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연안대첩을 안아온 리정암

 2017.11.28.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나라의 반침략애국투쟁사를 더듬어보면 높은 애국심을 지니고 외래침략자들을 반대하여 용감하게 희생적으로 싸운 애국명장들과 애국렬사, 애국지사들을 수많이 찾아볼수 있습니다.》 (김정일전집》 제2권 456페지)

우리 인민은 예로부터 남달리 애국심이 높았으며 슬기와 용맹을 발휘하여 외래침략자들을 단호히 물리치고 나라와 민족을 굳건히 지켜왔다.

하기에 우리 나라의 반침략애국투쟁사에는 높은 애국심을 지니고 외래침략자들을 반대하여 용감하게 싸운 애국명장들이 수많이 기록되여있다.

임진조국전쟁시기 황해도 연안에서 의병을 조직하여 왜적의 거듭되는 침략을 련속 격파하고 연안대첩(연안에서의 대승리)을 이룩하는데 큰 기여를 한 리정암도 그러한 애국명장들중의 한사람이다.

리정암은 1541년에 사직 리탄의 아들로 출생하여 1561년에 문과에 합격한후 양주목사, 연안부사, 동래부사, 병조참의 등의 벼슬을 지냈으며 임진조국전쟁시기에는 황해도초토사, 황해도순찰사, 전라도관찰사로 있으면서 전쟁의 승리를 이룩하는데 적극 기여하였다.

리정암은 우선 임진조국전쟁시기 강한 담력과 배짱, 림기응변의 지략, 완강한 성방어전법으로 연안대첩을 안아온 이름있는 반일의병장이였다.

임진조국전쟁이 일어날 당시 리조참의로 있던 리정암은 북으로 피난하는 국왕의 행차를 따라 개성에 와서 개성류수인 동생 리정형과 함께 개성을 지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얼마후 림진강방어선이 무너짐으로써 개성을 지켜낼수 없다는것을 깨달은 그는 연안성으로 들어갔다.

황해도의 배천과 해주사이에 위치한 연안은 리정암이 이전에 고을원으로 있으면서 백성들의 신망을 얻은곳이며 또 이곳에는 둘레가 1 389보이고 옹성이 2개, 성문이 4개, 해자(성밖에 파놓은 물도랑)의 깊이 1길이나 되는 읍성이 있었다.

리정암이 연안에 도착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왔으며 그들은 의병을 일으킬것을 권고하였다. 리정암은 그 제의를 접수하고 1592년 8월 초순에 수백명의 인민들과 관군들로 의병부대를 조직하였다. 이어 왜놈들을 반대하는 투쟁에 떨쳐나설것을 호소하는 격문을 발표하여 주변의 여러 고을들에 돌림으로써 수많은 애국적인민들이 의병부대에 합류하게 되였으며 결과 리정암의 의병부대는 짧은 기간에 수천명으로 장성하게 되였다.

연안성을 차지하고 의병부대를 조직한 리정암은 성을 수리하고 무기와 전투기재를 마련하며 군량을 넉넉히 준비하는 등 싸움준비를 철저히 갖추어나갔다.

연안성방어준비가 거의 끝나갈 무렵인 8월 28일 해주와 강음을 강점한 3 000명의 왜적들이 성을 세겹이나 포위하고 다가들었다.

연안성의 전체 의병들과 인민들은 리정암의 지휘밑에 한결같이 떨쳐나 영용한 방어전을 벌리였다.

전투초기에 장수 한놈이 흰기발을 잔등에 꽂고 흰말을 타고 성주위를 돌아보는데 잔등에 꽂은 기발이 갑자기 바람에 넘어졌다.무사 장응기가 화살 한대를 쏘아 적의 가슴을 꿰뚫어 죽이니 리정암은 곁에 있는 사람에게 《이것은 적이 패할 징조이다》라고 하면서 방어자들에게 승리에 대한 신심을 북돋아주었다.

