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인민에 대한 숭고한 복무정신을 새겨주시며

 2020.4.29.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의 한생은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고 사상과 령도에 구현하여 현실로 꽃피우신 인민적수령의 숭고한 한생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인민에 대한 사랑의 정치는 머나먼 산골마을의 자그마한 상점에도 뜨겁게 어려있다.

주체54(1965)년 7월 11일 18시가 거의 되였을무렵,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창성군 약수상점을 찾으시였다.

오매에도 그리던 위대한 수령님을 자기들의 일터에서 뵈옵게 된 상점판매원(당시)들이 너무 기뻐 어쩔줄 몰라하며 그이께로 달려가 정중히 인사를 드리였다.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그들의 인사를 일일이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매대에 빼곡이 진렬되여있는 상품들을 둘러보시며 상품이 많다고, 상점에 늘 이렇게 상품이 많은가고 물어보시였다.

평시에도 상점에 상품이 많다는 상점책임자의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면 인민들이 좋아할것이라고 만족해하시였다.

직물매대에서 스프링의 질과 그에 대한 인민들의 수요를 알아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신발매대에로 향하시였다. 그때 신발매대에는 신의주고무공장(당시)에서 만든 여러가지 신발들이 크기와 모양, 색갈에 따라 진렬되여있었다.

매대에서 녀자비닐싼달과 편리화를 받아드시고 이리저리 돌려가시며 찬찬히 살펴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안색을 흐리시며 신발의 모양도 한심하고 질도 좋지 못하다고, 이것은 어디서 만든 제품인가고 물으시였다.

그에 대한 대답을 들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동행한 일군들에게 신발을 내보이시며 이렇게 만든다고 해서 원료가 절약되지도 않는데 되는대로 막 만들었다고 하시면서 이것은 관점상문제라고 심각하신 어조로 추궁하시였다.

사실 그때 상점에서 받아온 대부분의 신발들은 모양도 그리 곱지 못하고 질도 높지 못했지만 상점일군들은 이제는 산골농촌마을에도 상품이 많아 생활이 유족하게 되였다고 생각하면서 주민들의 요구와 의견에 대해서는 알아보지도 않고 더 많은 상품을 받아오는데만 신경을 쓰고있었다.

녀자비닐싼달과 편리화를 놓으시고 다시 롱구화를 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신발은 괜찮다고 하시였다.

그러자 옆에 서있던 한 일군이 그 신발은 수출품으로 만들었는데 약간의 부족점이 있어 봉사망에 내다 팔고있다고 말씀드리였다.

일반주민들에게 판매하는 상품보다 수출품의 질이 응당 더 높아야 하는것으로 생각하고있는 그 일군의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인민들은 왜 나쁜 신발만 신어야 하는가, 왜 수출품은 잘 만드는데 인민들이 신는 신발은 이렇게 한심하게 만들어야 하는가, 머리가 틀렸다고, 인민에 대한 관점이 바로서있지 못하다고 격하신 어조로 엄하게 질책하시였다.

이날 산골마을 상점에서 보신 신발의 질문제가 얼마나 가슴에 걸리시였는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음날 즉시 신의주고무공장 일군들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어제 창성군 약수상점에서 동무들이 생산한 신발을 보았는데 그 질이 한심하다고 지적하시며 동무들이 신발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것은 동무들에게 당과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겠다는 정신이 부족하기때문이라고 준절하게 지적하시면서 일군들의 가슴마다에 인민에 대한 숭고한 복무정신을 새겨주시였다.

머나먼 산골마을 상점에까지 찾아오시여 일군들의 심장마다에 인민복무의 숭고한 정신을 새겨주시면서 인민들에게 더 좋고 훌륭한 소비품을 안겨주시려고 그처럼 마음쓰시던 어버이수령님.

어버이수령님의 그 념원을 꽃피우시려 위대한 장군님께서 온 나라 방방곡곡을 찾으시며 불철주야 헌신의 로고를 바쳐가시였으며 오늘은 우리 원수님께서 인민을 위한 길을 끊임없이 걷고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