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민족고전 《동국세시기》에 반영된 정월대보름풍습

 2020.2.24.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민족의 옷차림과 식생활풍습은 어떠하며 민속명절에는 어떤것이 속하고 무슨 음식을 만들어먹었으며 민속놀이는 어떻게 하였는가 하는것과 같은 상식들도 알려주는것이 좋습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21권 300페지)

오늘 우리 나라에서는 위대한 수령님들과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숭고한 민족애와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우리 선조들이 오랜 력사적과정을 거쳐 이룩해놓은 우수한 민족전통과 미풍량속들이 훌륭히 계승발전되고있다.

민족고전 《동국세시기》는 19세기 전반기 봉건문인이였던 홍석모에 의하여 편찬된 책으로서 1권 1책으로 되여있다. 책은 봉건시기의 각종 명절들과 해당 명절들에 진행되군 하던 여러가지 의식들과 민속놀이, 명절날 널리 장려되던 민속음식들이 월별 및 지방별로 서술된것으로 하여 지난날 우리 민족의 미풍량속을 연구하고 그것을 계승발전시키는데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민족고전《동국세시기》의 정월 상원에는 년중의 가장 큰 명절인 정월의 설맞이풍습으로부터 그 다음으로 오는 큰 명절인 정월대보름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수록되여있다.

우리 선조들이 설명절다음으로 큰 명절로 즐겁게 맞이하던 정월대보름은 보통 음력 1월 14일부터 시작되였는데 14일은 작은 보름이라고 하고 15일을 대(큰)보름이라고 하였다.

《동국세시기》에서는 《신라 소지왕10년(488년) 정월 15일 천천정에 갔을 때 날아가는 까마귀가 왕에게 경고를 주었다. 나라의 풍속에 상원날을 까마귀제사날로 정하고 약밥을 만들어 까마귀에게 제사를 지내 은혜를 갚게 하였다.》(新羅炤智王十年正月十五日 幸天泉亭 有飛烏警告于王. 國俗 以上元日爲烏忌之日 作糯飯 祭烏報賽)라고 하였다. 이것은 신라의 소지왕이 상원날(정월대보름을 이르는 말. 원소(元宵), 원야(元夜)라고도 함.)에 천천정이라는 곳에 놀러갔다가 까마귀의 도움으로 위기를 면하게 되자 해마다 정월대보름이 오면 약밥을 만들어 까마귀에게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는 기록이다. 이것을 통해 세나라시기에 벌써 우리 선조들이 정월대보름을 명절로 맞이하였다는것을 알수 있다. 그러나 세나라시기에는 대보름명절을 후세와 같이 큰 명절로 쇠지는 않았던것 같다. 고려시기에 이르러서야 대보름명절이 널리 일반화되였으며 조선봉건왕조시기에도 그 전통이 계속 이어져 하나의 큰 민속명절로 되였다.

《동국세시기》에는 우선 우리 선조들이 대보름날 새해에도 행운과 풍년이 들기를 바라는 간절한 념원을 반영하여 진행하군 하던 여러가지 흥미있는 의례행사들에 대하여 서술되여있다. 대보름날의 의례행사에서는 달맞이가 특히 이채를 띠고 진행되였다. 《동국세시기》에서는 달맞이에 대하여 《어둠이 깃들면 홰불을 들고 높은 곳에 올랐는데 그것을 달맞이라고 하였다. 먼저 달을 보는 사람에게는 행운이 차례진다고 하였다.》(初昏持炬登高 謂之迎月 以先見月者爲吉)라고 기록하였다. 기록에서 보는바와 같이 대보름날저녁이면 마을사람들 모두가 뒤동산에 올라가서 솟아오르는 둥근달을 구경하였는데 사람들은 떠오르는 달을 먼저 보는 사람에게 그해에 행운이 차례진다고 여기였으며 보름달의 모양과 달빛을 보고도 한해 농사의 흉풍이나 기후를 예언하기도 하였다. 물론 이러한것은 허황하기 그지없는것이지만 자연현상에 대한 과학적인 인식이 부족하였던 당시 새해에도 풍작이 들기를 바라는 우리 선조들의 소박하고 간절한 념원이 담겨져있었다고 볼수 있다. 이밖에도 《동국세시기》에는 정월대보름날 진행되군 하던 의례행사들인 《낟가리대 세우기》(한해 농사가 잘되기를 바라면서 긴 장대를 세우고 거기에 여러가지 곡식을 매달아놓는것), 《과일나무시집보내기》(한해 과일농사에서 풍작이 들기를 바라면서 과일나무의 가지와 가지사이에 돌을 끼워놓는것), 《룡알뜨기》(마을에 있는 우물속의 룡알을 먼저 퍼간 집에서 그해 농사가 잘된다고 하면서 녀인들이 저마다 새벽물을 긷던것) 등에 대하여서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있다.