적들이 밤낮으로 성을 공격하는데 수천자루의 조총을 한꺼번에 쏘아대니 연기가 자욱하고 탄환이 비오듯 하였으나 리정암은 태연한 기색으로 전투를 지휘하였다. 그는 성가퀴를 지키는 군사들에게 활을 함부로 쏘지 말고 적들이 성에 기여오를 때를 기다려 쏘게 함으로써 아군의 군사들이 활을 쏘면 반드시 적에게 명중되여 죽이게 하였다. 또한 성안에 있는 건물들의 문짝과 다락의 란간을 뜯어 방패를 만들고 쌓아두었던 풀을 묶어 홰불을 만들도록 하였으며 많은 가마들을 성벽주변에 걸어놓고 물을 끓여 성벽으로 기여오르는 적들에게 퍼붓게 하는 한편 늙은이와 녀자들 지어 어린아이들도 성방어전을 도와나서게 하였다.

8월 29일 적들은 새로운 전술로 기어코 성을 점령하려고 발악하였다. 적들은 남성밖에 병영을 설치하고 장기전을 준비하는 한편 비루(다락의 한 종류)를 남산우에 지어놓고 성안을 내려다보며 사격함으로써 성방어자들로 하여금 성벽에 나서지 못하게 하고 그 틈을 타서 성벽을 넘어보려고 하였다.

성안의 군대와 인민들은 적들의 맹렬한 사격을 무릅쓰고 비루와 마주한 곳에 담을 쌓고 그 우에 현자총통을 설치하고 사격하였으며 또한 신기전으로 비루를 쏘아 그것을 짓부셔버리였다.

이렇게 되자 적들은 아군의 출격을 막아보려고 성밖의 집들을 헐어서 그 재목으로 목책을 쌓았고 한편 짚과 풀로 해자를 메꾸고 성밑으로 접근하여 성벽을 뚫으려 하였다. 이때 성안의 군민들은 성벽에 붙은 적들에게 큰돌을 던져 까죽이였고 홰불을 도랑에 던져 짚과 풀을 불태워버리였다. 그리고 격대라는 기구를 만들어 성벽에 붙이고 힘센 사람 몇명이 그속에 들어가 성벽에 붙은 적들을 사격하여 소멸하였다.

또한 적들이 사람을 태운 긴 사다리를 성벽에 세우고 성을 넘어오려고 하자 방어자들은 이번에는 몽둥이로 놈들을 까서 떨어뜨리였으며 끓는 물을 퍼부어 멸살시키였다.

이날 밤 적들은 방어가 소홀했던 서문쪽에 긴 사다리를 세우고 성안으로 기여들려고 하였다. 위험한 순간에 방어자들은 리대춘의 지휘밑에 력량을 집중하여 적들의 머리우에 불뭉치를 던져 사다리와 목책을 불살라버리였고 맹렬한 사격으로 성가까이에 접근했던 놈들을 모조리 소멸하였다.

이때 성밖에 있던 인민들이 적들이 탄환이 모자라 4~5일이상 더 공격하지 못하고 패주할것이라는것을 알려줌으로써 방어자들의 투쟁사기를 더욱 고무해주었으며 우리 군사들이 쏜 화살들을 주어다 성안에 넘겨주기도 하였다.

9월 1일에도 전투는 치렬하게 계속되였다. 이날 적들은 서문과 남문의 두 방향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곳을 지키던 애국적군인들의 영용한 투쟁에 의하여 적의 공격은 분쇄되였다. 적들이 성벽을 파괴하는 기구인 충차를 100여개나 만들어가지고 공격을 시도하자 성안의 군대와 인민들은 이번에는 총탄과 돌벼락을 퍼부어 놈들을 물리쳤다.

적들은 패전을 거듭하면서도 기어코 성을 점령하려고 발악하였으나 연안성의 군민들은 그때마다 놈들에게 무리죽음을 주면서 성을 빛나게 지켜냈다.

리정암은 성이 적들에게 포위된 상태에서 4일동안 밤낮으로 전투를 지휘하였다. 장기전으로 벌어진 성공격에서 련속 패한데다가 탄알까지 떨어진 적들은 더이상 공격할 생각을 못하고 고함만 쳐댔다. 반면에 승리한 성안의 군민들의 함성과 징소리, 북소리는 천지를 뒤흔들었다.

