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력사에는 수많은 위인, 명인들이 배출되였으며 그들의 생애와 활동에 대한 수많은 일화들이 기록되고있다.
조선민족이 수천년력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하고 높이 모신
《세계의 진보적인민들은
한 세대에 강대한 두 제국주의를 타승하시고 70성상 총대와 더불어 백승을 떨치면서 이룩하신
주체26(1937)년 6월 4일 보천보전투가 승리적으로 끝나자 많은 인민들이 짐군으로 유격대를 따라나섰다.
구시골에 이르자
6월 5일 새벽
구시산은 경사가 60°나 되는 물매가 급한 돌박산이였다.
대오가 고지에 오르자
부대가 만단의 싸움준비를 갖추었을 때에는 이미 날이 훤히 밝은무렵이였다.
이때였다.
보초선에서 적이 나타났다는 신호가 왔다.
오가와 슈이찌가 이끄는 혜산특설경비대무력이 무리지어 기여오르고있었다.
몇배의 적들이 달려들어도 문제없으니 한바탕 족쳐보자고 말씀하신
적들이 유격대원들이 차지한 진지로부터 30m정도까지 접근하였을 때였다.
이렇게 되자 적들은 무질서하게 물러서며 맞불질을 하기 시작하였다.
한 대원이
유격대의 맹렬한 사격에 적들이 돌바위짬에 숨어서 대응사격을 해대자
순간 한아름씩 되는 돌들이 적들에게로 날아갔다.
급해맞은 적들은 바위틈에서 나와 내리뛰기 시작하였다.
지형의 특성에 맞게 돌싸움을 벌릴것을 미리 예측하신
적들이 황급히 꽁무니를 사리기 시작하자 기관총수들이 도망치는 적들의 뒤통수에 련발사격을 들이대였다.
삽시에 돌사태에 짓이겨지고 기관총탄에 맞아 죽어너부러진 적들의 시체가 너저분하게 깔렸다.
이날 전투에서 살아서 도망친 놈은 겨우 몇명밖에 되지 않았다.
유격대의 타격이 어찌나 드셌던지 구시산서쪽으로 뒤늦게 밀려오던 위만군부대는 겁을 먹고 달려들지 못하였다.
결국 보천보에서 되게 얻어맞은 적들이 이번에는 구시산에서 또한번 되게 혼쭐이 났다.
보천보에서부터 짐을 지고 인민혁명군을 따라온 인민들은 구시산전투 전 과정을 생생하게 목격하고 인민혁명군의 위용앞에서 크게 감탄하였다. 짐군들은 왜놈들의 패전상도 똑똑히 보았다.
《저놈들이 자기를 〈천하무적〉이라고 떠들어댔지만 진짜 천하무적은 일본군이 아니라 인민혁명군이였구려.》
《아무렴.
하기에 우리 인민과 진보적인류는 항일대전을 령도하시면서 탁월한 지략으로 세계 유격전쟁사에 영원히 아로새겨질 수많은 전법들을 창조하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