사라고 하시며 자신과 관련된 국가적인 행사를 일체 못하게 하시고 그런 기미만 보여도 엄하게 질책하군 하시며 자신의 생신날을 기념하는 사진 한장 남겨보신적이 없으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날만은 당시 인민무력부장으로 사업하고있던 오진우동지와 함께 한장의 기념사진을 찍으시기로 결심하시였다.
사실 오진우동지는 오래전부터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기념이 될만한 사진을 찍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있었다. 언제인가는 그런 행운이 차례지지 않는것이 마치 촬영가들의 잘못이기라도 한듯 누가 들을세라 촬영가들에게 조용히 한번만 사정을 봐달라고, 가보로 정히 간수하고싶어서 그러는데 좋은 계기를 포착했다가 한번만 찍어달라고 생떼를 쓴적도 있었다.
투사의 마음속생각까지 일일이 헤아려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신의 생신날에 그의 소원을 풀어주시려고 그를 불러주시였다.
오진우동지는 위대한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이께서 계신 곳에 도착할 때까지도 그이의 깊으신 뜻을 다는 알수 없었다.
이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정문밖에까지 나오시여 로투사를 맞아주시였다.
로투사가 너무도 황송스러워 이 추운 날씨에 왜 밖에 나와계시는가고 하면서 몸둘바를 몰라하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젊은 사람이 나이많은 사람을 마중나오지 않아서야 되겠는가고 하시면서 그를 어느한 방으로 이끄시였다.
방 한가운데 놓인 책상우에는 흰천으로 지은 똑같은 양복 2벌과 흰 구두 2컬레가 정히 놓여있었다.
영문을 몰라 무춤 걸음을 멈춘 그를 책상앞으로 이끄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 오늘 오진우동지를 부른것은 우리 함께 똑같은 흰 양복에 흰 구두를 신고 기념사진을 한장 찍고싶어서라고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에 로투사의 두눈에는 뜨거운것이 고여올랐다.
잠시후 거울앞에 선 그의 옷매무시를 몸소 보아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동안을 두시였다가 혁명의 한길에서 변심을 모르는 동지를 만나 자신께서는 늘 기쁘고 마음이 든든하다고 하시며 오래전부터 인민무력부장동지와 함께 특색있는 기념사진을 찍을 생각을 하여오다가 이번에 흰 양복 2벌과 흰 구두 2컬레를 마련하였다고, 자신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받들어모시는 혁명전사의 충성심은 언제나 티없이 맑고 깨끗하여야 한다는 뜻에서 양복과 구두의 색갈을 흰것으로 택하였다고 말씀하시였다.
그제서야 흰 양복에 흰 구두를 마련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웅심깊은 뜻을 알게 된 오진우동지는 격정이 북받쳐올라 눈물을 쏟고야말았다.
얼마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백옥의 빛갈과 꼭같은 흰색의 양복과 와이샤쯔, 넥타이에 흰 구두를 신으시고 똑같은 차림새를 한 오진우동지와 나란히 촬영기앞에 서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사진을 찍으려던 오진우동지는 뒤늦게야 자기가 설자리를 헛갈렸음을 깨닫고 황급히 자세를 헝클어뜨리며 위대한 장군님의 왼쪽에 가서려고 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러는 그에게 왼쪽에 서면 어떻고 오른쪽에 서면 어떤가고, 우리는 어느쪽에 서나 위대한 수령님의 한쪽팔이 되여야 한다고, 그러니 그대로 서서 사진을 찍는것이 좋겠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오진우동지는 세월이 흘러도 변색이 없고 부서져 가루가 되여도 흰빛을 잃지 않는 백옥처럼 한생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을 순결한 량심과 의리로 받들어모시리라 굳은 맹세를 다지며 그이께서 정해주신 자리에 다시 서서 한생의 소원이 다 실린 뜻깊은 기념사진을 찍게 되였다.
하기에 외국의 한 국가수반은 어느한 대회에서 위대한 장군님께서 오진우동지와 함께 계시는 모습을 보고 위대한 수령님께 저분들사이는 무슨 관계인가고 말씀올리는 질문에 수령님께서는 당과 군대와의 관계이라고 명쾌하게 대답하시였다.
그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오진우동지가 서거한 다음에도 그를 잊지 못해하시며 수령님께서 김책동지를 좋아하시였던것처럼 자신께서도 오진우동지를 좋아하였다고, 당을 따르는 사상의 견결성에서는 오진우동지만한 사람이 없었다고 감동깊게 회고하시였다.
정녕 뜻깊은 2월의 명절과 더불어 위대한 장군님께서 로투사와 함께 남기신 기념사진은 위대한 장군님의 한없이 고매한 풍모와 숭고한 도덕의리의 세계를 전하는 불멸의 화폭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오진우동지와 함께 꼭같이 흰 양복을 입고찍으신 그날의 사진문헌은 오늘 조선혁명박물관의 《혁명전우관》에 정중히 모셔져있으며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에게 수령을 받들어모시는 전사의 자세와 립장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말없이 가르쳐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