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외국어문학부 려백림
2018.4.21.
예로부터 산좋고 물맑아 금수강산이라 불리워온 우리 나라에서 벌방과 두메산골 그 어디에 가도 흔한것이 물이다.
오늘날 그처럼 흔한 물에도 인민을 위하여 한평생을 다 바쳐오신 어버이수령님의 로고와 심혈이 깃들어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의 한생은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고 사상과 령도에 구현하여 현실로 꽃피우신 인민적수령의 숭고한 한생이였다.》
마타리물이란 흘러가지 않고 웅뎅이에 같은데 고여서 어지러워진 물을 말한다.
1945년 나라가 해방되였지만 열두삼천리벌의 숙천군을 비롯한 일부 지방에서는 수도화가 되여있지 않아 사람들이 수도물이 아니라 웅뎅이에 고인 마타리물을 생활용수로 리용하고있었다.
주체 37(1948)년 9월 중순이였다.
당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서기장으로 사업하던 강량욱선생이 밤중에 위대한 수령님을 찾아와서 조용하고 침착한 평시의 성미와는 다르게 《장군님, 어제 남동마을에 가서 마타리물을 마셨다는게 사실입니까?》하고 다급히 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누구한테서 그런 말을 들었는가고 반문하시였다.
그때 방에는 손님 몇명이 와있었는데 그들은 강량욱선생의 안타까운 말을 듣고 모두 놀랐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남동마을이란 곳에 가시여 마타리물을 마시였다는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그런 몹쓸 물을 무엇때문에 마시셨단 말인가?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숙천군 남동마을에 들리시여 마을에서 제일 가난해보이는 잔디로 벽을 쌓은 떼장집에 들리시여 주인을 찾으시였다.
바다바람에 얼굴이 탄 녀인이 지게문을 열고 나오다가 위대한 수령님을 뵈옵고 굳어졌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안녕하십니까, 아주머니. 나 물사발만 좀 주십시오 라고 청하자 녀인은 어찌할바를 몰라 방안에 대고 《아버님》하고 불렀다. 그러자 머리가 백발인 늙은이가 기침을 하며 얼굴을 내밀었다.
《아니, 나라의 임금님께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신발도 못 찾아신고 토방에 내려와 넙죽 엎드려 사시나무떨듯 하는 로인을 부축하여 일으켜세우시며 로인님, 해방된 우리 나라에는 임금이란 없습니다. 이제 임금처럼 대접을 받아야 할 사람은 로인님과 같은 분들입니다 라고 하시면서 다시 물을 청하시였다.
순간 로인은 자기 귀를 의심하였다.
그것은 이 고장에 와 물을 청하는 손님은 마을이 생긴이래 처음이였기때문이였다.
로인이 죄송스럽고 송구스러워 머리를 들지 못하고 《장군님께 물 한사발도 드리지 못하는 이 못난 백성을 용서하십시오. 이 남동리물은 어지러워서 군에서 일보시는 어른들도 어쩌다 이 마을에 올 때면 물병을 차고옵니다.》고 말씀을 드리였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럼 이 마을사람들이 어떤 물을 마시고 사는지 보기라도 하자고 하시였다.
며느리가 이빠진 사발에 뿌연 마타리물을 담아가지고 나왔다.
물사발을 받아드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천천히 기울여 한모금 넘기시자 로인은 너무 기겁해서 아이구, 나라의 임금님께 마타리물을 마시게 했으니 이제 남동마을이 천벌을 받게 됐다고 하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에서 임금은 인민이며 자신은 그 임금의 신하이라고 겸허의 말씀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날 저녁 그 집에서 마타리물에 끓인 시래기장국을 음식으로 드시고 마을농민들과 밤이 깊도록 담화를 하시였다.
토질병에 걸려 줄기침을 하는 이 마을 농민들을 생각하시며 잠 못이루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력사의 그밤 인민들의 생활에서 물고생, 물걱정부터 영원히 없애버릴 결심을 하시였다.
그 다음날 평양에 돌아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곧 내각협의회를 여시고 평남관개공사에 대한 문제를 토의에 붙이시고 평남관개공사의 원대한 구상을 펼치시였다.
이처럼 한평생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나누시며 인민을 위한 길에 그 무엇도 아끼지 않으신 우리 수령님의 한없이 고결하고 위대한 인민적풍모에 의하여 평남관개공사에 뒤이어 기양관개공사가 벌어졌으며 이 땅우에 수리화의 새 력사가 펼쳐지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