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라틴아메리카기자련맹 서기장이며 주체사상국제연구소 리사였던 헤나로 까르네로 체까는 정의와 평화, 민주주의를 옹호하며 조선인민과 라틴아메리카인민들사이의 친선과 련대성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에 한생을 바친 뻬루의 혁명적기자이다.
《나는 체까와 매우 가까이 지냈습니다. 체까는 지난날 우리 나라에 대한 선전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는 아주 좋은 사람이며 훌륭한 국제주의전사였습니다.》
1911년 4월 14일 뻬루의 북부에 있는 도시 뻬우라에서 출생한 체까는 대학시기에 맑스-레닌주의를 표방하는 청년학생운동조직인 전국대학생붉은선봉대의 총서기로 활동하였으며 대학 3학년때에는 싼체스 쎄로의 군사독재(1930-1933)를 반대하는 투쟁에 떨쳐나섰다.
그는 뻬루공산당의 주간지 《낫과 망치》에도 글을 싣기 시작하였는데 그로 하여 학교에서 쫓겨나게 되자 학업을 중도에서 그만두고 정의를 옹호하여 투쟁할 각오밑에 기자의 직업을 선택하였다.
친미독재정권의 반동성과 제국주의자들의 침략행위를 폭로규탄하는 수많은 글을 쓴것으로 하여 1937년에 그는 반동정부에 의해 메히꼬로 추방당하였다. 체까는 그후 조국에 돌아왔다가 또다시 메히꼬, 에꽈도르 등지에 무려 4차례나 추방당하였으며 20여차에 걸쳐 감옥생활을 하였다.
1946년 메히꼬에서 돌아온 그는 《새 소식으로 력사를 창조하자!》의 리념밑에 정치주간지인 《1947》을 창간하여 1961년까지 발간하였다. 주간지의 이름은 해가 바뀌는데 따라 《1948》, 《1949》등으로 계속 바뀌였다.
그는 지칠줄 모르는 노력으로 국가기자협회를 개혁하기 위한 정력적이고 혁신적인 활동을 벌려 1950년 6월 뻬루기자련맹을 창립하였다. 또한 《날카로운 독수리》(1956), 《문필활동》(1964) 등에서 반인민적정책이 실시되고있는 자본주의사회의 불합리성과 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체까는 인민대중의 참다운 자유와 행복, 세계의 민주화를 위하여 노력하였지만 참다운 길, 자주의 길을 찾아 번뇌와 고심속에 모대기고있었다.
그런 그의 인생을 새로운 투쟁의 길로 이끌어주신
그는 1968년부터
주체58(1969)년 9월 혁명의 수도 평양에서 진행된 반미세계기자대회에 뻬루기자대표단 단장으로 참가하여 세계 진보적기자들이 정의의 필봉을 들고나가는데서 지침으로 되는
체까는
또한 뻬루에서 진행된 라틴아메리카지역 주체사상토론회와 여러 나라들에서 진행된 주체사상에 관한 국제토론회들에 참가하여 힘있는 연설들로 주체사상의 정당성과 진리성, 생활력을 해설선전하고 우리 인민의 정의의 위업을 지지하여 적극 활동하였다.
체까는 조선로동당창건 30돐에 즈음하여 도서 《조선-쌀과 강철》을,
그는 자기의 도서들에서 조선을 《쌀과 같이 풍요하고 부드러우면서 강철과 같이 강의하고 굴할줄 모르는 나라》라고 높이 칭송하였으며 사회주의를 위하여 바치신
이외에도 그는 《주체》, 《만경대》, 《주체의 해발이 비친다》와 같은 많은 글을 집필하였다.
그 가운데서도 도서 《일흔번째의 봄》은 그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하고 의의있는 책이였다. 그는 우리 나라를 방문하여
당시 그의 건강은 도서집필이라는 방대한 과제를 감당해낼만한 상태가 못되였다. 하지만 그는
그는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주체사상의 승리를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친 국제주의전사였으며 혁명적인 기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