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고구려의 높은 공예술을 보여주는 옥충주자

 2024.10.9.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나라의 발전된 문화는 일찍부터 세상에 널리 알려졌으며 주변나라들의 문화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특히 우리 나라가 고대일본의 문화발전에 준 영향은 대단히 큽니다.》

고구려사람들의 높은 공예술을 잘 보여주는 문화유물가운데는 일본의 나라현 법륭사 금당에 보존되여있는 옥충주자도 있다.

옥충주자는 일본의 고분문화의 전성기로 알려졌던 아스까시대(6세기중엽-7세기말엽)의 대표적인 유물의 하나로서 추고왕(593년-628년)의 불감(불상을 넣어두기 위한 일종의 장)으로 만들어졌는데 그가 몹시 애용하던 물건이였다. 원래 주자라는것은 불상을 넣어두기 위한 감(장)이며 옥충이라는것은 길정충이라고 하는 딱장벌레의 이름이다. 예로부터 옥충의 고운 날개는 장식용으로 널리 리용되였는데 옥충주자는 그러한 대표적인 실례의 하나이다.

옥충주자
사진. 법륭사의 옥충주자

옥충주자는 크게 두 부분으로 되여있다. 아래부분은 수미단(불교에서 나오는 전설적인 산을 그려놓은 단)이라고 하여 받침대역할을 하게 되여있고 웃부분은 주자로 되여있는데 궁전 또는 절간건축을 본딴것이라 하여 궁전부라고 부른다. 궁전부의 웃부분은 합각모양의 지붕을 올렸으며 치미와 기와막새, 두공에 이르기까지 그 세부를 완전히 예술적으로 장식하였다. 특히 그림과 장식수법은 옥충주자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옥충주자의 받침대부분과 궁전부의 벽면들에 그려진 산과 나무, 합각지붕을 씌운 집의 묘사, 주인공인 보살상을 가운데 앉히고 좌우에 배치된 시녀들, 다보탑과 비천, 봉황 등은 한눈에 보아도 그 정교함과 우아함을 잘 알수 있게 한다. 장식은 주로 주자의 받침대부분과 궁전부의 밑단부분 변두리에 옥충의 날개와 금동뚫음무늬수법으로 넝클무늬를 새긴 금구를 놓았는데 옥충날개의 자홍색과 록색, 금구의 황금색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눈부신 색채를 내고있다. 자료에 의하면 이 주자를 만드는데 천수백마리의 금록색 옥충날개가 리용되였다고 한다. 옥충주자는 그림수법과 가공기술에서 고구려의 발전된 공예, 미술, 건축술을 그대로 잘 보여주고있다.

주자의 벽들에 그려진 산과 나무, 합각지붕을 씌운 집, 세발가진 까마귀와 뚜꺼비로 해와 달을 상징한것, 다보탑과 비천, 봉황 그리고 넝클무늬 등은 4세기 전반기에 축조된 고구려벽화무덤들의 벽화에 뚜렷이 나타나있다.

또한 옥충주자의 지붕에 장식한 금동치미장식은 안학궁터에서 알려진 치미와 신통히 같으며 주자에 적용된 금동뚫음무늬장식수법도 고구려의 무덤들인 진파리(지금의 룡산리) 7호, 16호무덤들에서 나온 금동뚫음무늬장식품의 장식수법과 같은것으로서 주자의 고구려적성격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옥충주자는 고구려의 목조 및 금속장식공예술과 함께 우수한 회화술, 건축술을 잘 보여주며 삼국시기 고구려의 문화가 일본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는것을 뚜렷이 실증하여주는 우수한 공예품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