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인민들의 생활을 보살펴주는 주민행정사업으로 되도록

 2023.10.5.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의 한생은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고 사상과 령도에 구현하여 현실로 꽃피우신 인민적수령의 숭고한 한생이였다. 우리 수령님에게 있어서 인민대중은 언제나 스승이였고 자신은 인민의 충직한 아들이시였다.》

온 나라가 력사적인 조선로동당 제4차대회결정을 높이 받들고 천리마의 대고조로 들끓던 주체51(1962)년 1월 19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황해남도 신천군을 찾아주시였다.

신천군에 머물러계시면서 군안의 여러곳을 돌아보시던 어느날 해질무렵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밤나무골이라고 불리우는 마을의 어느한 집을 찾으시였다.

천만뜻밖에 부엌으로 들어서시는 어버이수령님을 뵙게 된 그 집의 아주머니는 크나큰 감격과 흥분에 휩싸여 어찌할바를 몰라했다.

집구경이나 좀 하자고 하시며 부엌으로 내려서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아궁도 들여다보시고 이어 방안에 들어서시여서는 가장집물들을 눈여겨보시였다. 그러시다가 그 집 아주머니에게 한달에 수입은 얼마나 되는가, 된장, 간장을 사고 쌀을 타오는데 돈이 모두 얼마나 드는가고 물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얼마나 소탈하게 대해주시는지 어려움도 잊고 부러운것없이 늘어난 살림에 대해 자랑하던 아주머니는 갑자기 얼굴을 붉힐뿐 대답을 올리지 못하였다.

그런데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모를수도 있지, 그게 좋은 일이라고 하시면서 된장, 간장값은 얼마이고 쌀값과 소금값은 얼마이니 이 집에서 한달에 돈을 얼마쯤 소비할수 있을것이라고 하시면서 군의 책임일군에게 세대주들은 몰라도 일없지만 정권기관일군들은 이런것을 다 알고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자리에 서있던 군의 책임일군은 얼굴이 붉어져 머리를 수그리였다. 사실 그를 포함하여 적지 않은 정권기관일군들은 인민생활에 무관심하다나니 된장, 간장값이 얼마인지, 쌀값과 소금값은 또 얼마인지 모르고 지내왔던것이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 이튿날에는 새날협동농장(당시)에 나가시여 농장원들과 허물없이 무릎을 마주하시고 그들의 생활형편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시였으며 내의와 신발, 덧저고리같은것이 요구된다는 농민들의 소박한 말을 심중에 깊이 새겨두시였다가 밤중에 몸소 흙깔이작업장에까지 찾아가시여 농민들의 옷섶을 손수 만져보시였다.

이렇듯 주민들의 생활형편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주체51(1962)년 1월 22일 황해남도 시, 군인민위원회 위원장, 부위원장들을 부르시여 군인민위원회사업과 관련한 문제를 가지고 협의회를 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우리 정권기관들의 첫째가는 임무는 주민들에 대한 행정사업을 잘하는것이라고 하시며 행정이란 다스린다는 뜻인데 로동계급이 주권을 잡은 우리 제도하에서 주민행정사업은 인민들을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 쓰고 살도록 보살피는것이라고 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계속하시여 옛날에는 집안살림을 그 집 세대주가 책임졌지만 우리 사회주의제도하에서 인민들의 살림살이는 인민정권기관에서 전적으로 책임지고있기때문에 군위원장들이 수매하는데도 나가보며 집집마다 마당 한모퉁이에 약초를 몇포기씩 심게 했다가 거두어들이면 그것도 인민들의 살림살이에 보탬이 될것이라고 가르쳐주시였다.

참으로 우리 수령님은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사상과 령도에 구현하여 현실로 꽃피우신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