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절세위인의 손길아래 복구된 백상루

 2021.12.10.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민족유산을 주체적립장에서 계승발전시킬데 대한 정책을 제시하시고 력사에 묻혀있던 수많은 문화유산들을 새롭게 발굴고증하며 외래침략자들에 의하여 파괴된 유적들을 원상대로 복구개건하도록 이끄시여 선조들이 창조한 문화유산을 민족의 재보로 인민들과 후대들에게 안겨주시였습니다.》

백상루는 평안남도 안주시의 등방산언덕에 서있는 루각이다.

백상루에 오르면 아득히 펼쳐진 안주벌과 박천벌에 생명수를 주면서 용용히 굽이쳐흐르는 청천강의 장쾌한 흐름, 동쪽으로 면면히 뻗어간 가두산줄기가 한폭의 그림을 보는듯 선명하고 아름답게 안겨온다.

이곳에 오르면 백가지 아름다운 자연경치가 한눈에 바라보인다고 하여 그 이름도 백상루라고 하였다. 백상루는 평양의 련광정, 강계의 인풍루, 의주의 통군정, 만포의 세검정 등과 더불어 예로부터 《관서8경》의 하나로 불리워왔고 그중에서도 백상루가 으뜸이라 하여 《관서제일루》라고 하였다.

안주 백상루가 《관서제일루》로 우뚝 솟아 다시 빛나게 된데는 민족문화유산 하나하나를 귀중히 여기시고 후손만대 물려주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과 은정이 깃들어있다.

백상루를 처음 세운것은 고려시기였고 그것이 조선봉건왕조시기인 1753년에 개건되였다.

현재의 건축양식은 조선봉건왕조시기의 루정건축술을 대표할만큼 정교하고 우수하였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백상루도 우리 나라의 거의 모든 문화유물들과 마찬가지로 그 형체를 찾아볼수 없게 처참한 상처를 입었다.

백상루가 폭격에 불타버렸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선조들이 남긴 유적을 잃은데 대하여 못내 가슴아파하신분은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후 안주를 현지지도하시면서 본래 여기 안주에 정각이 있었다고 하시면서 백상루는 옛날부터 유명하여 우리 나라 《관서8경》의 하나로 불리웠다고 교시하시였다. 그후 외국방문을 마치시고 돌아오시는 길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마중나온 평안남도당의 한 책임일군에게 백상루를 복구해야 하겠다고 간곡한 교시를 주시였다.

그러나 안주 백상루는 1970년대초까지도 복구되지 못하고있었다.

그러던 주체62(1973)년 12월 하순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안주를 또다시 찾아주시였다.

청천강의 찬바람이 엄습하는 엄동설한의 이른새벽에 안주를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안주읍의 십자길에 서시여 흰눈덮인 시내를 굽어보시며 등방산언덕을 바라보시며 백상루에 올라갈수 있는가고 물으시였다.

길이 험하다고 이야기하는 일군들에게 일없다고 하시며 앞장서 등방산재등으로 오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생각깊으신 눈길로 새로 일떠서는 안주시내를 굽어보시다가 백상루터에 시선을 옮기시였다.

흐리신 안색으로 눈덮인 백상루터를 한참동안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백상루가 집터만 남았다고 못내 아쉬워하시였다.

이윽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백상루는 고적이기때문에 원상대로 건설하여야 한다고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등방산재등에 오래동안 계시면서 새로 복구할 백상루터전을 몸소 잡아주시고 그 복구방향을 구체적으로 밝혀주신 다음에야 언덕을 내리시였다.

그로부터 한해후인 주체63(1974)년 2월 2일 안주도시건설관계부문일군들을 부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안주시건설과 관련한 문제들을 료해하시고 백상루복구정형을 알아보시였다.

안주시건설에서 백상루복구를 빼놓을수 없는 한부분으로 보시고 그것을 잊지 않으시는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일군들로부터 백상루복구정형을 알아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백상루복구에 필요한 자금도 자신께서 풀어주겠다고 하시며 복구를 다그칠데 대하여 교시하시였다.

일군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가슴에 새기면서 백상루복구에 그토록 세심한 관심을 돌리고계시는 그이의 높으신 뜻에 가슴뜨거움을 금할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시여 일군들에게 폭격에 파괴된 백상루를 우리 시대에 와서 복구하는데 나무로 하지 말고 세멘트로 하여 만년대계로 잘 지어야겠다고 교시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이렇듯 크나큰 배려와 극진한 보살피심에 의하여 안주성의 높은 곳에 자리잡고있던 백상루가 다시 만리대공을 향하여 날기라도 하듯 긴 추녀를 높이 추켜들고 옛 모습그대로 웅장화려하게 일떠서게 되였다.

안주 백상루
그림 1. 안주 백상루의 전경
백상루
그림 2. 백상루의 내부
내부의 두공
그림 3. 내부의 두공
외부의 두공
그림 4. 외부의 두공
본채의 천정
그림 5. 본채의 천정

안주 백상루가 옛 모습그대로 복구되였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탄생 65돐이 되는 경사의 날을 앞둔 주체66(1977)년 4월 중순 어느날 당과 국가의 중대한 일마저 뒤로 미루시고 백상루를 찾아주시였다.

봄외투자락을 날리시며 백상루에 오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합각지붕으로 된 유적건물의 기와며 두공, 서까래에 고전미가 나게 그린 단청도 바라보시고 일군들에게 백상루를 잘 지었고 단청도 잘하였다고 치하하시며 못내 기뻐하시였다.

백상루의 란간을 한손으로 잡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진 아름다운 경개를 기쁘신 마음으로 바라보시였다.

발아래 흰 백사장에는 비단필같은 청천강의 맑고 푸른 물이 유유히 굽이쳐 흘러내리였고 강건너에로 무연한 벌을 꽉 채우며 일떠선 대화학공장의 은백색 찬란한 탑들이 눈이 부시게 안겨왔다.

저멀리 서해바다와 잇닿아 무연히 펼쳐진 박천벌, 운전벌이 한눈에 바라보이기도 하고 남쪽으로는 웅장화려하게 일떠선 청춘도시 안주시의 전경이 바라보이였다.

이 모든 아름다운 전경을 기쁘신 마음으로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옛날부터 백상루가 유명하다고 하여 그것을 복구하였는데 아주 좋다고, 백상루에 《관서제일루》라는 말은 그대로 써붙여도 일없다고 하시며 대단히 만족해하시였다.

이렇게 안주 백상루는 민족애를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에 의하여 그 어떤 원쑤도 감히 꺾어버릴수 없는 주체조선의 기상인양 페허우에 다시 일떠서 《관서8경》을 자랑하던 옛 모습 그대로 오늘도 서있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