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민족의 계몽과 발전에 이바지한 애국자-백선행

 2020.8.7.

예로부터 평양8경의 하나로 자랑높은 대동강반의 련광정앞에 옛모습을 다시 드러내고 솟아있는 백선행기념관에는 민족의 유구한 력사를 빛내이며 선조들이 이룩한 공적을 후세에 길이 빛내여주신 위대한 수령님위대한 장군님의 뜨거운 사랑이 깃들어있다.

위대한 수령님들께서는 우리 나라 근대력사에서 《백과부》로 불리우던 이름없던 한 녀성을 나라와 민족의 계몽과 발전에 이바지한 인덕이 높은 애국자로 내세워주시고 그의 공적이 후세에 길이 전해지도록 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지난날 민족의 계몽과 발전을 위해 좋은 일을 한 백선행을 애국자로 내세워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내가 백과부와 같은 부자를 훌륭한 녀자라고 평가하는 리유도 그가 민족의 계몽과 발전을 위해서 금전을 아끼지 않은 인덕이 높은 애국자라는데 있다.》 (김일성전집》 제97권 359페지)

1848년에 평양의 그리 넉넉치 못한 가정에서 태여나 16살에 남편을 잃고 청상과부가 되여 백과부로 불리운 백선행은 80고령이 될 때까지 수절하면서 살았다.

평생 아무 교육도 받지 못한 백선행은 콩나물장사, 두부장사를 하면서 한푼두푼 모은 돈으로 누구도 돌보지 않는 승호리의 돌박산을 헐값으로 사두었다가 일본인자본가에게 본전의 몇십배나 되는 비싼값으로 팔아 평안남도일대에서 굴지의 자산가가 되였다. 수중에 돈이 많았지만 그는 조반석죽의 수수한 생활을 하면서 저축한 돈을 사회를 위해 아낌없이 바쳤다.

해방전에 평양에는 부립공회당이 있었는데 이 사용권이 일본인들에게만 있고 조선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백선행은 분개한 나머지 유지들과 함께 조선사람들을 위한 공회당건설을 발기한데 이어 총공사부담을 혼자 걸머지고 수만원에 달하는 돈을 아낌없이 투자하였다. 건물이 완공되자 사람들은 민족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귀중히 여겨 건물의 이름을 《백선행기념관》이라고 명명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62(1973)년 10월 31일, 11월 1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서 한 결론》에서 해방전에 평양에 백과부라는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기가 저축한 많은 돈을 당시 《솔뫼다리》라고 부르던 송산리의 석조다리건설과 평양공회당건설 그리고 광성소학교, 창덕학교, 숭의녀학교와 같은 학교후원에 바쳤다고, 백과부의 덕행에 감동된 평양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선행이라고 짓고 《솔뫼다리》를 《백선교》라고 부르면서 그에 대하여 소문을 냈다고 회고의 교시를 하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지난날 민족을 위한 성스러운 일에 자기를 다바친 백선행의 소행을 후세에 길이 빛내여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새 세기 세월의 흐름과 함께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져가고있던 백선행의 지성이 깃든 기념관을 원상대로 잘 꾸리고 보존할데 대한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94(2005)년 7월 31일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력사유적들에 대한 보존관리사업을 잘할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면서 력사유적들을 잘 관리하는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민족성을 고수해나가도록 하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말씀하시며 백과부의 집을 원상대로 복구하기 위한 대책을 세울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후 여러 기회에 백과부집을 준공당시의 백선행기념관으로 환원복구하도록 하시였으며 원상복구형성안 준비정형과 대책적문제들을 료해하시고 내각과 문화보존지도국(당시)을 비롯한 련관단위 일군들로 꾸리기상무를 조직해주시였다.

그리고 백선행기념관내부를 본래의 건물형식으로 꾸리기 위한 사업과 거기에 필요한 비품보장문제까지 일일이 관심해주시였다.

그리하여 백선행기념관은 옛모습그대로 1층은 도서실, 서고, 사무실 등 6개 방으로, 2층과 3층은 각종 모임과 예술공연을 진행할수 있게 꾸려지게 되였으며 그 앞마당에는 동으로 된 그의 반신상과 칠골에 세워졌던 《백씨선행기념비》를 옮겨다 세워놓았다.

하여 백선행기념관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이바지한 사람에 대해서는 그 소행을 귀중히 여기고 높이 내세워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위대한 장군님의 뜨거운 민족애를 가슴깊이 심어주는 동시에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바친 생은 민족사와 더불어 사람들의 기억속에 길이 전해지게 된다는것을 후대들에게 가르쳐주는 애국주의교양장소로 되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