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한없이 넓은 도량과 포옹력》

 2023.4.27.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은 대해같은 넓은 도량과 포옹력을 지닌 성인이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넓으신 도량과 포옹력을 지니신 위대한 성인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시기 한 일본사람의 조선인민혁명군입대요청을 쾌히 수락하시고 그가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잘 싸우도록 보살펴주고 이끌어주시였다.

주체27(1938)년 조선인민혁명군의 한 부대는 중국 집안현일대의 철도공사장을 습격하였다. 이때 거기에서 일하던 많은 로동자들이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할것을 탄원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입대를 탄원한 로동자들속에는 도미다 가즈오라고 하는 일본사람도 있었다. 그때까지 가는 곳마다에서 많은 사람들이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요청을 하였지만 일본사람으로서 참군요청을 한 사람은 그밖에 없었다.

부대지휘관은 우리가 강도 일본제국주의를 반대하여 사생결단으로 싸우고있는 조선인민혁명군인데 일본사람을 입대시키는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그의 참군요청을 단호히 거절하였다.

그가 만주땅에서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팔자인데 가엾게 여겨 받아달라고 간절히 사정하였지만 지휘관은 우리가 산에서 어떤 고생을 하는지 아는가, 게다가 당신은 조선말도 모르지 않는가고 하면서 막무가내로 거절하였다.

물론 도미다 가즈오는 지휘관이 자기의 입대요청을 받아들이지 않는 리유를 잘 알고있었다. 결코 자기가 산에서 겪게 될 고생이나 조선말을 모르기때문이 아니라 조선인민혁명군이 간악한 일본제국주의와 맞서 싸우는 군대이기때문에 자기와 같은 일본사람을 입대시킬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도미다 가즈오는 지휘관의 립장이 충분히 리해되였지만 나는 나쁜 놈들의 꼬임에 빠져 굶주리는 처자를 남겨두고 만주까지 왔는데 돈벌이는 고사하고 몇번이나 죽을번하였다, 여기 와서 그놈들이 하는짓을 보니 일본사람으로 태여난것이 부끄럽다, 그놈들은 조선사람이나 중국사람만이 아니라 일본사람인 나도 망하게 하였다, 지금쯤은 안해와 애들이 굶어죽었을지도 모른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바에는 유격대를 따라가겠다, 조선말을 모르는거야 당신이 일본말을 배운것처럼 나도 배우면 되지 않겠는가라고 말하면서 자기의 입대요청을 받아줄것을 지꿎게 사정하였다.

그러나 지휘관은 당신의 사정은 리해는 되지만 로자를 주겠으니 안해와 애들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잘라말하였다.

자기의 마음을 뒤집어보일수 없는것이 안타까왔던 도미다 가즈오는 자기의 참군결심을 포기할수 없다고 생각하고 무작정 대오를 따라나섰다.

도미다 가즈오가 막무가내로 부대를 따라다니기 시작하자 지휘관은 그의 입대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골머리를 앓았다.

도미다 가즈오의 입대요청이 있은 때로부터 몇달이 지난 그해 11월 부대지휘관은 남패자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게 되였으며 그 기회에 그의 입대요청에 대하여 자초지종 보고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보고를 들으시고 호탕하게 웃으시며 도미다 가즈오의 입대청원을 즉석에서 수락해주시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말씀하시였다.

그 일본사람이 고생을 하면서 우리 부대를 따라온것만도 대단한데 싸움도 잘했다니 얼마나 장한가, 그의 참군은 우리의 해방위업에 대한 일본인민의 깊은 리해와 열렬한 지지, 동정의 산 증거이며 우리가 내놓은 반제공동전선의 생활력에 대한 힘있는 시위로 된다, 앞으로는 더욱더 많은 도미다 가즈오가 우리와 손잡고 싸우게 될것이다.

지휘관은 한달음에 도미다 가즈오에게로 달려가 그의 손을 잡고 당신의 입대가 승인되였다고 기뻐하면서 방금 있은 사연깊은 이야기를 단숨에 들려주었다.

도미다 가즈오는 기관총을 하늘높이 들어올리고 《내 장군님의 은공을 눈에 흙이 들어가도 잊지 않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격정의 눈물을 터뜨렸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부대지휘관에게 도미다 가즈오의 입대를 환영한다고 하시면서 그에게 솜옷도 두툼하게 해주며 혁명이 승리하는 날까지 잘 이끌어주라고 이르시였다.

이처럼 일본사람 도미다 가즈오의 조선인민혁명군입대요청은 위대한 수령님의 넓으신 도량과 포옹력에 의하여 비로소 성취되게 되였다.

그후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따뜻한 보살피심속에서 간악한 일제와 잘 싸우다가 주체29(1940)년 가을에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그에 대한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가슴이 아프시여 오래동안 아무 말씀도 없이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가 참 아까운 동무를 잃었다고, 그는 자기 조국을 진정으로 사랑할줄 아는 애국자이며 참된 국제주의전사라고 조용히 뇌이시였다.

지휘관과 대원들은 일본사람이라고 하면 우리 조국을 통채로 빼앗고 갖은 고통과 재난을 들씌우고있는 철천지원쑤로 여기면서 그의 조선인민혁명군입대에 대하여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라고 생각하고있는 때에 우리 인민의 해방위업을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비록 그가 우리 나라를 찬탈한 적대국의 사람일지라도 다 한품에 안아주시고 생을 빛내여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대해같이 넓은 도량과 포옹력에 다시금 탄복을 금치 못하였다.

참으로 우리 수령님은 대해같이 넓은 도량과 포옹력, 너그러운 성품을 지니신 성인중의 대성인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