왜적들은 할수없이 성에 대한 공격을 단념하고 저들의 시체를 모아 불을 지른 후 9월 2일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이때 장응기 등을 비롯한 우리 군사들이 적을 추격하여 90여마리의 소와 말을 로획하고 130여섬의 군량을 로획하였다.

참으로 연안성방어전투는 고구려시기의 안시성전투, 고려시기의 구주성전투를 방불케 한 수성전의 하나로서 우리 인민의 반침략투쟁사에서 《연안대첩(연안에서의 대승리)》으로 불리우고있다.

연안성전투에서 대참패를 당한 적의 우두머리 구로다는 해주로 돌아가 더이상 지탱할수 없다는것을 알고 관청을 불사르고 성곽을 허물며 로략질을 한 후 배천으로 달아났다.

리정암이 지휘한 연안의 의병부대는 그후 1592년 9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연안성을 중심으로 60여회의 크고작은 전투들을 벌렸으며 이 과정에 200여명의 적을 살상하였다.

이처럼 리정암은 황해도 연안지방에서 의병부대를 조직하고 강한 담력과 배짱, 림기응변의 지략, 완강한 성방어전법으로 우리 인민들의 왜적격퇴투쟁을 옳게 조직지휘하여 연안대첩을 안아온 이름있는 반일의병장이였다.

리정암은 또한 높은 애국심과 겸손한 인간미를 지닌 애국지사였다.

리정암의 높은 애국심은 임진조국전쟁초기에 나라를 지키지 못할바에는 차라리 죽는것이 낫다고 결심하고 목매여 죽으려고 한데서 찾아볼수 있다.

당시 리조참의벼슬을 하였던 리정암은 임금의 행차가 서쪽으로 떠나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 울면서 어머니에게 하직하기를 《록을 타먹는 사람은 이런 때에 응당 나라를 위하여 죽어야 하니 이제는 불효자식으로 될수밖에 없게 되였습니다》라고 하고는 곧 안해와 비밀히 약속하고 밤에 문을 닫아건 다음 함께 목매여 죽으려다가 집사람들이 알고 구원하여 다시 살아났다.

그는 한탄하기를 《오늘 죽지 못한것은 역시 천명이다.》라고 하면서 즉시 임금의 행차를 따라 개성에 이르렀으며 당시 개성류수로 있던 그의 동생 리정형과 함께 목숨을 내걸고 개성을 지키겠다고 임금에게 제기하여 승낙을 받고 떨어져 개경방어에 달라붙었다.

리정암의 높은 애국심은 특히 연안성을 버리고 피난갈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성과 운명을 함께 하겠다고 자기의 의지를 표명한데서 집중적으로 찾아볼수 있다.

1592년 8월 왜놈들이 해주, 평산 등 여러 고을들에 주둔해있는 군사를 깡그리 동원하여 연안성으로 쳐들어올 때 성안사람들은 기가 죽어서 리정암에게 초토사는 성을 지킬데 대한 지시를 받지 않은만큼 마땅히 정예로운 적을 피하여 뒤날에 손 쓸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하였지만 리정암은 울면서 타이르기를 《나는 경연에 참가하였던 늙은 신하로서 임금의 행차를 따라가지 못하고 지금 세자한데서 초토사로 임명받았다. 마땅히 성을 지키다가 죽어야지 어찌 차마 구차스럽게 살겠는가. 뿐만아니라 백성들을 달래여 성안에 들여놓고는 적이 쳐들어온다고 내가 어찌 차마 버리겠는가》고 하면서 《함께 죽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마음대로 달아날것이다.》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종들을 시켜 풀단을 쌓아놓은 다음 홰불을 들고 기다리게 하면서 훈계하기를 《적이 만약 성으로 올라오면 내가 풀더미에 올라앉을것이니 너희들은 즉시 불질러 적의 손이 나를 더럽히게 하지 말라》고 말하였다. 이렇게 되자 군사들이 감동되고 분발하여 일제히 웨치기를 《대장이 죽음을 각오하였는데 우리들이 어떻게 살려고 하겠는가》라고 하면서 리정암을 따라나서게 되였다.

