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가장 숭고한 조국애와 민족애를 지니신
민족유산을 주체적립장에서 계승발전시킬데 대한
안국사는 우리 나라 중세초기 봉건국가였던 고구려시기(6세기초)에 20여년간에 걸쳐 완성된 절간으로서 현재 우리 나라에 남아있는 절들가운데서 력사가 매우 오랜 절의 하나이다. 지금도 절간주변에서는 고구려의 기와쪼각들을 흔히 찾아볼수 있다.
안국사의 기본건물인 대웅보전의 마루도리에 있는 기록에 의하면 이 건물은 그후 1419년에 다시 지었고 1594년과 1654년 그리고 1785년에 각각 고쳐 지었다고 한다.
지금은 대웅보전을 비롯하여 정면의 태평루, 서쪽의 료사채, 동쪽의 주필대가 남아있으며 태평루앞에 고려시기의 9층돌탑이 서있다.
태평루앞쪽에 여러개의 단이 있고 거기에서 주추돌과 기와쪼각들이 드러났는데 이것은 원래 이 절의 규모가 컸다는것을 말해주는것이다.
대웅보전은 높은 축대우에 기단을 쌓고 그우에 세운 정면 5간(17.04m), 측면 4간(13.2m)의 2층겹처마합각지붕건물이다. 건물의 평면은 정방형에 가까우며 정면과 측면의 좌우 끝에 있는 간은 좁고 가운데의 간들은 넓게 배부른기둥을 세우고 그 우에 포식두공을 얹었다. 두공은 1층에서는 바깥 7포, 안 9포이며 2층에서는 안팎이 각각 3포이다.
건물에는 금단청을 입혀 그 품위를 높이였고 문짝들에는 화려하게 꽃뚫음무늬조각을 하였다.
2층으로 된 대웅보전은 건축술이 우수한것으로 하여 학술적 및 건축구조학적연구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기본건물인 대웅보전과 마당을 사이에 두고 자리잡고있는 태평루는 정면 5간(19.25m), 측면 2간 (6.8m)의 겹처마합각지붕으로 된 단층루각이다. 건물의 가운데간에는 통로를 내고 그 좌우에는 각각 마루를 깔았으며 정면과 량 측면에는 판자로 된 짝문을 달고 후면은 터쳐놓았다.
두공은 정면과 후면이 다르고 기둥과 기둥사이에도 서로 다른 다양한 형태를 얹은것이 특징적이다.
태평루의 앞에 서있는 9층탑은 깨돌로 만들었으며 평면은 정4각형이고 높이는 6.23m이다. 탑은 현재 2층의 기단과 8층의 탑몸, 탑머리로 되여있다.
이 돌탑은 차례줄임을 크게 주지 않고 기단과 몸돌, 지붕돌의 높이를 높여 전반적으로 우로 솟아오르는듯한 느낌을 주게 하였다.
대체로 고려중기이후시기의것으로 보고있는 이 탑은 안국사가 고려시기에도 쓰이였다는 증거로 되며 당시의 돌탑건축술과 조각술을 연구하는데서 가치있는 유산으로 되고있다.
9층탑가까이에는 우리 나라에서 오래 자란 나무들중의 하나인 은행나무가 지금도 자라고있다. 우리 나라의 천연기념물로 등록된 《안국사은행나무》는오랜 력사유적인 안국사의 풍치를 한껏 돋구어준다.
언제나 민족유산보호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려오신
이날 안국사를 돌아보신
그러시면서 력사유적들을 잘 보존관리하는것은 단순한 행정실무적사업이 아니라 민족문화유산의 계승발전과 애국주의교양에 바쳐오시는
우리 선조들의 우수한 건축술과 뛰여난 예술적재능을 보여주는 력사유적- 안국사는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