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있는 력사유적유물들을 더 많이 발굴하여 민족문화유산의 보물고를 풍부히 해나가야 합니다.》
우리 인민이 창조한 우수한 민족문화유산들을 더 많이 발굴고증하고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사업이 힘있게 벌어지는 과정에 주체92(2003)년 6월말~7월초에 평양시 삼석구역 호남리 표대유적에서는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되는 신석기시대의 질그릇가마터가 새로 발굴되였다.
표대유적은 삼석구역 성문동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약 7㎞정도 떨어진 호남리 표대마을 대동강기슭에 위치하고있다.
유적의 동쪽과 남쪽으로는 대동강이 감돌아흐르고 서쪽으로는 성문천이 북남방향으로 흘러내려 대동강에 합류되며 북쪽은 왕산, 표대산 등 나지막한 야산들로 막혀있다.
표대유적은 북남길이 1 500m, 동서너비 약 1 000m 되는 방대한 면적을 포괄하며 서남쪽으로 3㎞ 떨어진 곳에 원시 및 고대시기의 유적인 남경유적이 있고 서북쪽 1㎞정도 떨어진 곳에는 고구려의 사신벽화무덤이 있다.
표대유적에 대한 발굴은 주체83(1994)년 5월부터 시작되여 주체91(2002)년 10월까지 모두 7개 지점에서 진행되였다.
신석기시대의 질그릇가마터는 표대유적에서 원시 및 고대시기의 대규모부락터를 발굴하는 과정에 동북쪽의 제7지점에서 2개가 알려지게 되였다.
처음으로 발굴된 질그릇가마터를 표대유적1호가마터로, 그후에 발굴된것을 표대유적2호가마터라고 부른다.
표대유적1호가마터는 지표면으로부터 깊이 25~30㎝에서 드러났는데 연소실, 고래, 소성실을 횡혈식으로 지하에 나란히 설치한 평가마(평요)로서 천정부를 제외한 나머지 시설물은 당시의 모습그대로 잘 남아있었다.
가마터의 긴축은 남북에 가까운 서북-동남방향이며 중간부분에 판돌들로 간벽을 쌓고 거기에 잇달아 서북쪽은 연소실이 되게 하였고 동남쪽에는 원형의 소성실을 만들었다. 가마터의 전체 길이는 300㎝, 너비는 가장 넓은 부분이 110㎝, 벽체의 남은 높이는 50~60㎝이다.
연소실은 길이 160㎝, 너비 110㎝정도 되는 모가 약간 죽은 장방형의 움구뎅이로 되여있는데 움벽이 바닥쪽으로 내려가면서 약간 경사졌기때문에 웃쪽에 비하여 바닥부분의 면적이 얼마간 작아졌다. 움벽에는 진흙을 발랐으며 움벽의 서북쪽 웃부분에 너비 40㎝~50㎝정도의 범위로 불맞은 흔적이 뚜렷이 나타나있는것으로 보아 여기에 아궁이가 있었다고 보고있다.
연소실바닥은 동남쪽(간벽쪽)으로 가면서 점차 낮아져 그 경사도가 4~5°정도였다.
소성실은 평면테두리가 원형을 이루었고 벽체는 다듬은 판돌들로 바닥쪽으로 경사지게 세워 한돌기 돌렸다. 판돌들의 웃부분은 10~20㎝정도의 폭으로 거의 수평을 이루었는데 불그스레하게 불맞은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있었다. 이 돌벽체우에 궁륭식으로 천정시설을 하였던것으로 인정된다.
소성실의 바깥직경은 110㎝이고 안쪽바닥직경은 약 90㎝이다.
연소실과 소성실사이에는 판돌로 간벽을 쌓고 그 밑에 불고래를 설치하였다. 불고래는 간벽의 중심부 제일 아래부분에 반달모양으로 냈는데 길이와 너비가 각각 20㎝이고 높이는 7㎝이다. 불고래바닥에는 진흙을 얇게 발랐으며 소성실쪽으로 가면서 바닥은 약간 경사져올라갔다.
표대유적1호가마터는 그 구조형식으로 보아 갖춘 밀페식가마였다는것을 알수 있다.
가마터의 안팎에서는 수십개체분의 질그릇쪼각들과 석기들이 알려졌다.
가마터의 구조형식과 거기에서 나온 바탕흙에 모래를 섞어 만든 전나무잎무늬그릇, 짧은 사선띠무늬그릇, 번개무늬그릇 등을 통하여 이 가마터가 신석기시대에 만들어졌다는것이 밝혀졌다.
표대유적1호가마터와 불과 2.5m의 사이를 두고 표대유적2호가마터가 자리잡고있다. 2호가마터는 지표면으로부터 120㎝의 깊이에서 드러나기 시작하였는데 평면테두리가 긴 타원형인 움구뎅이형태의 외칸평가마이다.
가마의 긴축은 남북방향으로 놓이였고 그 크기는 남북길이가 150㎝정도이고 동서너비는 가장 넓은 바닥부분이 80㎝, 벽체의 높이는 75~85㎝정도이다.
2호가마터는 1호가마터와 마찬가지로 지하에 설치한 평가마로서 평면생김새나 긴축방향, 가마안의 벽체, 바닥상태 등이 거의 비슷하며 2호가마터에서 발견된 질그릇들도 1호가마터에서 나온 질그릇들과 바탕흙, 무늬 등이 같은것이였다.
그러나 2호가마터는 그 크기가 1호가마터보다 훨씬 더 작을뿐 아니라 연소실과 소성실이 따로 없고 칸막이나 고래도 갖추지 못한 외칸가마로서 1호가마터에 비하여 보다 단순하였다.
이것은 2호가마터가 1호가마터보다 얼마간 이른 시기에 만들어졌다는것을 말해준다.
표대유적의 1호가마터와 2호가마터는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발굴된 신석기시대 질그릇가마터들이며 표대유적2호가마터는 현재까지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랜 신석기시대 질그릇가마터이다.
지난날 일부 학자들속에서는 우리 나라에서 신석기시대 질그릇가마터의 존재문제가 부정되여왔고 설사 그것이 론의되는 경우에도 퍽 이후시기에 와서 이웃나라의 영향으로 보급된것으로 보는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였다.
우리 나라에서 오래동안 신석기시대의 경우는 말할것도 없고 고대시기의 질그릇가마터도 발견된것이 없었던것만큼 표대유적에서 신석기시대의 질그릇가마터가 처음으로 발굴된것은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표대유적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신석기시대의 질그릇가마터들은 우리 선조들이 질그릇발명의 첫 시기부터 자기의 고유한 질그릇제각기술과 방법을 가지고 독특한 새김무늬질그릇을 다량생산하여 리용하여왔다는것을 뚜렷이 실증하여준다.
또한 우리 나라가 밀페식가마에 의한 질그릇소성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앞선 나라들중의 하나였으며 평양지방이 질그릇의 제작과 보급에서도 선도적이며 중심적인 역할을 하여왔다는것을 확고한 물질적자료를 가지고 론할수 있게 되였다.
참으로 표대유적에서 신석기시대의 질그릇가마터들을 새로 발굴한것은 평양의 유구한 력사와 발전된 문화를 널리 자랑할수 있게 하는 의의있는 사변으로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