이처럼 왜적의 침공에 겁을 먹고 국왕을 비롯한 대다수의 봉건관료들이 저들만 살겠다고 북쪽으로, 바다섬이나 산으로 도망갈 때에 리정암이 연안성에서 많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의병대를 뭇고 맹렬한 방어전을 벌린 력사적사실을 통하여 그가 얼마나 높은 애국심을 지니고있었는가를 잘 알수 있다.

리정암의 겸손한 인간미는 연안대첩이 있은 후 전투승리에 대하여 조정에 보고하면서 그저 어느날에 적이 성을 포위하였다가 어느날에 물러갔다고만 하고 다른 말을 더 쓰지 않은 사실을 통하여 잘 알수 있다.

리정암의 지휘밑에 이룩된 연안대첩은 애국심에 불타는 군대와 인민이 굳게 뭉쳐 싸운다면 능히 우세한 왜적들을 물리칠수 있다는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었으며 서부전선에서 북상을 기도하는 적들의 후방을 끊어버리고 전쟁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았을뿐아니라 연안을 비롯한 서해곡창지대를 적의 침략으로부터 지켜내고 서남지방에 대한 통신련락과 전쟁물자보급로를 확보하는데서 커다란 의의를 가지는 대표적인 전투였다.

때문에 리정암의 전투공로에 대하여 당시 왕세자는 《경은 흩어지고 도망친 군사를 불러모아 외로운 성을 굳게 지켰으며 섶나무를 쌓아 불태울 준비를 하여놓고 기꺼이 함께 죽으려고 함으로써 성을 타고 넘는 사다리와 조총도 끝내 소용없게 하였으니 안시성을 지킨 장수외에는 이런 일이라군 들어보지 못하였다. 사방에서 소문을 듣고 모두다 보루를 고수할 생각을 하게 되였으며 호남과 호서로 통하는 배길이 막히지 않게 되였으니 이것이 경의 힘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으며(《선조수정실록》권26 임진 9월) 비변사에서는 《리정암은 훈련도 받지 않은 외로운 군사로 하나의 성을 힘껏 지켜 적의 공격을 능히 막아내고 마침내 한 고을의 성을 온전히 지켜냈으니 그 공로가 크다. 사람들이 모두들 칭찬하며 감탄하고있으니 크게 표창》할것을 제의하였다.(《선조실록》권30 25년 9월 병자일)

그리고 18세기의 력사가인 홍량호는 자기의 저서 《해동명장전》에서 《연안에서 있은 하나의 전투는 왜놈들의 발톱과 이발을 잘라버리고 말았다. 놈들은 병신꼴이 되여 움츠러있어 연안근처에는 말먹이는 놈들이 얼씬거리지 못하였다. 이리하여 서부조선 13고을을 다시 회복할수 있었고 령남, 호남의 군대들이 아산에서 룡강으로 해서 조정으로 통할수 있었다. 명령을 전달하고 보고하는 길이 개통되였고 해로와 륙로로 수송에 지장이 없어졌다》고 서술하였다.

이렇게 모두들 칭찬하고 감탄하는 큰 공로를 세우고도 조정에 《적이 28일에 성을 포위했다가 2일에 포위를 풀고 돌아갔다》고 아무런 자랑도 없이 간단히 보고한것을 통하여 리정암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겸손하고 소박한 인간미를 지닌 사람이였다는것을 잘 알수 있다.

이에 대하여 당시의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싸움에서 이기기도 쉽지 않지만 공로를 자랑하지 않기는 더욱 어려운 법이다》(《선조수정실록》권26 임진 9월)라고 하였다.

이상에서 본바와 같이 리정암은 임진조국전쟁시기 강한 담력과 배짱, 림기응변의 지략, 완강한 성방어전법으로 연안성방어전투를 승리에로 이끈 이름있는 반일의병장, 높은 애국심과 겸손한 인간미를 지닌 애국지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