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이 창건됨으로써 과거 일제식민지통치하에서 갖은 천대와 멸시를 받아온 우리 인민은 주권의 당당한 주인으로 되였으며 공화국정부의 보호하에 자유롭고 행복한 생활을 마음껏 누릴수 있게 되였습니다.》 (
일제식민지통치시기 조선녀성들은 온갖 천대와 멸시, 불행과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것을 자기의 타고난 운명으로, 《팔자탓》으로 여기면서 《팔자도망은 못한다》고 하면서 숙명으로 받아들이였다.
소설《한 녀성의 운명》과 조선예술영화《금녀에 대한 이야기》의 원형인 전필녀녀성도 해방전에는 자기가 당하는 온갖 천대와 멸시, 불행과 고통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자기를 《팔자사나운》 녀인으로만 생각해온 수많은 조선녀성들중의 한사람이였다.
전필녀녀성은 해방전에 황해남도 배천군 금성리에서 태여났다. 곡창지대로 소문난 고장에서 태여났지만 그의 가정은 아무리 일을 많이 하고 농사를 잘 지었어도 지주놈에게 다 빼앗기고 입에 풀칠도 제대로 할수 없었다. 그가 9살이 되던 해에는 지주놈에게서 장리로 가져다 먹은 콩 서말이 화근이 되여 보잘것없는 가산마저 차압당하고 정든 고향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그때부터 전필녀녀성은 쪽박을 차고 구걸도 해보고 남의 집 아이보개도 해보았으며 사리원방직공장과 영등포제사공장에 팔려다니며 감독놈의 채찍맛도 볼대로 보았다. 그리고 공장주의 더러운 요구를 거절한것이 화가 되여 반죽음이 되여 한강에 내버려지기도 하였다. 먹지 못한데다가 매맞은것이 도져 앓아누웠을 때 호구조사나왔던 왜놈순사놈은 그가 전염병에 걸렸다고 하면서 움막안에 가두어넣고 얼굴에 소독약을 뿌려 그의 한눈을 멀게 하였으며 눈먼 그를 보고 분을 참지 못하여 식칼을 들고 달려들었던 그의 남편은 놈들에게 억울한 생죽음을 당하였다.
그때마다 피눈물을 흘리는 그에게 그의 어머니조차도 《네 팔자가 사나운걸 어쩌겠니》라는 말로 달랠수밖에 없었으며 전필녀녀성자신도 자기가 당하는 천대와 멸시, 불행과 고통을 어쩔수 없는 《팔자소관》으로만 생각하였다.
그러나 해방전에 전필녀녀성이 당한 온갖 천대와 멸시, 불행과 고통은 결코 타고난 팔자탓이 아니였다.
전필녀녀성은 지난날 《팔자사나운》 천덕꾸러기로 사회의 최하층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던 자기를 나라의 주인으로 내세워주신
그후 전필녀녀성은 당의 축산정책관철을 위해 뛰고 또 뛰였으며
그렇다.