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고대일본에 미친 조선의 영향 (5)

 2017.7.28.

일본의 후나야마고분의 백제적성격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선조들은 일찍부터 일본렬도에 적극 진출하여 일본의 정치, 경제, 문화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김정일전집》 제7권 164페지)

삼국시기에 고구려, 신라는 물론 백제도 일본의 문화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일본고분문화의 여러 유적과 유물들에서 나타나는 백제적성격은 이러한 사실을 뚜렷이 실증해주고있다.

일본의 고분문화를 특징짓는 무덤유적들은 무덤의 짜임새와 무덤에서 발견되는 껴묻거리들에서 백제문화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고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일본 고분문화시기의 대부분의 고분들은 거의 대부분이 고구려, 백제, 신라를 비롯한 세나라의 영향을 받아 건축된것이다. 일본 고분문화에 반영된 백제문화의 성격은 널리 알려진 규슈지방의 후나야마고분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구마모또현 다마나군에 있는 후나야마고분은 크기와 화려함, 풍부성에 있어서 일본에서 일류급에 속하는 무덤의 하나이다.

이 무덤은 대체로 고분문화의 발전기인 5세기~6세기초의것으로 추정되고있다.

후나야마고분은 무덤의 위치와 구조, 껴묻거리들로 미루어보아 세나라 특히 백제문화의 색채를 강하게 띤 무덤으로 알려져있다.

우선 후나야마고분이 있는 지방의 유래를 통해서도 백제문화의 성격을 알수 있다.

후나야마고분이 있는 규슈서부지방은 고대시기에 《히》지방, 《히》나라라고 하였는데 《히》는 한자식표기로서 처음에는 《고마》라고 불리워왔다. 고대일본에서 《고마》는 대체로 5세기이전에는 백제를, 6세기이후에는 고구려를 가리키는 말이였던것이다.

또한 우리 나라와 제일 가까운 규슈지방의 유적과 유물을 통해서도 백제문화의 영향을 엿볼수 있다.

고마-백제지방으로 알려진 북규슈서부지방에는 백제관계의 지명뿐아니라 유적, 유물들이 적지 않게 남아있다. 실례로 후나야마고분이 위치한 북부히고지방의 기꾸찌강류역일대에는 조선식산성인 기꾸찌산성이 있고 고구려, 백제적영향이 짙은 횡혈식돌칸무덤들이 많다.

후나야마고분의 백제적성격은 무덤의 구조와 무덤에서 나온 껴묻거리를 통하여 집중적으로 찾아볼수 있다.

후나야마고분은 고구려, 백제적영향이 강한 횡혈식의 전방후원분이다.

후나야마고분에서 출토된 껴묻거리들은 소국왕급에 어울리는 화려하고 웅장한것들로서 거의 모두가 조선적색채 특히 백제적색채를 강하게 띠고있다.

껴묻거리가운데서 주인공의 몸차림에 쓰인 금동관, 금귀걸이, 금동신발 등 몸치레거리들은 생김새에 이르기까지 백제의 라주 신촌리 9호무덤과 무녕왕무덤 그리고 신라의 경주 천마무덤과 량산부부무덤에서 나온것과 같다. 특히 금동신발에 9개의 못을 박은것은 백제의 신촌리 9호무덤에서 나온것과 꼭같다.

껴묻거리들인 칼, 투구, 단검, 자갈, 등자, 등의 무기, 무장, 마구류들이 고구려, 백제의 영향밑에 5세기에 일본에 새롭게 나타났다는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후나야마고분에서는 75자를 은상감한 쇠칼이 나왔다. 그에 의하면 《천하를 다스리는 대왕대에 대왕의 명령을 받들고 관청사람(이름은 무리)이 (지휘하여) 만든것이다. 8월중에 큰 용해가마를 썼다. 4척이 되는 칼을 80번이나 단련해서 60진 8재를 만들었다. 이 좋은 칼을 차지하는 자는 오래 살고 자손도 많을것이요, 세가지 은혜를 다 받을것이다. 그 통솔하는바(나라)도 잃지 않을것이다. 이 칼을 손수 만든자의 이름은 이태어요, 글씨를 쓴것은 장안》이라고 씌여져있다.

이것은 무덤의 성격과 위치, 당시 백제-왜관계로 미루어보아 백제대왕의 명령으로 백제기술자들이 만든것으로서 백제국왕이 자기의 영향밑에 있는 규슈지방 후나야마고분의 주인공에게 준것으로 볼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현재 나라현 덴리시 이소노가미신궁에 전해오고있는 유명한 백제7지도가 반증해준다. 칼의 기본날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3개씩 6개의 날을 합하여 7지도라고 한다. 이 칼에는 칼몸앞뒤에 60여자가 금상감되였는데 다음과 같이 씌여있다.

《태화4년(408)년5월 13일 병오일 한낮에 백번 단련한 철로된 7지도를 만들었다. 이것은 대대로 모든 무기들을 물리칠것이니 후왕에게 줄만하다. …이전에는 이런 칼이 없었는데 백제왕이 수명의 연장과 관련하여 어진지시를 내렸기에 후왕을 위하여 만든것이니 후세에 전해서 보이도록 해라.》

결국 백제7지도는 백제국왕이 일본렬도안의 백제의 《왜》후왕(속국왕)을 위하여 만들고 그에게 준것이다. 따라서 후나야마고분의 칼도 사정은 이와 비슷했다고 볼수 있을것이다.

이와 같이 무덤주인공의 관모, 귀걸이, 신발 등 몸치레거리로부터 그가 사용하던 무기, 무장, 마구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삼국시기 우리 나라에서 쓰던것들로 되여있다.

후나야마고분에서 나온 껴묻거리들은 당시 일본에서는 소국왕급에 속하는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삼국시기 우리 나라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는 지방장관급에 해당하는 2~3등급의 물건에 지나지 않는것이다.

1980년 일본에서 출판된 《철검을 낸 나라》라는 책에는 후나야마고분의 껴묻거리에 대하여 《…조선반도의 공예기술 그대로이다. 어쨌든 금동품의 모두가 조선제라고 보아도 틀림없는 특이한 성격을 가진 고분》이라고 씌여져있다.

이상의 자료들을 보아 후나야마고분의 주인공은 명백히 이 지역에 일찍부터 대량적으로 진출하여 큰 세력을 이루고있던 백제계통의 사람이였거나 백제계통 소국왕일것이다.

후나야마고분과 마찬가지로 이 시기 크고 두드러진 고분들도 백제, 고구려 등 세나라의 문화적영향을 받게 된것이며 그 주인공들 역시 조선계통사람인것이다.

이미 다까마쯔고분을 비롯한 적지 않은 고분들이 조선적색채를 강하게 띠고있다는것이 밝혀졌다. 바로 그렇기때문에 몇해전에 일본에서 고분문화시기 최고권력자의것이라고 하는 고분을 발굴하여 TV로 방영하다가 조선에서 나온 무덤들과 꼭 같기때문에 도중에 중지하는 소동이 벌어진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일본서부의 넓은 지역에 웅장함과 화려함을 자랑하는 고분들은 결국 백제를 비롯한 세나라사람들이 큰 세력을 이루고 남긴 흔적을 보여주는 산증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