《동국세시기》에는 또한 우리 선조들이 대보름날에 진행하군 하던 대중적이면서도 재미있는 여러가지 민속놀이들에 대해서도 서술하였다. 《동국세시기》에는 《춘천의 풍속에 수레싸움이라는것이 있는데 이것은 외바퀴수레를 타고 각 마을들이 두개 조가 되여 앞에서 이끄는 사람들끼리 서로 싸워 승부를 가르는것이다. 이것을 놓고 한해 농사의 풍작을 예언하였는데 지는 쪽은 그해에 흉년이 드는것으로 여기였다.》(春川俗 有車戰 以獨輸車 各里分隊 前驅相戰 以占年事 逐北者 爲凶)라고 기록되였는데 이것을 통해 정월대보름날에 수레싸움과 같은 민속놀이가 성대하게 진행되였다는것을 알수 있다. 수레싸움은 마을과 마을사이 진행하는 집단적인 힘겨루기경기인것으로 하여 온 동네가 참가하는 흥겨운 놀이였다. 이외에도 정월대보름날에는 바줄당기기, 연띄우기, 바람개비놀이, 홰불놀이, 다리밟이와 같은 다양한 민속놀이들이 진행되였다. 우리 선조들은 정월대보름날 여러가지 민속놀이를 하면서도 그해 농사에서 풍작이 들기를 기원하였다. 물론 이러한 민속놀이들에도 허황하고 미신적인 요소들이 적지 않게 들어있지만 우리 인민들의 민족적인 정서가 그대로 깃들어있다고 볼수 있다.

《동국세시기》에는 또한 우리 선조들이 정월대보름날이 오면 즐겨 해먹군 하던 여러가지 민족음식들에 대해서도 서술하였다. 《동국세시기》에는 《깨끗한 술 한잔을 덥히지 않고 그대로 마시면 사람의 귀를 밝게 하는데 그것을 귀밝이술이라고 하였다.》(飮淸酒一盞不溫 令人耳聰 牖謂之 聾酒)라고 기록되였다. 이것을 통해 정월대보름날 아침에는 귀밝이술이라는 덥히지 않은 찬 술을 한잔씩 마시는 풍습이 있었다는것을 알수 있다. 정월대보름날 민속음식에서 이채를 띤것은 약밥과 오곡밥이였다. 《동국세시기》에는 《찰밥에 대추와 밤을 버무리고 기름과 꿀, 간장을 같이 섞은 다음 잣을 넣어 만든것을 약밥이라고 한다.》(糯炊米 拌棗栗油蜜醬幷蒸 調海松子 名曰藥飯), 《오곡밥을 만들어 그것을 먹었는데 서로 나누어주었다. 령남의 풍속도 역시 이러한데 하루종일 오곡밥을 먹었다. 대체로 사반(토지신에게 봄철 사일날제사때 올리는 음식)을 서로 나누어 먹던 옛 풍습과 같다.》(作五穀雜飯食之 亦以相遺. 嶺南俗 亦然 終日食之 盖襲社飯相饋之古風也)라고 기록하였다. 우의 기록에서 보는바와 같이 정월대보름날이면 우리 선조들은 약밥과 오곡밥을 해먹군 하였다. 약밥은 개성지방의 약밥이 특히 유명하였는데 향밥, 미찬, 잡과반 등으로도 불리웠다. 오곡밥은 거기에 쓰이는 알곡종류가 시대와 지방에 따라 서로 달랐으나 기본은 흰쌀과 팥이였으며 이외 수수, 좁쌀, 기장, 보리, 콩, 밀 등이 쓰이였다. 정월대보름날에 오곡밥을 지어먹는 풍습은 우리 선조들이 새해에도 오곡이 잘되여 풍년이 들기를 바라고 또 힘들게 거두어들인 낟알들을 종합적으로 맛보고 건강한 몸으로 농사를 더 잘 지으려는 의욕에서부터 생긴것이라고 볼수 있다. 이외에도 정월대보름날 민족음식에는 작은 보름날 점심에 국수를 먹으면 국수오리처럼 오래 산다고 하면서 즐겨 해먹던 국수와 9가지 마른 나물을 가지고 만든 《진채》(《상원채》, 《보름나물》이라고도 함.)가 있었다. 여기서 9가지 마른 나물이라는것은 어떤 나물을 꼭 찍어 가리킨것이 아니라 수가운데서 가장 많은 량을 나타내는 《9》와 결부시켜 《여러가지》, 《갖가지》나물을 의미한것으로서 여기에는 지방에 따라 서로 달랐으나 주로 오이, 가지, 무우순, 버섯, 고추잎, 고사리, 고비, 호박, 오가리 등이 속하였다. 또 이날에는 첫새벽에 날밤이나 호두, 은행, 잣과 같은 열매를 깨물면 이발이 튼튼해지고 부스럼이 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런것을 먹는 부스럼깨기풍습도 있었다.

이처럼 《동국세시기》에 반영된 정월대보름명절풍습에는 슬기롭고 근면한 우리 선조들의 민족적인 생활세태와 고상하고 아름다운 정서가 그대로 반영되여있다.

오늘도 수도 평양을 비롯한 전국의 모든 가정들에서는 정월대보름날이 오면 가족들과 이웃들이 모여앉아 오곡밥과 약밥, 9가지 마른나물반찬 등 민족음식들을 들면서 여러가지 민속놀이와 달맞이로 즐거운 명절의 하루를 보내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