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 유일무이한 해외교포대학인 조선대학교는 진정 우리 조국과 민족의 크나큰 자랑이고 긍지이며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귀중한 재부입니다.》
인류가 공인하는 불세출의 대성인이신
일제패망후 일본반동들의 악랄한 민족차별정책과 탄압책동으로 하여 대학문전에도 갈수 없는 자식들을 바라보는 부모들의 심정은 너무나도 쓰리고 아팠다. 일제식민지통치시기 이역땅에 끌려가 모진 학대와 멸시속에 살면서 학교문전에도 가보지 못한 재일동포들에게 있어서 자녀들만이라도 민족의 넋이 어린 대학에서 공부를 시키고싶은것은 그 누구에게라없이 간절한 소망이였다.
재일조선동포들의 소망을 헤아려보신
그리하여 주체45(1956)년 4월에 재일조선인학생들을 위한 민주주의적민족교육의
창립당시 도꾜조선중고급학교에 있는 목조단층건물을 차지한 조선대학교는 2년제로서 불과 10명의 교원과 2개의 학부, 60여명의 학생들이 전부였다.
대학의 불비한 교사문제를 두고 항상 마음쓰시던
그리하여 주체48(1959)년 6월 도꾜의 무사시노(현재 고다이라시)에 연건평 2만 수천평의 부지면적을 차지한 새 교사가 일떠서고 철따라 조국의 그윽한 정취가 그대로 안겨오는 각종 수목과 화초들이 만발한 교재원, 현대적인 실험실습실, 강당과 도서관, 기숙사, 식당 등 모든 교육조건이 손색없이 갖추어진 민족교육의 대전당이 마련되게 되였다.
총련 조선대학교는 주체47(1958)년 4월부터 4년제대학으로 발전하였으며 주체57(1968)년 4월에 일본당국으로부터 대학설립에 대한 인정을 받아냄으로써 이역땅에서도 자기의 합법적지위를 차지하게 되였다.
세상에는 조국을 떠나 여러 나라들에 흩어져 사는 해외교포들도 많고 남의 나라땅에 가서 민족교육을 위해 눈물겨운 고초를 겪었다는 이야기도 적지 않지만 동서고금 그 어느 나라 해외교포사의 갈피에서도 이국땅에 해외동포자녀들을 위한 대학을 세웠다는 이야기는 찾아볼수 없다.
그리하여 총련 조선대학교는 10만m2의 부지면적과 4만m2의 총건평을 차지한 굴지의 대학으로 발전하였다.
오늘 대학에는 정치경제학부, 문학부, 력사지리학부, 외국어학부, 리학부, 공학부, 경영학부와 2~3년제의 사범교육학부, 20여개의 강좌와 2년제연구원이 있다.
또한 조선어연구소, 민족교육연구소를 비롯한 부속연구소들과 연구실, 실험실, 도서관, 체육관, 8개 호동의 기숙사, 식당, 의무실, 종합적편의시설 등 학생들의 학습과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시설들이 현대적으로 갖추어져있다.
이뿐이 아니다. 조선대학교는 일본사람들까지도 경탄을 금치 못해하는 조선력사박물관과 자연박물관을 가진 훌륭한 대학으로, 조국에 꾸려진 교수강습소와 실습학교들, 통신연구원과 통신박사원, 겸임연구사제도까지 훌륭히 완비할수 있게 되였다.
대학은 주체64(1975)년 5월 총련결성 20돐에 즈음하여 영예의
창립후 지난 60여년간 총련 조선대학교는 민족교육의
세상을 둘러보면 오랜 력사나 배출한 명인들의 수, 대학규모 등에서 제노라고하는 대학들을 무수히 찾아볼수 있다.
그러나 조선대학교처럼 남의 나라땅에서 자기의 교육강령을 가지고 해외교포운동과 조국의 부강번영에 이바지할수 있는 민족간부들과 인재들을 키워내는 대학은 그 어디에도 없다.
하기에 세상사람들은 《조선대학교는 곧 총련의 얼굴이다. 총련을 보려거든 조선대학교를 보라.》, 《해외의 조선청년들도 그처럼 씩씩하게 자라나고있으니 조선의 미래는 휘황찬란하다.》고 찬탄을 금치 못해하고있는것이다.
오늘 조선대학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