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금수산의 보물

 2020.7.8.

금수산태양궁전에는 생전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물로 여기신것들이 많다. 그러한것중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보군 하시던 금수산의 보물이 있으니 그것이 다름아닌 우리 나라의 국보 조선봉건왕조실록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신의 서재에 두고 소중히 여겨오신 이 400권의 조선봉건왕조실록에는 기나긴 풍운의 력사와 더불어 민족의 재보를 끝없이 아끼고 사랑하시는 절세위인의 사랑의 전설이 담겨져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시기 천수백권에 달하는 <리조실록>원본이 있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인민군대를 동원하여 그것을 구출해오게 하시였으며 그후에 번역집단을 크게 뭇고 <리조실록>을 번역하여 누구나 다 볼수 있게 해주시였습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23권 127페지)

위대한 수령님은 외적의 침해로 끊임없이 풍전등화의 처지에 빠져야 했던 조선봉건왕조실록을 구원해주시였으며 그 번역사업을 나라의 중대사로 내세우시고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리시여 조선봉건왕조실록이 나라의 국보로 그 빛을 뿌리게 해주신 위대한 애국자, 민족의 어버이이시였다.

민족의 유구한 력사도 민족문화유산의 국보적가치도 민족의 위대한 수령을 모셔야 찬란히 빛을 뿌리게 된다는것을 조선봉건왕조실록에 바쳐진 어버이수령님의 업적을 통하여 가슴뜨겁게 느끼게 된다.

언제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를 방문한 중국의 주은래총리와 함께 주체교육의 최고전당 김일성종합대학을 찾으시였는데 이날 대학참관에 이어 현대적으로 꾸려진 대학의 과학도서관에 이르시였다.

수만권의 장서능력을 가진 대학도서관에 대한 설명을 들은 주은래총리는 조선봉건왕조실록에 대한 이야기에 저으기 놀라와하였다.

전쟁의 불길속에서 자칫하면 한줌의 재로 타버릴수 있었던 이 조선봉건왕조실록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파견해주신 과학자들과 인민군대 한개 구분대에 의해 구원되게 되였다는 총장의 이야기와 함께 조선봉건왕조실록이 총 1 763권으로 조선봉건왕조 500여년의 방대한 력사가 일기체로 서술되였다는 말을 듣고 주은래총리는 자기 나라에도 수많은 실록류들이 있지만 청나라왕조의 력사 300년을 기록한 책이 있을뿐 이처럼 긴 력사를 서술한 책은 없다고 하면서 우리 나라가 대단한 보물을 가지고있는데 대하여 감탄을 금치 못해하였다.

1413년에 처음 편찬된 조선봉건왕조실록은 너무도 많은 풍파를 겪었다. 실록이란 말그대로 해당 시기 력사를 그대로 적는 정부일지이다. 당시 실록의 담당자는 품계가 그리 높지 못한 사관들이였지만 일단 사초가 씌여지면 그다음에는 임금도 감히 어쩌지 못한다는 엄격한 규례가 있었다. 이런 사초들을 여러해동안 모아두었다가 그 임금이 사망한 후 실록편찬위원회를 소집하고 임금의 《덕행》과 정치 등 모든것을 실록으로 써넣군 하였다.

비록 임금의 《덕행》을 칭하도록 사실내용이 수정되여 기록되기는 하였지만 조선봉건왕조실록은 종합적인 정부일지로서 그속에는 우리 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 군사의 모든것이 다 적혀진 귀중한 민족문화유산이였다.

그러나 귀중한 이 실록은 기나긴 세월 외적들의 침해로 곡절많은 행로를 거치지 않으면 안되였다.

실록이 근 200년의 력사를 서술하였던 임진조국전쟁(1592년)때 왜놈들은 기여드는 즉시 춘추관의 실록각부터 불살라버리고 련이어 충주와 성주의 실록마저 불지르는 야만의 짓을 서슴지 않았다. 결국 각각 네본씩 인쇄하여 보관했던 실록이 전주사고의것만 겨우 남게 되였다.

국왕은 이미 북변으로 피난을 떠났고 왜적은 파도처럼 밀려들어 조선봉건왕조 근 200년의 력사기록은 림종직전에 처해있었던것을 《도끼상서》로 유명했던 조헌이 이 소식을 전해듣고는 700의사를 거느리고 사고주변의 인민들과 스스로 문을 까고 뛰여들어 불길속에서 실록원본과 단군을 비롯한 력대 임금들의 어영(초상화)을 가까스로 구원해냈다.

전주사고본은 그후 강화도의 마니산성에 보관되였다가 다시 서산대사가 있는 묘향산으로 옮겨져 간신히 연명되였다.

임진전쟁후 1606년에 조선봉건왕조정부는 전주사고본을 대본으로 하여 4부를 다시 인쇄하여 모두 5부를 춘추관과 새로 설치된 4개의 지방사고들에 각각 보관하였다.

