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위대한 수령님을 열렬히 흠모하고 따른 뻬루의 혁명적기자 헤나로 까르네로 체까

 2024.4.5.

전 라틴아메리카기자련맹 서기장이며 주체사상국제연구소 리사였던 헤나로 까르네로 체까는 정의와 평화, 민주주의를 옹호하며 조선인민과 라틴아메리카인민들사이의 친선과 련대성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에 한생을 바친 뻬루의 혁명적기자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나는 체까와 매우 가까이 지냈습니다. 체까는 지난날 우리 나라에 대한 선전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는 아주 좋은 사람이며 훌륭한 국제주의전사였습니다.》

1911년 4월 14일 뻬루의 북부에 있는 도시 뻬우라에서 출생한 체까는 대학시기에 맑스-레닌주의를 표방하는 청년학생운동조직인 전국대학생붉은선봉대의 총서기로 활동하였으며 대학 3학년때에는 싼체스 쎄로의 군사독재(1930-1933)를 반대하는 투쟁에 떨쳐나섰다.

그는 뻬루공산당의 주간지 《낫과 망치》에도 글을 싣기 시작하였는데 그로 하여 학교에서 쫓겨나게 되자 학업을 중도에서 그만두고 정의를 옹호하여 투쟁할 각오밑에 기자의 직업을 선택하였다.

친미독재정권의 반동성과 제국주의자들의 침략행위를 폭로규탄하는 수많은 글을 쓴것으로 하여 1937년에 그는 반동정부에 의해 메히꼬로 추방당하였다. 체까는 그후 조국에 돌아왔다가 또다시 메히꼬, 에꽈도르 등지에 무려 4차례나 추방당하였으며 20여차에 걸쳐 감옥생활을 하였다.

1946년 메히꼬에서 돌아온 그는 《새 소식으로 력사를 창조하자!》의 리념밑에 정치주간지인 《1947》을 창간하여 1961년까지 발간하였다. 주간지의 이름은 해가 바뀌는데 따라 《1948》, 《1949》등으로 계속 바뀌였다.

그는 지칠줄 모르는 노력으로 국가기자협회를 개혁하기 위한 정력적이고 혁신적인 활동을 벌려 1950년 6월 뻬루기자련맹을 창립하였다. 또한 《날카로운 독수리》(1956), 《문필활동》(1964) 등에서 반인민적정책이 실시되고있는 자본주의사회의 불합리성과 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체까는 인민대중의 참다운 자유와 행복, 세계의 민주화를 위하여 노력하였지만 참다운 길, 자주의 길을 찾아 번뇌와 고심속에 모대기고있었다.

그런 그의 인생을 새로운 투쟁의 길로 이끌어주신 위대한 은인, 위대한 스승은 바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이시였다.

그는 1968년부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후의 고전적로작들을 읽고 주체사상에 공감되였으며 새로운 투쟁의 길에 들어서게 되였다.

주체58(1969)년 9월 혁명의 수도 평양에서 진행된 반미세계기자대회에 뻬루기자대표단 단장으로 참가하여 세계 진보적기자들이 정의의 필봉을 들고나가는데서 지침으로 되는 위대한 수령님의 강령적인 연설을 받아안은것은 체까의 인생에서 의의깊은 사변으로, 인생의 극적전환으로 되였다. 그후 우리 나라를 수차례 방문하면서 주체사상의 정당성과 생활력에 대하여, 주체사상을 구현한 우리식 사회주의제도의 우월성에 대해 가슴뜨겁게 체험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체까를 만나주시고 주체사상의 보급을 위하여 투쟁하고있는 그의 활동을 높이 평가하여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자신의 존함이 모셔진 시계와 승용차도 안겨주시고 조선중앙통신사 명예기자칭호를 수여하도록 하시였으며 국기훈장과 로력훈장을 비롯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높은 국가수훈도 수여하도록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체까는 위대한 수령님께 여러 계기들에 축전을 올리고 지성어린 선물을 마련하여 삼가 드리였으며 《청년들은 대를 이어 혁명을 계속하여야 한다》위대한 수령님의 불후의 고전적로작들을 출판하여 라틴아메리카나라들에 널리 보급하였다.

또한 뻬루에서 진행된 라틴아메리카지역 주체사상토론회와 여러 나라들에서 진행된 주체사상에 관한 국제토론회들에 참가하여 힘있는 연설들로 주체사상의 정당성과 진리성, 생활력을 해설선전하고 우리 인민의 정의의 위업을 지지하여 적극 활동하였다.

체까는 조선로동당창건 30돐에 즈음하여 도서 《조선-쌀과 강철》을,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65돐에 즈음하여 도서 김일성, 사회주의를 위하여 바치는 한평생》을 집필하였다.

그는 자기의 도서들에서 조선을 《쌀과 같이 풍요하고 부드러우면서 강철과 같이 강의하고 굴할줄 모르는 나라》라고 높이 칭송하였으며 사회주의를 위하여 바치신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력사가 라틴아메리카를 비롯한 전세계 인민들의 반제자주를 위한 투쟁에서 커다란 리론실천적의의를 가진다는데 대해 서술하였다.

이외에도 그는 《주체》, 《만경대》, 《주체의 해발이 비친다》와 같은 많은 글을 집필하였다.

그 가운데서도 도서 《일흔번째의 봄》은 그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하고 의의있는 책이였다. 그는 우리 나라를 방문하여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온 석상에서 《저는 지금 책을 하나 쓰려고 준비하고있습니다. 제가 쓰려고 하는 책은 <일흔번째의 봄>입니다. 겨울이 없는 영원한 봄을 노래하려고 합니다. 저의 여생을 이 책에 깡그리 바치겠습니다.》라고 말씀올린 후 집필에 착수하였다.

당시 그의 건강은 도서집필이라는 방대한 과제를 감당해낼만한 상태가 못되였다. 하지만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70돐에 도서를 선물로 올릴 불타는 일념을 안고 밤낮없이 집필에 몰두하다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1980년 11월 13일 눈을 감았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 탄생하신 4월, 조선의 봄이야말로 세기의 봄, 영원한 봄이라고 격찬한 사연깊은 도서는 그의 유언대로 그의 부인이 완성하여 위대한 수령님께 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체까가 사망하였다는 비보를 받으시고 친히 그의 유가족들에게 조전을 보내주시였으며 그후에도 체까의 부인이 생일 80돐을 맞을 때에는 생일상까지 보내주시였다.

그는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주체사상의 승리를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친 국제주의전사였으며 혁명적인 기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