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자그마한 특전도 허용하지 않으시고

 2020.2.18.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은 우리 인민과 세계 진보적인민들의 다함없는 존경과 흠모를 받으시였지만 자신에 대한 그 어떤 특혜와 특전도 허용하지 않으시고 언제나 인민들과 같이 겸허하고 소박하게 생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평생 자신에 대한 그 어떤 특혜와 특전도 허용하지 않으시였다. 그리고 일가친척들에게도 언제나 겸손하고 검박한 생활을 하도록 이르군 하시였다.

주체47(1958)년에 있은 일이다.

이해에 일군들이 만경대에 계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삼촌되시는분의 집을 옮겨지은적이 있었다.

이미 온 나라의 농촌들에서 초가집들이 없어지고 새로운 문화주택들이 일어서는데 늙으신 할머님 리보익녀사를 모시고있는 삼촌댁의 일가분들은 의연히 이전의 낡은 단층집에 거처하시기때문에 일군들은 의논끝에 원래 있던 집자리에서 얼마쯤 떨어진 곳에 허청간으로 쓸 반지하실이 달린 세칸짜리 집을 새로 지어드리게 되였다.

그때 겸손하신 일가분들은 한사코 만류하셨지만 일군들은 집을 옮겨지으면서 그것은 응당한 도리라고 생각하였다.

집을 옮겨지은지 얼마후 위대한 수령님께서 만경대에 나오시였다.

새로 지은 집을 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즉시에 일군들을 부르시고 저것이 무슨 집인가고, 누구의 지시로 저런 집을 지었는가고 물으시였다.

일군들은 한동안 아무 대답도 올리지 못하다가 집을 새로 옮겨짓게 된 사연을 솔직히 말씀올리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크게 나무라시며 본래 쓰고있던 집이 뭐가 불편하다고 자재와 로력을 랑비하면서 이런 일을 하는가, 인민들의 주택문제가 아직도 긴장한데 이렇게 해서야 되겠는가고 하시였다.

일군들을 타이르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음성은 전에 없이 근엄하게 울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윽고 신중한 어조로 나라와 인민의 재산을 어느 개인의 사사로운 일에 랑비해서는 안된다고, 우리 가문이라고 하여 특별히 례외가 될수 없다고 하시면서 동무들이 이렇게 하는것은 자신을 도와주는것이 아니라고 준절히 타이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어 그 집을 헐어서 건재를 다른데 돌려쓰도록 하라고 이르시였다.

로동자, 농민들, 오랜 혁명가들과 그 유가족들에 대해서는 언제나 육친의 정으로 보살피시며 국가에서 책임지고 생활을 보장해주도록 아낌없는 배려를 돌리시면서도 조선혁명의 준엄한 력사와 더불어 가장 큰 시련과 가슴아픈 불행을 겪으신 일가분들에 대해서는 이처럼 엄격하게 대하시니 참으로 어버이수령님의 고결한 풍모앞에서 일군들은 눈물을 삼키며 머리를 숙이지 않을수 없었다.

자기 혈육과 일가친척을 위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공통된 인간의 감정일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인들 어찌 조부모님과 일가친척들을 생각하시는 마음이 뜨겁지 않으시겠는가. 항일혁명투쟁의 나날 일가분들이 당하신 불행과 고통을 생각하시면 누구보다도 가슴이 쓰리고 아프실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의 일가친척들을 위한 특전은 아무리 작은것이라 하더라도 모두 나라앞에서 《위법》으로 된다고 생각하시며 검박하고 청렴한 생활의 숭고한 귀감을 보여주시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은 지니신 사상과 령도적권위, 쌓으신 업적을 비롯하여 모든 면에서 이 세상의 그 어느 위인, 령도자들도 견줄수 없는분이시였다. 하지만 우리 수령님께서는 자신에 대한 그 어떤 특혜와 특전도 허용하지 않으시고 언제나 인민들과 같이 겸허하고 소박하게 생활하시였다.

참으로 우리 수령님은 인간이 갖추어야 할 겸손한 품성을 최상의 높이에서 지니고 한생을 살아오신 위인중의 위인이시였다. 우리 수령님께서 지니신 무한히 겸손한 품성은 아직까지 인류가 체험해보지 못했던 가장 숭고하고 고결한 풍모의 참다운 귀감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