일제는 조선강점후 지방사고들을 페지하고 수많은 문화재와 함께 실록 한본도 략탈해갔는데 이것은 1923년 간또대지진때 불타버렸다.

겨우 살아남은 조선봉건왕조실록들은 또다시 인멸될 위기에 처하게 되였으니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적들의 폭격속에 언제 재가루가 될지 모르는 형편이였다.

바로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봉건왕조실록을 구원하기 위해 과학자들과 인민군군인들을 직접 파견해주시였다.

이리하여 조선봉건왕조실록을 실은 자동차가 인민군병사들의 호위속에 북으로 들어서게 되였다. 적기편대가 하늘을 썰며 종횡으로 날고 수많은 적기의 폭격속에서도 조선봉건왕조실록을 실은 차는 기총탄 하나 책을 꿰뚫고 지나간것이 없이 목적지에 무사히 이르게 되였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유명한 력사학자이며 한문학자인 홍기문선생을 금수산의사당(당시)으로 부르시여 조선봉건왕조실록의 번역사업을 조직할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며칠이 지나서 열린 한 회의에서는 번역사업과 관련한 여러가지 안들이 나왔으나 곤난한 문제들도 제기되였다.

그중의 가장 큰 문제는 조선봉건왕조실록의 번역본이 도합 400책에 달하므로 근 20년이 걸릴것으로 예견되는데 학자들은 평균나이가 60을 훨씬 넘은 상태이니 이것을 어떻게 하는가 하는것이였다.

끝을 맺지도 못할 일을 벌려놓았다가 공연한 시간과 로력만 랑비하게 되지 않겠는가. 군사, 문화, 법률, 종교, 문학 등 각 분야의 어휘들이 다 집합되여있을뿐아니라 리두문체와 한문체로 옮긴것도 들어있기때문에 그를 해석하는 능력도 겸비되여야 하는것이다.

문제의 또 하나는 조선봉건왕조실록번역사업을 두고 케케묵은 낡은 문서보따리를 오늘에 번역해서는 무얼하느냐 하는 일부 일군들의 태도였다.

조선봉건왕조 500년의 정치사란 사대와 망국으로 얼룩진것이고 봉건왕조의 부패한 모습으로 가득찬것인데 이것이 어디에 필요한가고 하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와 관련한 보고를 받으시고 물론 조선봉건왕조실록이 왕권신수설에 의해 씌여졌고 그속에는 사대와 망국에 대한 내용도 있지만 5백년의 우리 민족사가 기록되여있고 민족생활이 들어있는 귀중한 민족문화유산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이 사업은 절대로 미룰수 없다고, 지금도 고한문을 알고있는 학자들이 부족한데 이것을 오늘에 번역출판해놓지 않는다면 먼 후날에 가서는 한사람도 이 책의 글줄을 읽어내지 못하게 될것이라고, 후대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 책들을 모두 번역출판해놓아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 간곡한 가르치심에 따라 지체없이 전국적범위에서 학자집단이 구성되고 번역사업이 시작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들의 사업보장을 위해서 당중앙위원회의 한 청사도 통채로 내주도록 하시고 경치좋은 묘향산에 휴양소와 같은 번역실도 새로 꾸려주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과 당의 은정속에 조선봉건왕조실록의 첫책이 번역되여 출판되던 날 그이께서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책을 받아 몸소 자신의 서가에 꽂으시며 자신께서는 이 서가에 400책이 다 채워질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지만 자신께서는 20년을 인내성있게 기다리겠다고 가슴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그밤중으로 번역된 첫권을 모두 읽으시면서 색연필로 밑줄까지 그어가시며 학자들에게 번역사업에서 지켜야 할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리하여 위대한 수령님의 서재에는 번역된 조선봉건왕조실록이 하나둘 자리를 차지하였으며 벌써 한두해사이에 서재의 웃단이 빼곡이 들어차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족의 재부가 늘어나는것이 그리도 기쁘시여 소중한 보물처럼 책 한권한권을 늘 뽑아보군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학자들의 건강을 념려하시여 어느날엔가는 몸소 가꾸시던 정원의 감나무에 주렁진 감들을 모두 학자들에게 보내주시였다.

세월이 흘러 위대한 수령님의 서가에 조선봉건왕조실록의 마지막번역본이 꽂히던 날은 금수산의사당이 명절처럼 흥성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책임서기에게 오후에만도 두차례나 책을 가지고 떠났는가, 이제는 도착했는가고 재촉하시였다.

짧지 않은 20년세월 그렇게 기다려오신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이윽고 한 학자가 책을 안고 들어서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학자들모두를 다 만나보고싶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400권이 주런이 꽂힌 자신의 서가를 바라보시며 이 금수산에는 세상에 없는 보물이 있으니 그것은 다름아닌 저 400권의 조선봉건왕조실록들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리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금수산의사당에 귀한 보물이 있다는 말이 돌아가게 되였으며 그이께서도 외국의 인사들을 만나실 때면 금수산의 보물인 조선봉건왕조실록에 대하여 자주 말씀하군 하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