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장금범
2024.8.14.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해방직후부터 음악예술부문에서 사대주의적경향을 반대하고 주체를 세우도록 하시였으며 우리 음악발전에서 민족성을 살려나가도록 이끌어주시였습니다.》
한평생 우리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의 력사속에는 어느한 민요가수에게 안겨주신 가슴뜨거운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주체44(1955)년 가을 어느날 저녁 외국대표단을 위한 연회가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연회에서 있게 될 공연에 국립교향악단 배우들과 함께 어느한 녀가수도 참가시키도록 하시였다.
그 녀가수로 말하면 나라없던 그 시절 황금의 노예로 노래를 팔면서도 식민지노예의 멸시를 받으며 살아야 했던 불우한 예술인이였다.
그러던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품속에 안겨서야 진정한 삶을 누리게 되였으며 어버이수령님께서 안겨주신 인민을 위한 참된 선률과 음향을 받아안으며 예술활동을 마음껏 해나갈수 있었다.
바로 이러한 그가 이날 위대한 수령님을 한자리에 모시고 진행하는 공연에서 독창으로 노래를 부르는 영광을 지니게 되였던것이다.
그가 부른 노래가 끝나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면에 밝은 웃음을 담으시고 제일먼저 사랑의 박수를 보내주시였다.
그렇게 되여 녀가수는 끓어오르는 흥분을 진정시킬 사이도 없이 두번째 노래 《능수버들》을 불렀다.
그가 두번째 노래를 마쳤을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렁찬 박수를 보내주시고 한곡 더 부르라고 말씀하시였다.
지난날 수모받고 억눌리던 예술인일수록 더욱 용기와 신심을 가지고 주체예술의 무대에 나서라고 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고무가 담겨있는 재청을 받은 녀가수는 이렇게 되여 민요를 한곡 더 부르게 되였다.
노래가 끝나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다시 사랑의 박수를 보내주시고 대견하신 표정으로 곁에 앉은 일군들에게 저 동무는 오랜 예술인인데 아직도 노래를 잘 부른다고, 저 동무의 노래는 민족적감정이 풍부해서 좋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민요의 형식을 계승하고 군중이 좋아하는 노래는 발전시켜야 한다고 하시며 그 녀가수의 노래를 널리 소개하라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 전후복구건설의 분망하신 나날에도 주체적음악발전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우리 예술인들속에서 자기 나라의 민족유산을 경시하면서 남의것만 모방하려는 그릇된 사대주의편향이 발로되였을 때에는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세울데 대하여 가르쳐주시고 복고주의적경향이 나타났을 때에는 이를 고치고 민족음악을 현대적미감에 맞게 발전시킬 방도를 밝혀주시며 뜨거운 손길로 이끌어주시였다.
이렇듯 다심하고 뜨거운 친어버이의 사랑의 손길에 이끌려 주체적음악예술인으로 성장한 녀가수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만나주시고 뜨거운 사랑을 거듭 안겨주시였다.
주체48(1959)년 새해경축공연때에는 그 녀배우가 부른 민요 《어화 우리 농민들아》와 《조선팔경가》를 들으시고 조선사람은 조선노래를 들어야 구수하고 듣기가 좋다고, 그의 노래는 우리 인민들이 다 좋아하니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고 하시며 그에게 공훈배우칭호를 수여하도록 분에 넘치는 배려를 돌려주시였다.
그리고 주체50(1961)년 8월에는 로력훈장을 안겨주시고 위대한 수령님을 한자리에 모신 8.15해방 16돐 경축연회에 참가하도록 하시고 사랑의 축배잔도 부어주시는 최상의 영광을 안겨주시였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주체61(1972)년 4월 희천공작기계공장(당시)을 찾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만대의 공작기계생산목표를 수행하기 위한 생산현장에 경제선동대로 나온 그 녀배우에게 혁명화가 다 된 배우라는 과분한 치하를 주시며 영광의 기념촬영장에서 제일 앞에 내세워주시였다.
이 녀가수에게 안겨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은 그후에도 계속되였다.
평범한 녀가수에게 안겨주신 뜨거운 사랑, 여기에는 우리의 음악예술을 끊임없이 발전시켜 우리 인민들에게 더 좋은 노래를 안겨주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웅심깊은 사랑이 깃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